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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압수됐지만 여태 공개되지 않은 '이것'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③-4 : 삼성X파일

등록 2020.12.14 08:34수정 2020.12.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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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을 선보인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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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 'X파일 폭로 4주년, 그 이후...' 당시 노회찬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진보신당


[지난 기사] 한 다선 의원의 말, "건들면 안되는 게 있는데" 에서 이어집니다.

나머지 271개 X파일의 행방은?

노회찬이 폭로한 X파일의 내용은 검찰이 공운영의 집에서 압수한 274개의 테이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270여 개의 테이프가 서울중앙지검에 그대로 보관돼 있습니다. 국회와 국민이 노력하면 테이프 공개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친일 문제도 새 법률로 진상을 규명했습니다. 역사에는 시효가 없습니다. 거대권력의 비리를 규명하고 처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직 제 싸움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9년 8월 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 'X파일 폭로 4주년'을 맞아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돌아보는 좌담회를 진보신당과 <한겨레21>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노회찬(진보신당 대표)과 김용철(변호사) 그리고 미국 연수 중인 이상호 기자를 대신해 최상재(언론노조 위원장)가 참석했다. 사회는 홍세화('마포 민중의 집' 공동대표)가 맡았다. 김용철과 노회찬 모두 나머지 X파일 테이프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용철은 말한다.

"나는 변호사로서 일을 못하고 있다. 내가 변호하면 무죄도 유죄가 될 것 같고, 도울 수가 없었다. … '떡검'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떡을 그렇게 많이 사먹나. '떡값'이란 말은 죄의식을 약화한다. 정기적인 뇌물이다. 기백만 원은 엄청나게 큰 돈인데, 국가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따로 받는 돈이 어떻게 '떡값'인가.

뇌물 받는 검사는 대한민국 검사 가운데 50여 명 정도 될 것 같은데, 이런 관행을 주류 사회로 편입됐다는 증거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X파일의 나머지를 다 공개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부정한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재벌이 주는 정치자금은 주주의 돈이고 국민의 돈이다. 그 돈으로 권력 체계를 유지하는 거다. 검찰도 삼성을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좌천된다. X파일 사건은, 삼성은 무슨 짓을 해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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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 'X파일 폭로 4주년, 그 이후...' 현장 모습. ⓒ 진보신당

 
노회찬은 말한다.


"피고인 노회찬이다. … X파일 테이프를 들어보면, 홍석현 회장이 '홍길동에게 2천만 원' 이러면 이학수 부회장이 '홍길동 2천만 원'이라고 복창한다. 그렇게 말하며 메모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유수 기업의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걸 받아 적는 광경을 생각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다.

이런 걸 근절하고 삼성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삼성이 뇌물을 준 곳이다. 언론·검찰·법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곳을 바꾸면 삼성을 바꿀 힘을 만들 수 있다.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왜 언론사의 소유와 편집이 분리돼야 하는지 국민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온통 불법적 모의가 담겨 있을 X파일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 국민적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파헤칠 수 있다. 다소 잊혀졌지만 끝난 사건이 아니다."


삼성X파일 테이프는 삼성이 수백억 원대 뇌물을 대선후보들에게 뇌물로 제공하고, 검찰 수뇌부와 언론을 돈으로 매수해왔음을 낱낱이 '자백'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사하지 않았다.

2005년 당시 공개된 파일의 숫자는 겨우 3개였다. 서울중앙지검에 있던,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공개해야 된다고 법안까지 냈던 '압수됐지만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X파일의 개수는 271개였다. 271개의 X파일은 지금 어디에서 잠자고 있을까?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내가 주목하는 두 번째 질문이다. 미뤄 짐작 못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행방과 내용에 대해 알고 싶다. 

'법복권력' 검찰과 법원, 스스로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정말 믿을까?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가?' '검찰과 법원, 검사와 판사는 스스로를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정말 믿고 있을까?' 이 마지막 궁금증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것이었다. 

법치국가의 역사적 어원을 보면, 절대군주가 마음대로 행정을 하던 경찰국가에 대해, 행정은 미리 정립된 법률에 의해서만 시행돼야 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에 의거하는 국가를 뜻한다. 법치주의는 근대의 산물로 신에 의한 지배나 사람(절대군주)에 의한 지배에서 법에 의한 지배, 법의 지배로 넘어가면서 등장했다. 그것은 국가의 통치 행위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의회에서 제정된 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원리로,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 보장, 국가 권력의 남용 방지, 국민의 법 앞의 평등 실현 등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

법치국가에서 법과 법질서란 시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자나 권력기관을 통제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안전장치 또는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한국현대사는 이런 법치의 대명제가 훼손돼 왔음을, 그리고 그런 법치주의 훼손의 핵심에 '공익의 대표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도 아닌, '법복권력'인 검찰과 법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보여줘왔다.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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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검사는 검찰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며, 검찰은 검사들로 이루어진 국가조직이다. 법률은 검사에게 사법정의의 실현을 위해 범죄 수사와 기소, 재판과 형의 집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아울러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를 보면, 대한민국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6-②)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공익의 대표자'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피의자나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공익적 관점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법에 적힌 규정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민의 권리와 자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기보다는 오로지 정치권력의 잇속만을 챙기는 검찰, 살아있는 권력의 의지만을 좇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골몰하는 검찰, 일종의 정치계급이 돼 자신들의 무소불위의 특권을 향유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검찰 등이야말로 바로 대한민국 검찰의 자화상이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검찰이 보여준 역사였다. 

