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형사령, 박정희 그리고 검찰의 권력의지

권력의지로 충만된 권력기관, 검찰

등록 2020.12.09 14:52수정 2020.12.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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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제12조 3항에는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이 헌법 규정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헌법에는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명문화된 것은 바로 박정희 군사쿠데타 직후 이른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개정한 헌법부터였다.

절대권력을 향한 유신권력과 검찰 권력의지의 결합

본래 '영장주의'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것이다. '영장주의'란 수사기관의 강제 처분은 반드시 법관에 의하여 사전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인신구속을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으며, 영장발부 권한은 법관에게 전속되어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이렇듯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영장주의를 천명하는 헌법 조항에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유일한 영장청구 주체로서의 검찰' 규정은 '영장주의'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것이며, 그 취지와도 필연적 관계가 없는 규정일 뿐이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이러한 규정은 한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 헌법의 영장청구 조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박정희 유신헌법에서 한 발 더 나가 "검사의 요구에 의하여"로 다시 개정되었다. 검사의 영장청구 권한을 더욱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법관의 영장발부에 대한 재량은 축소하려는 의도(김선택, "영장청구권 관련 헌법 규정 연구", 2008. 12)가 깔려 있었다. 이는 결국 검찰의 권력 의지와 절대 권력을 행사하려는 박정희 유신 체제의 권력 의지가 결합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검사를 앞세워 영장제도를 배제한 조선형사령

검찰과 영장과의 깊은 관계는 멀리 일제 강점기의 조선형사령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는 1912년 조선형사령을 제정했다. 그 핵심은 바로 영장제도의 배제로서 검사와 사법경찰에게 예심판사에 준하는 강제처분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세계 법률사상 일찍이 유례가 없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위해 인신구속과 구금이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파악하였다. 그리해 조선총독을 정점으로 총독이 식민지 검사를 임명하고 그 하부 보조기관으로 사법경찰관을 배치하여 인신구속과 체포를 무소불위로 자행함으로써 식민지통치 권력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 조선형사령이라는 악법에 의해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되었다.


검찰이 진정 '준사법기관'의 위상을 지니려면

우리나라 검사들은 스스로의 지위에 대해 '준사법기관'으로 파악한다. 여기에도 권력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사법이란 상관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재량행위도 허용되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만 구속되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 검사를 '준사법기관'으로 인식하는 독일에서는 검찰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오랜 시간의 논의 과정을 거쳤다. 그 논의의 주요한 결과 중의 하나는 바로 검사가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한다는 검사의 "객관 의무에 관한 규정"의 명문화였다. 즉,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증거들만 수집해야 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객관적 판단을 추구하는 '준사법기관'으로서 직권주의(Instuktionsmaxim)에 입각하여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실도 수사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독일에서 검찰은 "공적 옹호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또 독일에서는 검찰청법이 아니라 법원조직법에 검찰의 조직과 임무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검찰청은 각급 법원 관할 내에 설치된다. 즉, 연방대법원에 연방검찰청, 주(州)고등법원에는 주고등검찰청, 지방법원에 지방검찰청, 구검찰청 등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은 검사의 기소를 의무화하고 있는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바, 이에 따라 검사의 자의적 재량행위가 허용되지 않고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른 상관의 직무 명령에 대해서도 자유롭다.

그러나 한국의 검찰은 행정부에 속하는 조직으로서 검사동일체의 투철한 조직 원칙을 준수하며, 기소편의주의에 입각하여 기소 여부에서 자의적인 재량권을 행사한다. 그리해 지금의 검찰은 피고인을 범죄자라고 지목하여 그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소추기관, 나아가 무소불위 전방위적으로 권력 의지를 현시하는 권력기관으로서의 위상이 두드러지는 조직이다.

검찰이 진정 '준사법기관'의 위상을 지니고자 한다면, 독일 검찰처럼 되어야 한다.
#검찰 #영장청구 #독일 #준사법기관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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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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