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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 없는 구라이골, 지질 탐방하기 딱 좋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겨울에 가볼 만한 곳 포천 주상절리 협곡길

등록 2020.12.14 13:39수정 2020.12.1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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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북 IC를 빠져나와 포천 영중면 방향으로 계속 달릴수록 풍경은 단순해진다. 이미 겨울의 문턱을 넘은 산과 들녘은 여백의 미를 떠올리게 한다. 가득 찬 아름다움과 달리 비움의 한복판에 서 있는 포천의 산하가 애닯고 구슬퍼보인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려왔던 차들은 모두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텅 빈 도로가 현실감 없이 이어진다. 얼마를 더 달렸을까. 이따금 보이는 카페 건물도 휴게소도 모두 굳게 닫혀 있다. 두 번이나 차를 세웠지만 두 번 모두 허탕이었다. 나만 빼고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차들도 사람들도 모두 어디엔가 꽁꽁 숨어버렸다.
  

포천 구라이골 일대 포천 8경 중 7경에 속하는 포천 구라이골, 지질명소로도 유명하다. ⓒ 변영숙

 
목적지인 포천 '구라이골'에 도착했다. 2010년 11월 포천시는 포천시 향토유적보호 위원회를 열고 한탄강 유역 일대의 절경 52곳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명승지 8곳을 선정하여 한탄강 8경으로 지정하였는데, 구라이골은 제7경에 속한다.


'구라이골'은 지명부터 외지고 깊은 산 속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 듣는 사람은 '구라를 잘 치나?' 하면서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굴과 바위가 합쳐진 '굴아위'가 음 변이를 일으켜 구라이가 되었다고 한다.

수풀이 우거진 여름날에는 협곡이 굴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라이골은 한탄강의 지천에 형성된 작은 현무암 협곡으로 폭포와 주상절리 등의 절경과 함께 다양한 지질구조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지질 명소이다.

구라이골 입구에는 '운산리자연생태공원'과 '구라이골캠핑촌'이 조성되어 있으며, 본격적인 지질탐방은 캠핑장 옆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서 시작된다. 주변에는 철 지난 억새가 지천이다.

눈부시다. 몽고의 게르를 연상시키는 천막들이 늘어서 있는 캠핑촌은 험준한 바위산을 만난 탐험대나 군대가 한 템포 쉬어가려고 급하게 꾸린 야영지같기도 하다. 얕으막한 산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제법 아늑한 느낌도 든다.

오롯이 나 혼자 걷는 길, '구라이골' 주상절리 협곡길
  

포천구라이길 입구에는 자연생태공원과 캠핑장이 조성되어 있다. ⓒ 변영숙

 
구라이골 탐방은 입구에서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게끔 되어 있는데 초입에서 길을 물어봤던 사람 말고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마른 풀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나뭇잎 흔들리는 그 소리가 마치 비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다행히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거나 헤맬 염려는 없었다.


'어디쯤일까' 궁금증이 일어날 즈음이면 어김없이 안내판이 나타났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는 이곳에서 안내판이 현재로선 유일한 안전 장치다. 어느 글에서 '진입로가 험하여 혼자 방문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라는 글이 완전 허언은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지난 폭우의 흔적으로 떠내려온 쓰레기가 흉물스럽게 나무가지에 걸려 있어 더 을씨년스러운 구간도 있었다. 평소라면 짜증이 났을 공사 차량의 소음도 반가울 정도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포천 구라이골 캠핑장 풍경 억새밭과 얕은 산들에 둘러싸인 캠핑장이 아늑하다. ⓒ 변영숙

 
산책로 초반부는 지그재그처럼 조성되어 있어 의아했는데 이는 협곡의 생김새 대로 길을 연결했기 때문이다. 작은 협곡을 다리나 구조물을 설치해 가로지르지 않도록 한 것은 다행이지만 산책로에서 협곡이나 강 풍경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협곡을 기웃거리는 양이 몹시 옹색하고 답답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무가 울창한 계절에는 나뭇잎에 가려 이마저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민원(?)에 대비해 비교적 시야가 좋은 곳에 전망대를 설치해 발 아래 아찔한 협곡과 신비로운 지질형태를 감상할 수 있게 배려했다.

한탄강 풍경은 언제나 경이로움이다. 실린더인양, 연필인양 일정한 모양을 내며 협곡을 장식하고 있는 현무암 주상절리의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인간 세상의 쇼보다 감탄스럽다.
  

포천 구라이골 한탄강 협곡 포천 구라이골 한탄강 협곡 ⓒ 변영숙

 
산책로에 조성된 3개의 전망대는 저마다 다른 풍광을 선사한다. 첫 번째 전망대에서 구라이골을 볼 수 있으며 마지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탄강 풍광이 압권이다. 30m는 족히 될 정도로 깊게 패인 협곡은 용암의 두께를 말해주는 것이다.

용암이 한탄강을 따라 흘러 굳으면서 용암대지를 만들고 다시 수 십만년 동안의 침식과 풍화를 거쳐 용암대지를 갈라 협곡을 만들었다. 그 협곡을 따라 한탄강은 도도한 흐름을 멈추지 않고 흐른다. 자연의 흐름을 어느 누가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리라.
    

구라이골 한탄강 협곡 구라이골 한탄강 협곡 ⓒ 변영숙

   
전망대마다 바닥 높이의 화강암 판석에 일대에서 서식하는 희귀동물에 대한 소개글을 새겨 놓아 포천이 고품질의 화강암 고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구의 안내문도 화강암이었다. 다만 탐방객의 입장에서는 글자들이 너무 얇고 작게 새겨져 있어 읽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용암의 시간차 공격이 만들어 낸 3단 콤보 지질 구조
  

포천 구라이골 한탄강 지천에 형성된 주상절리 협곡 ⓒ 변영숙

 
 

구라이골 지질 명소 여러 시간대에 형성된 다양한 지질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 변영숙

 
구라이골은 한탄강의 지천에 형성된 소규모 현무암 협곡인데 여러 번의 화산폭발과 냉각 과정의 차이로 인해 다양한 용암 지층이 형성된 것을 관찰할 수 있어 흥미롭다. 지표면과 가까운 상층부는 두께가 5m 정도인데 주상절리도 빈약하고 하부에 자갈과 진흙으로 된 클링커층이 발달되어 있다.

주상절리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은 가운데 층이다. 최하층은 옛 한탄강의 물길이 지나가던 지질층으로 아직 암석화 되지 않는 자갈층과 진흙층으로 되어 있다. 현재는 지난 폭우로 산책로가 유실되고 낙석의 위험이 있어 제 3전망대까지만 탐방이 가능하다. 강가로 내려갈 수 있는 운산전망대 데크길은 현재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포천 구라이골 한탄강 협곡 운상 전망대 데크길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갈 수 있으나 현재는 출입금지다. ⓒ 변영숙

 
연천군의 '백의리층'은 이러한 지질구조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지질에 관심이 생겼다면 포천과 연천 및 철원 지방의 지질 탐방을 차례대로 계획해 봐도 좋겠다. 수풀이나 나무잎 같은 방해물이 없는 겨울철은 지질탐방에 최적의 계절이다.

# 구라이골 가는길  
내비 : 구라이골 캠핑장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운산리 302)
볼거리: 주상절리와 한탄강 절경, 야외공원과 산책로, 캠핑장
겨울철 매점, 카페 등을 운영하지 않으니 따뜻한 차나 간식준비는 필수다.

 
덧붙이는 글 포천소식에도 실립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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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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