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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당한 이주노동자의 문제제기... 그 후 벌어진 일

[고기복의 이주노동 보고서 ①]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업체 사장과 계약하라는 고용허가제

등록 2020.12.06 12:06수정 2020.12.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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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력 정책 중에 처음 듣는 사람은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제도가 있습니다. 2012년 7월부터 도입된 '성실 외국인 근로자 재입국 취업 특례제도'입니다. 도입 취지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에 따른 근무연수인 4년 10개월이 만료된 숙련 이주노동자들을 재고용해 기업에 숙련인력 활용을 지원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감소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외국인력 정책에서 성실이라는 말은 '정성스럽고 참되다'는 사전적 의미와 달리 '취업 활동 기간 동안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통합니다. "취업 활동 기간 동안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한 후 자진 출국한 외국인 근로자로 제한하여 재입국해 취업할 수 있도록 한다"는 단서 조항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성실'이라는 단어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종속성을 강화시킨다고 꾸준히 문제 제기해 왔습니다. 그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2020년 5월부터 '성실'이라는 단어를 빼고 '외국인 근로자 재입국 특례'라고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그러나 명칭만 바뀌었을 뿐 근로계약이 만기 된 이주노동자 재취업은 여전히 고용주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재입국 특례자가 되려면 국내 취업 활동 기간 동안 이직하지 않고 한 사업장에서만 근무해야 합니다. 다만 사업장의 휴·폐업 등 자기 책임이 아닌 이유로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에는 마지막 사업주와의 근로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합니다. 특례 대상자 재입국 제한 기간은 현재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하도록 입법 예고된 상태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재입국 특례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희망을 빌미로 착취와 학대를 일삼는 고용주들의 전횡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입국 특례 대상 확대, 피해자 구제 가능한가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부터 12월 2일까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중 '재입국 특례 요건 예외 규정' 법률개정안을 다음과 같이 입법 예고했습니다. 

"휴업‧폐업, 근로조건 위반, 성희롱, 폭행 등 근로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에 마지막 사업장에서 근로계약기간이 1년 미만으로 남은 경우라도 직업안정기관의 장이 권익보호협의회의 의견을 들어 인정한 경우에도 재입국 특례를 허가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종속되는 부분이 여전하긴 하지만, 피해자를 재입국 특례자가 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일정 부분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불러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2020년 3월 몽골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A는 화장실 변기통에 설치한 카메라를 발견하였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은 회사 사장이었습니다. A가 카메라를 우연히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사장의 범행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A는 취업 활동 중단 등 경제적인 피해 외에 정신적 충격으로 심리 치료를 받으며 다중적인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사건 당시 체류 기간이 6월까지였던 A는 입국 후 한 번도 이직하지 않아 '성실 근로자' 자격으로 귀국했다가 3개월 후에 재입국하여 같은 회사에서 일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설치한 불법촬영 카메라를 발견하고 심리적 모멸감을 느낀 A는 피해 사실을 신고하여 이직할 경우 성실 근로자 자격을 잃게 됨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결심합니다. 

A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이주인권 단체들과 함께 4월부터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한편, 사건이 발생한 회사에서 피해를 본 여성 이주노동자는 A만이 아니었지만, 체류 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봐 다른 피해자들은 신고를 꺼렸습니다. 

성폭력 피해에도 구제 외면한 고용부 외국인력담당관
 

고용노동청 부천지청 사건 처리 결과 고용주에게 8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 고기복

 
A가 경찰에 신고했을 때 경찰은 조사 결과 동영상 파일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접수받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은 사업주의 직장 내 성희롱 등으로 800만 원을 부과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습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은 검찰은 가해자인 사장의 컴퓨터에서 100회 이상의 불법 촬영이 있었음을 밝혀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장은 A가 입사한 직후부터 얼굴과 엉덩이, 허리를 만지고 뒤에서 허리를 감싸며 몸을 밀착시키는 행위, 이마에 입맞춤하거나 팔로 가슴을 스치는 등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반복하였습니다. 작업하는 동안 원단을 달라고 하면 뽀뽀를 요구하는 등의 성희롱은 일상이었습니다. A는 사장의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해 할 수 있는 만큼 거부하였지만 문제를 크게 만들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끙끙대며 참았습니다. 사장의 성추행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A는 카메라를 발견한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업체 사장과 재계약을 전제로 한 외국인 고용허가제 재입국 특례는 A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공동 대응에 나선 이주인권단체들이 가장 의아해했던 부분은 외국인력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 부서의 인식이었습니다. 담당 사무관은 "신규사업장을 통해 재입국할 수 있지 않느냐"며 "재입국이 타의에 의해 훼손됐다 해도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공동대응팀은 언론보도를 통해 6월부터 사건을 공론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 보호 및 구제조치가 취해지도록 인권위와 노동청 진정을 하고, 국회의원들에게는 제도 개선 필요성을 설명하며 법 개정을 시도합니다. 이에 특례 제도의 문제를 인지한 안호영(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피해자 구제 방안을 요구하였고, 장관은 '몇 개월 후 재입국 혹은 G1(기타) 비자'를 통해 구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장관 답변은 담당 사무관의 입장보다 나아진 면이 있긴 했지만 제도 개선까지는 길이 멀었습니다. 

개정한다는 입법 예고안에 포함된 독소 조항

고용노동부는 위 사건이 국회와 언론에서 공론화되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9월에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근로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에 마지막 사업장에서 근로계약기간이 1년 미만이라도 재입국 특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주 인권 단체들은 '권익보호협의회 의견을 들어 인정한다'는 단서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재입국 특례 제도가 이주노동자의 고용주에 대한 예속성을 강화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고, 권익보호협의회를 유명무실하게 운영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주 인권 단체들은 협의회 개최 요구를 피해자 혹은 지원단체가 할 수 있도록 법령에 명시해야 실질적 구제가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해야만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용허가제 특례 제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근로자의 권리, 강제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사용자에 대한 예속성을 극대화하는 재입국 특례는 단서 조항 없이 개정돼야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7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 하청업체에 일했던 비정규직 여성이 낸 산재 요양 신청을 11월 말에 받아들였다고 밝혔습니다. 이 여성은 회사 관리자에게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이로 인해 불면, 우울, 불안 증상을 겪었습니다. 이 판정으로 해당 여성은 병원 치료비와 함께 휴업 급여 등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반면, 여성 이주노동자 A는 임시 체류 비자(G1)를 받긴 했으나 아무런 피해 보상도 못 받은 채 조만간 귀국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신고한 여성 이주노동자는 오히려 경제활동이 종료되고, 재입국 기회조차 박탈되는 상황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주노동자 #고용노동부 #성폭력피해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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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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