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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한파에 야외 취침... 교사들은 불침번을 섰다

[필름 사진 여행기] 8박 9일의 백패킹 노작기행, 그 마지막 이야기

등록 2020.12.13 11:29수정 2020.12.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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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사진은 필름을 이용하여 촬영하고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간단한 기종과 필름 종류를 기재하였습니다.[편집자말]
* '벌써 다섯 번째 방문... 중금속 오염 있었던 곳의 반전'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이 기행을 다녀오면 여러분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져 있을 겁니다. 선생님이 장담합니다." 

코로나19가 무섭게 번지던 4월, 애초의 해외이동학습을 통째로 갈아 엎고 국내 백패킹 노작기행으로 바꾸었다. 그로부터 6개월 동안 수많은 논쟁과 결단이 있었다. 위에서 한 말은 기행을 떠나기 보름 전,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미 조금은 성장한 아이들 앞에서 내가 했던 호언장담이었다. 그 유명한 '피그말리온 효과'였을까? 오늘도 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이들, 통합기행 다녀와서 확실히 조금 큰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기행 6일째 만난 한파, 그 속에서도 뜨거웠던 우리의 마음

5일 동안 영동지방에 머물렀던 터라 날씨가 온화했다. 2kg짜리 침낭이 무색하도록 따뜻한 밤이었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상 7도 정도였고 사전 안전교육 때 주지시켰던 내용과 달리 아이들은 외투를 벗고 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닥친 한파가 더 걱정스러웠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낮아지던 시점에, 따뜻한 동해 연안을 벗어나 봉화군 산 속으로 들어오니 직전 텐트 취침 때보다 10도 가량 낮은 기온이 예상되었다. 4일 전부터 교사들은 이틀에 걸쳐 논쟁과 토론을 이어갔다.

현실감각이 뛰어난 A 교사가 운을 떼었다. 다른 활동이 없고 이동과 취침만 하는 날이니 굳이 위험한 상황을 피하자는 내용이었다. 기존의 여정을 수정하여 하루 먼저 학교로 복귀하자는 제안을 했고 구체적인 이유와 방법까지 들었다.

나는 기획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의 한파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강행할 것을 주장했다. 팽팽한 논쟁은 틈이 날 때마다 이어졌고 봉화군으로 향하기 3일 전 맹방리의 리조트에서 결론을 맺기로 했다. 

나는 안전관리에 관한 대책을 보강하여 설명했고 최종 책임자인 교장선생님께, 당신의 동의만 있다면 기획자로서 원안대로 강행할 것을 선언하겠노라 말했다. 교장선생님의 의견은 "도전을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써 토론은 마무리 되었고 모두들 한 마음이 되었다.
 

현수막 오른쪽 아래의 문구가 꼭 필요한 날이었다. "새벽 추위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 안사을


사실 나의 선언은 A 교사의 제안이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의견은 감정을 배제하고 확률적으로 생각하여 '가장 안전하고 뒤탈이 없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획자로서, 부장으로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을 결심하고 선포한다면 모든 노력을 다해 돕겠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A 교사의 염려로 인해 모두가 다시 한 번 고민한 덕에 봉화군에서의 마지막 야외취침이 안전하게 마무리되었다. 그의 진심은 단순히 위험을 회피하자는 것이 아니었음을 안다. 모두가 안전하게 기행을 마무리하고, 그동안 쌓아왔던 보람과 행복을 고스란히 안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추위 속 삼계쉼터 교사들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찍은 사진. ⓒ 안사을


우리가 야영한 곳은 봉화군 읍내에 위치한 '삼계쉼터'라는 곳이었다. 군에서 관리하고 무료로 운영되는 곳인데 개수대와 화장실이 있고 차량 옆으로 텐트를 칠 수 있는 오토캠핑장 형식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샤워시설이 없어서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공문을 미리 보내어 알리긴 했지만 봉화군에서 예상보다 더욱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텐트를 치기 전 쉼터의 장내 정리를 깔끔하게 해주었고 장기주차된 차량들의 소유주들에게 손수 전화를 해서 이동주차를 권유해주기까지 했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고깃집에서 간만에 편하고 배부른 식사를 마치고 자유시간을 가진 후 약속했던 점호 시간이 되었다. 8시 반,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텐트 안에서 대기 중이었다. 처음으로 읍내에서 숙박을 하는 고로 PC방 등으로 이탈을 할까 염려를 했는데 아이들이 참 대견했다.

모든 텐트를 돌며 잠자리를 하나 하나 점검했다. 등산양말 위에 수면양말을 신고, 헤비다운을 입고, 핫팩 두 개를 각각 다리 밑과 등 밑에 오픈하여 두는 것까지 확인했다. 이 밤을 함께 이겨내보자고 격려를 했고 남학생들은 어깨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아침 (MZ-S/Ektar100) 맑은 날씨만큼이나 뚝 떨어진 기온 속에서 눈을 떴다. ⓒ 안사을


길고 긴 밤이 지나고 드디어 아침이 되었다. 약속했던 대로 아이들은 밤새 텐트 밖으로 나오지 않고 모두가 얌전하고 안전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중간에 텐트를 열고 나오면 올라갔던 텐트 내의 기온이 순식간에 바깥 온도와 같아지니, 출입을 하지 말 것을 주문했었다.

