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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 부모

등록 2020.12.07 08:22수정 2020.12.0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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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녀올게."    


딸 대신 내가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등굣길 교통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오늘 내 앞으로 지나간 학생은 총 3명.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두 학년씩 등교를 하고 그마저도 최근에 군산에 확진자가 늘면서 결석생이 많기 때문이다. 어디론가 분주히 출근하는 차들을 보며 그래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매인 듯한 두 아이가 내 옆으로 와서 섰다. 오빠가 나를 보고 꾸뻑 인사를 하자 동생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나도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학교에 나와 줘서, 답답한 마스크를 꾹 참고 써줘서 고맙습니다, 교통봉사를 함께 한 연우 어머님 고맙습니다, 수고한다며 나와서 따뜻한 캔 커피를 주신 담임선생님 고맙습니다, 학생들 체온 체크를 하는 도우미 어머님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했다.

손님 없는 식당의 사장님, 아이들 빈 자리를 지키는 선생님 마음이 지금 텅 빈 횡단보도를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참 후에 한 아이와 엄마가 손을 잡고 걸어왔다. 아이는 엄마와 인사를 하고 혼자 횡단보도를 건넜다. 건널목을 건넌 아이는 건너편에 있는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조금 걸어가더니 다시 뒤를 보고 두 손을 힘차게 저었다. 마치 자동차 와이퍼처럼 180도로 크게. 그리고 교문 앞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그렇게 엄마와 인사를 했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거기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것 같았다. 주저 없는 아이의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아이 모습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부모는 자식이 한 번씩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기다리며 평생을 사는 게 아닐까. 자식에게 많은 걸 해주고도 바라는 거라고는 고작 그것밖에는 없는 것 같다. 가끔 자식이 나를 한번 떠올려주고 찾아 준다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한 번씩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기다리며 평생을 사는 게 아닐까. ⓒ Pixabay

나는 전화기를 무음으로 할 때가 많다. 나중에 아빠의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하지만 그때는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빠가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지 않거나 공장의 기계소리 때문에 벨소리를 못 들어서다. 카톡과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빠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게 답답한 모양이었다.    

"너한테 전화하려고 해도 책을 보는지 수업을 하는지 싶어서 몇 번을 할려다가 못했다. 오늘은 병원에 기다리면서 해봤다."

아빠 말에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나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아빠, 병원에는 왜 갔어요?"
"보름마다 한 번씩 약 타러 안 오나. 약도 많이 먹으니까 속이 안 좋아가 꼭 먹어야 되는 것만 빼고 줄일 수 있는가 한번 물어봐야겠다."
"아빠 속이 많이 안 좋아요?"
"인자 나이 들어가 그런 거 뭐 적응해가 살아야지."    


아빠하고 병원에도 같이 다니고 밥도 차려드리고 안마도 해 드려야 하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아니 전화라도 자주 해야 하는데, 아빠 미안해요.  
  
올해 2월에 대구를 다녀오고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코로나 19가 좀 잠잠해져서 가려고 할 때마다 다시 감염이 확산되는 보도가 나와서다.     

본가에 가면 나는 매끼 메뉴를 바꿔서 밥을 차렸다. 우럭탕, 꽃게탕, 갈치조림 같은 거다. 협심증이 있는 아빠한테 콜레스테롤은 안 좋기 때문에 고기보다는 생선이나 해산물로 한 요리를 많이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한 끼 밥을 차리고 먹기를 반복하다 보면 아빠가 나를 보는 얼굴이 조금씩 편해지는 걸 느꼈다.

걱정과 불안함에 아빠가 애써 많은 말을 참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럴 때는 밥을 삼키고 국을 마시는 게 어떤 말보다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같은 상에 앉아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걸 알았다. 마치 미지근한 밥의 온도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것처럼.    

올해부터 오른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수업을 하면서 오른손으로 판서와 필기를 많이 해온 탓이었다. 지금부터 시작인 건가? 40대인 나는 앞으로 이런 만성적인 통증이 하나둘 생길 거라 생각하니 부모님 생각이 났다. 늘 이런 통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을 뒤척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이번에 본가에 가면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안마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내가 아픈 곳이 생기고 나서야 부모님이 평소에 말하던 어깨가 결리다, 무릎이 아프다는 말이 들렸다.
  
4년 전에 딸은 교통봉사를 하는 나를 발견하고 건널목 건너편에서 개다리춤을 추었다. 신주머니를 든 손을 머리 위로 번갈아 올려가며 얼마나 익살스럽게도 추는지 웃음이 터져서 혼났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나를 향해 달려오는 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통통하고 짧은 다리로 전속력으로 돌진해오는 모습이.   

오늘 뒤돌아서 제 엄마에게 손을 흔들던 아이에서 내 딸의 모습이 겹쳐졌고 동시에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의 마음속에는 나의 어떤 모습을 담고 있을까 싶어서 울컥했다. 마흔이 넘어버리고 전화도 받지 않는 무정한 딸이 자신을 한 번 돌아보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서 눈물이 났다.

뒤돌아보면 아빠는 꼭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다. 그 자리에서 틀림없이 나를 보고 있을 아빠가 가여웠다. 겨울의 마른 가지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아빠가 처량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이 내 품을 벗어나려고 하니 그 허퉁함에 이제야 아빠가 보인다. 아빠는 나를 떠나보낼 때마다 이렇게 허전했겠구나, 그렇게 내 생각을 했겠구나. 시간이 지나도 아빠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 내 모습은 하나도 빛이 바래지 않았겠구나.

내가 내 딸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쌓여갈 뿐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오랫동안 마음을 쌓아왔을 아빠를 생각하니 가슴이 묵직해졌다.    
#코로나 19 #학교 #결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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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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