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 13:09최종 업데이트 20.12.0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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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9월 28일 오후 제막식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게 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사진). 이는 유럽내 공공부지에 세워진 첫 소녀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 클레어 함

 
'베를린 소녀상'이 영구 설치의 전망을 갖게 됐다.이 소녀상은 독일 한인단체인 코리아협의회 주도로 9월 25일(현지 시각) 베를린시 미테구에 설치됐다가 일본 정부의 반발에 당황한 미테구의 태도 돌변으로 한때 철거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코리아협의회의 법적 대응과 국제 여론에 밀린 미테구가 10월 13일 철거 명령을 보류한 데 이어, 12월 1일 미테구 의회가 '소녀상 설치 기한을 내년 8월 14일에서 9월 말로 연장하고 영구 설치 방안을 모색하자'라고 결의함에 따라 상황이 안정되고 있다. 영구 설치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낙관적 전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제1000회 수요집회를 기념해 2011년 12월 14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 기림비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2013년 7월 30일에는 한국 밖에서는 최초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소녀상이 세워졌고 캐나다·호주·중국·독일에서도 뒤따라 세워졌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 커지고 소녀상 설치 국가도 늘어나는 것은 한민족의 손을 떠나가는 위안부 문제의 현상을 반영한다. 처음에는 한민족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세계인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이 사안의 위상을 보여준다.

유대인 홀로코스트처럼, 미국 흑인 차별처럼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유대인 학살은 더 이상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국가권력의 폭력을 거부하고 제국주의를 거부하는 세계 인류의 공통 관심사가 되어 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유대인만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는다.

미국 흑인 차별 역시 미국 흑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종 차별을 거부하고 다수민족의 억압을 거부하고 약자 차별을 거부하는 세계인들의 공통 문제가 되어 있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질식사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흑인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열기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뜨거워진 사실이 그것을 보여준다.

위안부 문제는 아직까지는 홀로코스트나 흑인 차별 문제만큼의 세계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호응과 더불어 소녀상·기림비가 세계 주요 국가들로 확산하는 것은 소녀상의 뜻에 세계인이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은 여성의 문제이자 피지배 대중의 문제이고, 피억압 약소민족의 문제이자 경제적 약자의 문제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핍박을 받은 여성들이 일제 성노예가 되어 전쟁터로 강제동원됐다. 세계인들이 공감할 만한 요인들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점점 확산하는 데는 위안부 활동가들과 해외 한국인들의 헌신 그리고 현지 지방정부의 협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더 근원적인 힘은 다른 데 있다. 현지 민중의 명시적·묵시적 동의가 이 사안의 세계화에 훨씬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녀상이 세워질 때마다 일본의 정부·기업·시민단체들은 필사적인 로비를 벌인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시민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지방정부들이 일본과의 마찰을 감내하면서까지 소녀상 설치를 허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코리아의 문제가 아닌 여성의 문제, 피지배 대중의 문제, 피억압 민족의 문제, 경제적 약자의 문제로 이해하는 현지 민중들이 지지를 표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남 일 같지 않다

그 같은 공감대의 중요성은 글렌데일시 소녀상 건립 때도 증명됐다. 이때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의 공감이 인상적으로 나타났다.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들은 투르크족(돌궐족) 오스만제국 하의 소수민족으로 살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 강제이주와 집단학살을 경험했다. 이 경험이 글렌데일시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소녀상 설치를 응원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

2017년에 나온 미국 동부 테네시대학 윤지환의 박사 학위 논문인 '한국 위안부 기림 캠페인 - 기억과 인권의 정치에서 교차성, 상징적 공간 및 초국가적 이동의 역할(The Korean Comfort Women Commemorative Campaign: Role of Intersectionality, Symbolic Space, and Transnational Circulation in Politics of Memory and Human Rights)은 "미국 사회가 다민족 및 인종집단들로 구성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위안부들이 느낀 슬픔·상처·모욕감을 자신의 정치적 일대기를 토대로 이해하는 민족공동체와 사회계급이 생기는 게 가능하다"라며 글렌데일시 소녀상 건립운동에 참여한 한국인 활동가의 발언을 이렇게 소개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인종청소를 경험했다. ··· 그러나 터키 정부는 (일본 정부처럼) 여전히 범죄를 부인한다. 그래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위안부들의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So, Armenians understand the sadness of comfort women better than anyone). (중략) 우리가 이 이슈를 시 의회 의원들과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에게 갖고 갔을 때 그들은 매우 잘 이해했다.
 
