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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가구 남은 생활비 18만원... '정서적 필터'를 끼울 때입니다

[코로나 불황, 버티는 중입니다] 즐겁게 씀씀이를 줄이는 나만의 소비 방법

등록 2020.12.18 08:48수정 2020.12.1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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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확산을 맞은 올 연말은 유독 더 몸과 마음이 시립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고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 프리랜서, 직장인, 취준생 등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햇병아리 프리랜서 잠옷차림으로 커피를 타고 컴퓨터를 켠다(설정사진은 아니다). 끼니는 전에 남긴 것들을 모아 해결. 거북이과 체형이 되어 컴퓨터는 독서대에 올려서 쓴다. 돈은 안되지만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 ⓒ 김나라

 
프리랜서 '0년차'가 당황하는 순간

"헉, 우리 이번 달 생활비 18만 원 남았어."
"18만 원?? 아직 반도 안 지났는데? 뭐 잘못 적은 거 아냐?"
"그러게... 잘못 적은 게 없는데...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진짜 그럴 리가 없는데."



함께 사는 반려인과 나는 공동가계부 앱을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출액을 하나하나 덧셈해 보기까지 한다. 그럴 리가 없긴, 아주 있다. 이럴 때마다 돈의 신비를 체험한다. 그만한 돈을 썼다는 체감이 영 없는 것이다. 직장이 없는 덕에 스트레스도 없는 우리가 유일하게 머리를 맞대고 가족회의를 하는 때다.

올해로 프리랜서 0년차다. 에세이도 기고하고, 수험생의 자기소개서 첨삭도 하고, 전자책 편집디자인도 한다. 이렇게 말할 때 예상되는 질문. "벌이가 좀 돼요?" 다행히도 수입은 있다. '수입'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치에서 벗어난 액수라 그렇지.

지난 겨울 일하던 대학의 한국어 강사 계약이 끝난 뒤에, 나는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시행으로 인해 더 치열해진 재계약 경쟁 속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을 벗어난 직후 코로나19가 확산되어 한국어학당으로 재취업할 여지도 깔끔히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불법체류자가 되는 유학생이 늘면서 새 유학생을 유치하기 어렵던 어학당들은 코로나로 인해 운영 규모가 크게 줄었고, 아예 한국어학당이 없어지는 대학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앓는 소리를 하기에 나는 아직 햇병아리, 초보 프리랜서다. 지금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이 '나'인 것 같아도, 때가 때인지라 정말 힘든 분들을 생각하면 한숨도 쏙 들어간다.

모두가 '존버'(비속어에서 온 말이지만 이보다 더 지금에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하는 이 시대에, 저축도 수입도 없으나 빚도 없는 삼십대 후반이라면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빚 없으면 부자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나 잘하자', 매일 하는 생각이다.


월세를 내기 위해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말에 편의점 일을 해서 받는 돈으로 월세와 1차 생활비를 내고, 돈이 비면 더 내는 2차 생활비와 개인 용돈, 보험료 등의 고정 비용은 많지 않은 비상금을 조금씩 풀어 사용한다.

이 비상금이 덜 줄도록 가끔 보탬이 되는 것이 프리랜서로서 얻는 수입이다. 감격스러운 첫 수입은? 전자책 편집디자인 수당으로 받은 15만 원이었다. 이 정도 금액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생긴다.

직장에 다닐 때부터 매년 해 오던 첨삭 아르바이트도 있긴 했지만, 1년에 한 달 일하고 50만 원을 받는 일이라 아직 나의 보릿고개는 11개월인 셈이다. 내 글도 써야 하고 아직 여러 기술을 배우는 중이라 투잡 사이트 등에 글을 올리지는 않았다. 홍보도 하기 전에 일을 받은 셈이니,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할까.

그저 매일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을 뿐이다. '새는 돈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답이 뻔해 보이지만, 변함없이 새롭고 어려운 질문이다.

'가치소비'를 의식하니 절약이 쉬워졌다
 

나도 제로웨이스터? '제로웨이스트'라는 말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배워가자는 마음을 먹으니 기분 좋은 압박감도 느껴진다. 씀씀이를 줄여주는 하나의 필터로 작용하고 있다. ⓒ pixabay(Tumisu)

 
이 숙제를 풀어가는 것이 스트레스보다는 기쁨과 보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에게 맞는 몇 가지 '정서적 필터'를 장착했다.

첫째는 '세상에 덜 유해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 환경을 덜 망가뜨리는 소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소모품 중에 환경친화적인 제품은 가격이 더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니, 생필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꼭 필요한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요령이 더 생겼다고 할까.

집에서 먼지나 음식을 닦을 때는 물티슈 대신 걸레나 행주를 찾게 되었고, 장 본 후 포장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겸사겸사 불필요한 물건을 걸러내게 되었다. 쓰레기 때문에 물건을 사지 못했다고 말하면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전보다 이것저것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고 12개들이 플라스틱 컵 커피를 주문하려던 반려인도 물을 타서 마시는 콜드브루 커피 1병으로 바꾸었다.