시리고 깨끗한 공기를 폐 속 깊숙히 마신 아이들은 그제서야 호들갑을 떨어댔다. 

"와. 개춥다. 이거 실화냐?"
"와. 미쳤다. 쌤. 장난 아닌데요?"
"그래? 상쾌하구만."
"그건 그래요. 별 거 아닌데요? 잘 잤어요. 하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참새같이 재잘대는 녀석들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두텁게 뿜어져 나왔다.
 

차가운 아침 (MZ-S/Ektar100)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동으로 잠자리와 짐을 정리하는 아이들 ⓒ 안사을


교실에서의 마지막 밤, 모든 감정이 다 터져 나왔다

8일째 밤은 학교에서 보내기로 했다. 오전 10시 삼계쉼터를 떠나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학부모님들과 교사들이 교문 앞으로 마중을 나와 계셨다. 그동안 끊임없이 온라인으로 소통하면서 아이들을 가장 보고싶어했던 분들이었다. 장미꽃 한 송이와 직접 쓴 손편지를 모든 일원들에게 전달하셨다.
   

편지와 꽃과 간식 ⓒ 안사을


마지막으로 교실에서의 1박을 계획한 것은 실내에서 해야 할 일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코펠을 모두 분리해서 혹시 남아 있을 이물질을 제거하고 각 모둠별로 테이블이나 멀티탭 등의 장비들을 정리했다. 이슬에 잔뜩 젖은 텐트를 다시 펼쳐서, 마지막 취침을 하는 동시에 말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기행을 마무리하는 매듭지를 작성하고 그동안 묵혔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학년 토론실에 모두 모여 몇 가지 질문이 적혀 있는 개인 매듭지를 사각사각 써 나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것도 진지하게 뭔가를 적고 있는 아이들이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매듭지 작성 중 ⓒ 안사을


        
   

어떤 학생의 매듭지 ⓒ 안사을



  

가장 인상적이었던 매듭지 두 번째 칸에 써진 (뒷장)을 보고 넘겼더니 이런 내용이 있었다. "후회하지 않은 것! 오길 잘했다! 역시 부딪쳐봐야 한다. 막상 오니 내가 두려워한 것들이 다 작게 보인다." ⓒ 안사을


이렇게 평화롭게 모든 과정이 끝나려나 했다. 잘 시간이 다 되어서야 교사용 텐트를 복도에 치고 취침 점호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곳 저곳에서 갑자기 아이들의 언성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두세 명이 복도로 나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나는 열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휩싸이고 말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불편함조차 눈꺼풀 속의 가시처럼 여기며 날을 세우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그토록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참고 배려하던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두 시간이 넘도록 이런저런 말들을 받아주고 중재하다 보니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이 날 한 명은 같은 반 친구의 잘못된 언행으로 상처를 받고 집으로 향했다. 모두 네 그룹에서 다툼이 있었고 그 내용은 결론이 나지 않을 것처럼 돌고 돌았다. 어제 오늘 묵힌 감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왔던 것들이기도 했다.
 

교사 텐트 아이들은 따뜻한 교실에 텐트를 쳤고 교사들은 학생 관리 차원에서 복도에서 준 야외취침을 했다. ⓒ 안사을


상식적인 대화로 논란을 멈출 수가 없어서 윽박지름 반, 호소 반으로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아이들에게,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길게 봤을 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한 것이니 나의 중재를 따라줄 것을 요구했다. 8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1천킬로가 넘게 운전했으며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상태이니 나를 좀 불쌍히 여겨달라고도 했다.

실망하고 울분에 찬 나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는지 아이들도 열을 식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조금만 더 상황이 길어졌다면 나 또한 이성을 잃고 막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추스리고 2시가 넘어서야 작고 노란 텐트로 몸을 구겨넣고 잠을 청했다.

마지막 날 아침이 되었다. 일찍 눈을 뜨자마자 간밤의 일들이 어떤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아이들은 야영과 생존 속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유별남을 감추고 서로의 다름을 참아왔다가, 익숙하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오자마자 며칠 동안 억눌렸던 감정들을 토해냈던 것이었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간밤에 화를 내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행을 떠나기 전, 나의 첫 번째 목표는 '화내지 않기'라고 밝혔던 것을 떠올리면서 나 자신을 칭찬해 주었다.

빨간 텐트마다 지익 문이 열렸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부시시한 얼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아이들이 밉지 않았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기나긴 기행을 마무리하는 짤막한 연설을 했다. "이제 집으로 갑시다"라는 한 마디에 모두들 겨울 파도가 부서지듯 솨아 흩어졌다. 간밤의 다툼들마저 인생 공부의 한 단락이었음을 이 아이들은 알까? 

기행을 마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함께 여행 속에 있는 듯하다. 며칠 전에도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쌤. 너무 추워요."
"야. 지금이 아무리 추워도 그 때 우리가 텐트 치고 잤을 때보다는 안 춥다."
"그건 그래요. 하하하."


*본 기사를 마지막으로 여섯 편의 <백패킹 노작기행>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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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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