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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유튜브에 무릎 꿇었습니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216] 거창했던 올해 교육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사연

등록 2020.12.07 14:13수정 2020.12.0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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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허무하고 황망하게 한 해를 보낼 줄은 몰랐다. 역사 교사로서, 여느 해와는 달리 2020년 올해는 특별히 바쁜 해여야 마땅했다.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너무 많아 계기 수업을 진행하다 진도를 못 나가면 어쩌나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다이어리를 다시 들춰봤다.
  
거창했던 계획, 수포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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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5월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우선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5.18에 빚졌다고 할 만큼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려니와, 광주의 교사로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십 년 넘게 5.18 관련 강의와 답사 가이드를 해오고 있어 더욱 특별한 해였다.

예년 같으면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5월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광주를 찾는 이들이 넘쳐났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망월동 묘역 등 5.18 사적지를 찾는 발길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관련 기관의 행사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대폭 축소됐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2.28 민주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도 계획했다. 대구와 광주의 아이들이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통해 상호 교류의 물꼬를 트자는 거다. 이름하여 '가자 대구로, 오라 광주로' 프로젝트. 현대사 속 광주 5.18과 대구 2.28을 이어보려는 취지였다.

2.28 민주운동은 올해 정부로부터 국가 기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대구 2.28 사건, 학생 의거 등으로 불리다가 민주운동으로 명명돼 역사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헌법 전문에 명시된 4.19 혁명의 실질적인 도화선으로 공인되었다는 점에서 올해는 더욱 뜻깊은 해였다.

학년 초 3월엔 아이들과 마산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3.15 마산 의거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부정선거를 자행한 이승만 정권에 맞선 당시 중고등 학생들의 결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야말로 역사 교육이 필요한 이유 아닌가.

국립 3.15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 전북 남원에도 들를 참이었다. 3.15 마산 의거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진 계기가 된 김주열 열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당시 마산 상고 1학년이었던 그의 삶 앞에, 동년배인 아이들이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4월엔 시내에 자리한 4.19 혁명 기념관을 소풍 삼아 찾아갈 요량이었다. 4.19 혁명의 발상지라고 하면 대개 마산과 서울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 광주도 빼놓을 수 없다. 3.15 부정선거 직후 첫 시민 봉기인 '곡(哭) 민주주의 장송(葬送)' 시위가 벌어졌던 곳이 광주다.

마산도, 서울도 아닌, 광주에 4.19 혁명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고 하면, 이곳 광주 사람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리기 일쑤다. 419번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한다는 이들조차 그 번호가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른다. 하여 60주년인 올해가 광주의 4.19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적기라고 봤다.

10월엔 충남 홍성으로 가을 답사를 다녀오려고 했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그곳에 있다. 올해는 일제강점기 국외 무장 전쟁의 청사에 빛나는 청산리 대첩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날이 1920년 10월 21일이다.

그곳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듯한 거리에 만해 한용운의 생가도 있다. 또, 이웃한 예산에는 중국의 장제스가 '2억 중국인이 못한 일을 한 사람의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극찬한 매헌 윤봉길을 만날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산실과도 같은 고장이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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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목판화. ⓒ 조정훈

 
올해 11월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는 달이었다. 그의 분신 5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동료 교사들과 함께 그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답사할 계획이었다. 그 길에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열사와 김근태, 노회찬 의원 등을 뵐 수 있다는 꿈에 부풀기도 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동대문 평화시장과 최근 개관한 전태일 기념관에도 들러볼 작정이었다. 그곳에서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에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함께 성찰해보고 싶었다. 아울러 노동 인권과 관련해 계기 수업 자료를 몇 달 전부터 준비해놓고 11월이 되기만을 별렀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혀 있던 이 모든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코로나는 교사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렸다. 비대면 원격수업의 일상화에 학교 교육은 휘청거렸다. 점심조차 칸막이로 둘러싸인 곳에서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교내외 모든 단체활동은 말 그대로 '올 스톱'됐다.