품위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먼저 놓아주어야 할 '옷'은 마침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패션산업은 전 세계 배출량의 20%에 해당하는 폐수를 만들고 매년 바다에 50만 톤의 플라스틱을 배출한다(이는 생수병 500억 개와 같다). 게다가 의류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1%도 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안 후로 더는 새 옷을 사지 않는다. 강사 일을 하는 동안 많은 옷을 사 두었고, 지금은 대부분의 일을 집에서 처리하니 계절이 바뀌도록 한 번도 못 입는 옷이 많아졌다. 짝을 맞춰 입기 위해 필요한 옷이 생기면 빈티지숍에서 '새것 같은 구제 옷'을 찾는다. 디자인도 품질도 좋은 옷을 만 원도 안 되는 값에 사고 나면 내가 내 머리를 쓰다듬게 된다. 이게 바로 '가성비'고 '가심비'지. 합리적 소비란 이런 것이지. 암.

두 번째 필터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도움이 되는 만족인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부작용이 적은 소비인가 하는 것인데, 이 생각이 탄수화물 중독을 이겨내는 데에 꽤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은 마셔야 한다고 믿던 술도 요즘 끊었다. 군것질을 하거나 술을 마시면 경제적으로만 따져도 3번의 손실이 초래된다. 1차적으로 그것을 사기 위해 돈을 쓰고, 2차적으로 병원비나 약값으로 돈이 더 나간다. 3차적으로는 건강 상태가 나빠졌을 때 얼마간이든 일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손해다.

2차와 3차 손실은 내가 체질상 이런 식품에 민감하면서도 적당하게 즐기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미래에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면에서는 누구나 같다고 본다. '열심히 번 돈 한 번 나가는 것도 아까운데, 고생할 가능성을 돈 주고 산다니? 안 먹고 말겠다'라고 생각한 뒤로, 못 사 먹는 것이 서럽거나 아깝지 않다. 여전히 가끔 실수는 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여가 생활도 내가 즐기기에 따라 충분한 만족을 준다. 텀블러에 차를 담아 공원에 나가면 좋은 것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나뭇잎의 서로 미묘하게 다른 빛깔을 감상하고, 해질 때 하늘에 섞이는 수많은 색을 찬찬히 보다 보면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긴다. 당장 멀리 여행을 갈 수 없어도 자전거에 올라 내키는 대로 달려 보는 기분도 여행 못지않게 즐겁다.

날이 추워진 요즘 소파에 누워 평점 좋은 무료영화를 보는 것은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도서관이 닫았을 때는 꼭 유료 오디오북 앱이 아니라도 지역도서관에서 서비스하는 '스마트더책' 앱으로 부족한 독서량을 채울 수 있다. 만족감도 떨어지지 않고 경제적으로 뒤탈도 없는 무자극 여가 활동이다.

가진 셈 치고, 누린 셈 치고
 

프리마돈나 조수미의 '셈 치기 놀이' 작년 방영된 예능 프로 '대화의 희열2'의 한 장면. 성악가 조수미는 어머니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셈 치고'는 남이 아닌 내 마음을 잠시 이동시키는 것이고, 내가 그렇게 믿으면 세상은 따라 움직여 준다고 말했다. ⓒ KBS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 보는 것은 이것이다. '조급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는 것은 내가 급하게 마음과 몸을 써서 되는 일이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무리한 생활을 향해 달려갈 때가 있다.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 곳곳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쳐 결국은 더 큰 손실을 치르게 한다. 나의 몸과 마음은 '이 다음'을 계획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자산이다. 그래서 잠들기 전 복식호흡과 명상을 하며 '몸 건강, 마음 건강을 지키는 것이 절약이고 저축'이라는 것을 되새긴다.

성악가 조수미는 한 방송에서 '셈 치기 놀이'를 소개했다. 어릴 적에 어머니께 뭔가 사 달라고 조르면 "얘, 그거 있는 셈 치면 안 되겠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희한하게도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고 한다.

어머니가 경제적 여력이 안 돼 데뷔 무대를 보러 오실 수 없을 때도 '엄마가 제일 앞자리에 앉은 셈 치고 노래하자!'라고 마음먹었더니 정말 어머니가 맨 앞자리에 두 손을 모으고 계셨다고. 조금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상황 안에서 마음을 바꾸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이야기이다.

무언가를 소유해서 얻는 행복은 어차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꼭 내 손 안에 넣어야만 행복한 것도 아니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닌 나도 세상과 나를 진정으로 위하는 소비 방법을 배워가면서 이런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했던가.

누렸다는 셈 치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낫다는 셈 쳐 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정신승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들이 도처에 있긴 해도, '내가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에는 좋은 수단이 아닐까 한다. 더 많은 분들께 지금 이 시간이 '버티는 시간'보다 '조정하고 성장하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본 글은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 #독립근로자 #윤리적소비 #가치소비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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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단단해지지 않아도 좋다는 단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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