남북전쟁 시기에 북부 백인 민중들이 흑인 노예제 폐지를 응원한 동기 중 하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백인 민중 자신의 인권을 증대시킬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남'을 위하는 동시에 '나'를 위해 인권과 정의에 힘을 보태는 이런 특성이 세계 위안부 운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의 태도가 그 점을 잘 보여줬다.

남이 아닌 나의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는 2014년 5월 30일 청사 앞에 위안부 기림비를 건립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정부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페어팩스 정부는 기림비 건립이 한국이 아닌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

2018년에 <페미니즘 연구> 제18권 제1호에 실린 문경희 창원대 교수의 논문 '호주 한인들의 소녀상 건립과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호주 위안부 운동을 설명하기 전에 미국 위안부 운동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페어팩스 카운티의 경우에는 기념비를 세우기로 한 시기가 지역에서 여성의 인신매매를 통한 성매매 발생 수가 증가하여 카운티의 중요한 정치적 현안이 된 시기와 일치한다"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의원들은 지역민들에게 성매매·인신매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카운티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위안부 기림비를 세우는 데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든 '한·일 문제'로 격하하려 애쓰고 있다. 보편적인 '세계 문제'가 아니라 양국 간의 민족 문제임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소녀상을 세우면 현지 공동체의 사회통합을 저해할 것이라고, 또 현지 자국민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심지어 위안부 운동을 '빨갱이 운동'으로까지 매도하고 있다. 위 논문에 따르면, 2016년 8월 6일 호주 시드니에 소녀상이 세워지기 전에 '재호주 일본공동체 네트워크(AJCN)'의 데츠히데 야마오카 대표는 호주 공영 ABC 방송에 출연해 "이들 반일 활동가들은 일본과 미국, 호주 사이의 동맹관계를 단절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중국공산당의 정보 활동에 이용당하고 있으며, 그들은 북한 정부와 연계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집단"이라고 비방했다.

이젠 세계인의 문제 
 

'소녀상 지키기' 집회 나선 베를린 시민들 지난 11월 25일(현지시간) 추운 날씨에도 독일 베를린 젠다르멘마르크트 광장에서 시민들이 소녀상 지키기 집회를 하고 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현재 공식적으로 철거 명령이 유보된 상태다. 2020.11.26 ⓒ 연합뉴스

 
이 같은 선전전이 때로는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은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세계인들이 위안부 문제를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 문제는 또 다른 방법으로도 세계인들의 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해외 한국인들이 현지 사회에 정착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 사회 편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매개로 현지의 소수민족이나 주류 민족과 '하나 됨'을 경험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은 재미 한국인들의 위안부 운동이 미국 사회와의 통합을 위해 활용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위의 윤지환 논문은 한국인 활동가들의 목표 중 하나가 미국 사회와의 융합이었다면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시기에 한국계 미국인 공동체 내에서 상당한 재산 피해와 신체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 이민자들은 특히 역사적으로 소외된 여타 그룹인 흑인 및 히스패닉계와 비교할 때 자신들이 미국 사회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다"라고 말한다. 이런 인식이 재미 한국인들의 위안부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는 홀로코스트나 흑인 차별 문제처럼 세계인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공감대가 형성된 지역에서 한인들과 현지 사회를 통합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정치적·민족적 문제인 동시에 과거지사로 보일 수도 있는 위안부 문제가 비정치적이고 사해동포적 기능을 발휘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여는 기능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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