등교해 지필고사를 치를 수 있을지도 막막한 상황이 1년 내내 이어지다 보니, 수행평가와 비교과 활동조차 여의치 않은 형국이다. 올해 아이들의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거라곤 지필고사 점수와 등급뿐이라며 하소연한다. 한 해의 학교생활이 통째로 날아갔다는 푸념도 들린다.

100년 전 청산리 대첩에서, 6.25, 4.19, 5.18까지. 예년 같으면 2020년은 온갖 기념행사로 나라 안팎이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누구에게나 '역병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국내외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고, 1년 내내 모든 언론의 1면은 늘 코로나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수업 시간 5.18을 통해 시민 저항권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고, 2.28과 3.15를 통해 학생의 정치 참여를 두고 토론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했다. 4.19를 통해 헌법 정신을 일깨우고 싶었고, 6.25 전쟁이 가져온 분단의 모순에 대해 아이들에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마디면 끝났다. 무시로 등교가 중지되고, 공공시설의 운영이 멈추고, 생업이 무너지는 엄중한 상황에서, 현대사에 초점을 맞춘 역사 수업은 아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코로나와 현대사가 대체 무슨 관계냐'는 조롱 섞인 질문을 듣기도 했다.

"현대사를 기억하고 추모한다고 해서 코로나의 창궐을 막아내진 못했겠지만, 적어도 그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을 완화하고 치유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내 답변을 두고 몇몇 아이들은 견강부회라며 키득거렸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탓이다. 그들은 역사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기운과 의미를 파악하고, 통찰력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학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2020년 하면 코로나 말고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고 했다. 그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로 필터링 된 세상만 봐온 것이다. 애초 기회가 없었으니, 학교에서 만나는 또래들과 선생님보다 혼자 방에 머물며 종일 눈을 떼지 못한 스마트폰이 정보통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직격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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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거창했던 올해 교육계획은 코로나가 아닌,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직격탄을 맞았다. ⓒ PIXABAY

 
올해 아이들에겐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학교였던 셈이다. 교사마다 준비한 수업 영상을 유튜브에 탑재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교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 대부분은 출석 체크를 위해 수업 영상을 켜놓은 채 다른 영상을 시청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터넷 포털과 유튜브의 맨 앞자리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뉴스가 꿰차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 소식과 넘쳐나는 가짜 뉴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와중에 윤석열과 추미애를 지지하는 두 편으로 갈리어 언쟁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좋아 보이진 않는다.

연예계 뉴스나 스포츠 가십 거리 또한 아이들에겐 '필수 교양'이다. 모르면 대화에 낄 수 없는, 적어도 그들에겐 유익하고 소중한 정보다. 대면 수업과 학교생활을 통해 채워야 할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을 유튜브가 무한 제공하는 시답잖은 내용으로 대신하고 있는 꼴이다.

나의 거창했던 올해 교육계획은 코로나가 아닌,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직격탄을 맞았다. 단체활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마음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그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른바 '언택트' 시대 교사는 유튜버로 거듭나야 하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답사 등 체험활동을 위해 확보된 예산조차 불용 처리를 해야 할 정도로 앞서 열거한 계획 중 단 하나도 실행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불가항력이었다고 해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가뭇없이 날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덧 수능도 끝나고, 올해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듣자니까, 내년에도 코로나로 닫힌 세상의 문이 쉽게 열릴 것 같지는 않다. 뭐라도 해야겠는데,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주눅이 든 탓인지 마음만 앞설 뿐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싶은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역사의 현장을 두 발로 걷는 대신 눈으로 만나야 하는 시대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 수도 없고 대화도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이뤄지는 마당에 지금의 학교는 과연 존속될 수 있을까. '언택트' 시대에 학교는 껍데기만 남게 되진 않을까. 그저 기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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