"검찰이 여전히 법에 의한 통제와 국민 감시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 권력이 괴물로 변할 경우 그 첨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검찰입니다"(김두식, '헌법의 풍경', 교양인, 2004, 205쪽)라는 우려를 입증해 온 것이다.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과거 권위주의 독재 시절 권력의 중추였던 '남산'과 '보안사'가 퇴장하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검찰이었다. 이후 검찰은 국가권력의 첨병을 넘어 스스로를 국가권력 그 자체라고 믿으며 괴물이 돼버렸다. 

잘 알다시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일부 집단을 두고 흔히 관용적으로 'OO공화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불리는 대표적인 집단으로 삼성과 검찰을 꼽을 수 있다.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개탄(<김대중 자서전 2>, 삼인출판사, 2010)에 해당되지 않는 검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지금도 이렇게 믿고 있을 듯하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삼성은 영원하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영원하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자 검찰공화국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삼성과 검찰은 영원하다.'

그것은 '삼성X파일'로 부상한 '개혁의 적기'를 발로 차버린 결과였다. 

대한민국 대검찰청 사이트에는 검찰 CI(Corporate Identity)와 스스로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올라와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온갖 좋은 말, 좋은 가치들을 모아놨다.

"대나무의 올곧음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고 직선을 병렬 배치하여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상단의 곡선으로 천칭저울의 받침 부분을, 중앙의 직선으로 칼을 형상화하여 균형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표현하였습니다. 주색조인 청색은 합리성과 이성을 상징. 좌측으로부터 각 직선은 공정, 진실, 정의, 인권, 청렴을 상징합니다. 중앙에 칼의 형상인 정의가, 그 좌우에 각각 진실과 인권이, 다시 그 좌우에 공정성과 청렴이 있는 형태입니다."

삼성X파일 사건이 증명하듯이, 검찰이 오랫동안 보여준 실제의 행태는 위의 설명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이런 내용으로 바꾸는 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대나무의 올곧음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고 직선을 병렬 배치했지만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이미지를 담는 데 실패했습니다. 상단의 곡선으로 천칭저울의 받침 부분을, 중앙의 직선으로 칼을 형상화하여 균형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표현했지만 현실에서는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주색조인 청색은 불합리성과 반이성을 상징. 좌측으로부터 각 직선은 불공정, 거짓, 부정의, 반인권, 부패를 상징합니다. 중앙에 칼의 형상인 부정의가, 그 좌우에 각각 거짓과 반인권이, 다시 그 좌우에 불공정성과 부패가 있는 형태입니다.'

사법부는 민주주의·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 지금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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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대한민국 사법부 CI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법원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정의의 여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간결하고 안정적인 이미지와 힘찬 선으로 정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법정 출입문 위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위치하고 있다.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서구적인 이미지의 정의의 여신을 한국적인 느낌으로 재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서구와는 달리 안대를 쓰지 않은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높이 들고 또 다른 손에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대가 없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까지도 찾아내고 보호하겠다는 의미이며, 칼 대신 법전을 든 것은 말 그대로 '법전에 의한 법적용'을 뜻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스스로 만든 CI와 '정의의 여신상'이 표상하는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해 왔을까? '사법부 국민신뢰도 27%'를 지적한 노회찬과 나눈 다음 대화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2016년 6월 30일 '국회 법사위 대법원 업무보고' 자리에서 "법원에서 전관예우가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겠다"는 법원행정처장의 발언에 대해 노회찬은 이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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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5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법사위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내는 보고서에 따르면 사법제도를 신뢰한다는 대한민국 국민은 27%에요. 만일에... 제가 한번 묻겠습니다. 알파고 있죠, 아시죠? 알파고에다가 수십만 건의 판례를 입력시켜가지고 빅데이터를 갖다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집어넣고 여러 가지 양형 사례들을 집어넣고 그런 알파고가 재판한다, 그럼 그런 알파고를 얼마나 믿겠느냐. 대한민국 사법부하고 알파고하고 비교해가지고 누가 신뢰도가 높을 것 같습니까?"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은 "자신있게 알파고보다 사법부를 더 신뢰할 거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노회찬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게 현실입니다. 도둑을 근절시켜 달라니까 도둑이 있다는 오해를 근절시키겠다라고 답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국민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보여지고 있는 현실이 문제가 있는 것인데, 현실을 고칠 생각은 안하고 현실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 달라,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답변하시면 되냐 이거죠. 그래서 계속해서 지금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잖아요." 

이번 기록연재를 마무리하면서 '법복권력' 관련한 노회찬의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게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검찰개혁 없이 민주주의 없다.' 오랫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채 '법의 이름으로' 그 권력을 전횡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주역이 바로 검찰이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그만큼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기 때문에 노회찬이 계속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익의 대표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거듭난 검찰, '민주주의와 법치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제대로 하는 사법부를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촛불정부'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과연 얼마나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④]로 이어집니다(12월 17일). 
#노회찬 #검찰 #검찰개혁 #사법개혁 #삼성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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