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0년 전 염소보다 2020년 우리가 행복한가?

‘코로나19 난리통’에 인도를 떠올리다

등록 2020.12.14 09:37수정 2020.12.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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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남부 조그만 마을에서 만난 순수한 인도 소년과 소녀. ⓒ 홍성식

 
어쩌다 보니 4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돈 많고 시간 넉넉한' 팔자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몰락한 조부와 세상에 대한 불평과 분노를 가슴에 안고 일찍 죽은 아버지를 가진 가난한 노동자지만, 끽해야 4만km가 조금 넘는 둘레를 가진 '내가 태어난 별' 지구를 한 바퀴쯤은 돌아보고 싶었다.


1년에 1, 2번은 다른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나 배에 올랐다. 짧게는 3, 4일에서 길게는 10개월의 기간. 그런 장단기 여행자의 삶이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2020년은 모든 여행자들에게 특별하고 비극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와 중동, 남·북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지구 전체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몰고 온 공포에 떨고 있다.

외국 여행은 고사하고 제 나라 다른 도시로의 이동과 이웃 간의 왕래마저 눈치가 보이고 두려운 시절. 13세기 페스트가 그려낸 '지옥의 풍경'이 이러했을까?

자신의 뜻이 아닌 바이러스로 인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으니, 반대급부로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갈망은 무한으로 증폭한다.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었던 나라'에 대한 그리움도 이에 비례해 커진다.
 

인도 사람들. 그들의 눈동자는 달관한 듯 슬프게 반짝인다. ⓒ 홍성식

 
달관한 듯, 그러나 서글픈 인도인들의 눈동자

"놀랍다" 또는 "생소하다"는 표현이 딱 잘 어울리는 국가 인도. 유럽 사람들은 "인크레더블 인디아(Incredibl India)"라고 말한다.


인도는 나의 첫 번째 장기 배낭여행지였다. 28박29일 동안 뭄바이에서 트리밴드럼까지 인도의 남서쪽 해변을 따라 떠돌았다. 당연지사 많은 현지인들을 만났다.

'이번 삶이 끝이 아니고, 다음 생이 존재한다'는 윤회를 믿는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 태반이 힌두교도인 그들은 현실의 가난과 고통을 애써 외면한다.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우리 돈 500~1000원에 미치지 못하는 허술한 식사를 하면서도 매일 웃는다.

또한, 인도인들 절대다수의 머릿속엔 '해외여행'이라는 개념이 없는 듯했다. 남부 해변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간 작은 마을의 개천가. 다정해 보이는 할머니와 손녀를 만났다.

이빨이 3~4개밖에 남지 않은 할머니는 자신이 몇 살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녀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1869~1948)가 살아 있을 때 태어나서 날 만난 그날까지 동네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

당연지사 한국이 어디쯤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비행기? 버스도 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손녀딸이 더듬거리며 할머니의 생을 짧게 요약해줬다. 긴 설명도 필요치 않았다.

그 노인에게 세상이란 '죄 없이 갇힌 감옥'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2020년 오늘 우리가 겪는 답답함을 80년쯤 견뎌낸 것이다. 상상력조차 가닿지 않는 아득한 세월. 그럼에도 할머니는 낯선 여행자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손녀도 마찬가지.

두 사람의 눈동자는 차안(此岸)의 잡다한 번뇌와 고민을 보고 있지 않았다. 달관(達觀)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하지만 더없이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건 내가 피안(彼岸)을 보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차안의 인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지금도 인도 할머니와 손녀를 만난 그날, 그 장면이 떠오를 때면 한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삶의 비의(悲意)와 눈물을 탁월하게 형상화해낸 이승철 시 '순천 와온에 와서'의 문장이 눈앞으로 흘러간다.

순천 와온마을 야트막한 산언덕에 올라
다시는 너로 인해 무너지지 않겠노라며
얼마나 다짐하며 속울음 삼켰던가
시린 바람결에 솔잎은 저물도록 흩날렸고
새하얀 숫눈송이는 천지간 아래 꽃잎 지듯
달려와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황량하던 농갓집 햇살과 더불어 온종일
나부대며 쏘다닐 때 썰물 져 가던 먼 바다
한 목숨이 왜 이리 길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세월 속에서 늙지 않으려 발버둥친 그녀와
고향 땅 장형(長兄)의 아주 낯선 행보에 대하여
차마 가슴으로, 가슴으로는 용서키로 했다

새붉은 노을 아래 처박혀 있던 거룻배 몇 척
바다를 품지 못한 육신은 저리도 허허로웠다
그날 첫입은 못 견디도록 야문 맛이었다가
나중은 종마(種馬)처럼 날뛰던 기억들만 생생했다
늑골 속으로 아사삭대던 살과 피들이여
이제 나에겐 돌봐야 할 식구들이 없도다
썰렁한 빈 방, 또다시 줄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래도 한때는 달콤삼삼한 날들도 있었다
야무진 수컷처럼 못내 성글어지던 그였다
한입 가득 안기던 알싸한 총각김치 같은 날들은
어디로 떠나갔기에 이젠 기억에도 없다
육통 구멍에 들숨 하나 모셔 살기 힘들어
그날 또다시 찾아간 와온 바다 위로
곰삭은 뼛가루만 말없이 넘실대고 있었다.

 

가난 속에서도 언제나 웃는 얼굴인 인도 아이들. 그들도 ‘다음 생’이 있다는 걸 믿고 있을까? ⓒ 홍성식

 
2020년 오늘, 우리는 윤회를 믿는 염소보다 행복한가?

그것이 실연인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슬픈 사연을 가진 시적 화자는 저물녘 석양이 심장을 쪼그라지게 만드는 서쪽 바닷가 와온 마을에 간다.

거기서 '다시는 너로 인해 무너지지 않겠노라며/얼마나 다짐하며 속울음 삼켰던가'라고 가슴을 치며 '바다를 품지 못한 육신은 저리도 허허로웠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너나없이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돌봐야 할 식구가 하나 둘 사라지고, 썰렁해진 빈 방에서 홀로 담배나 피워대는 허망한 일에 다름없다.

그래서다. 그곳이 와온마을이건, 인도의 바닷가마을이건 '육통 구멍에 들숨 하나 모셔 살기 힘들어/그날 또다시 찾아간 와온 바다 위로/곰삭은 뼛가루만 말없이 넘실대고 있었다'고 시를 마무리한다.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1941~2018)가 연출한 영화 중에 <리틀 부다(Little Buddha)>란 게 있다.

불교 큰 스승의 환생이라고 지목된 꼬마아이의 행적과 해탈을 향해 가는 석가모니의 삶에 카메라를 밀착시킨 이 작품에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곧 목이 잘릴 염소 한 마리가 울고 있기에 백정이 묻는다.
"죽음이 슬퍼서 그러느냐?"
염소가 답한다.
"아니다. 나는 1만 번째 다시 태어날 땐 사람이 된다는 약속을 받았다. 9999번 환생을 겪었고 지금이 1만 번째 죽음이다.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난다. 슬퍼서가 아니라 기뻐서 운다."


그런데 염소가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과연 기쁜 일일까? 베르톨루치 감독이 객석을 향해 던진 화두의 선명함이 영화를 본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안에 남았다.

시인이란 세상과 인간을 회의하고 아프게 들여다보는 존재.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승철 역시 이런 말로 2020년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우리가 2600년 전 윤회를 믿었던 염소보다 진정으로 행복한지 묻고 있다.

"황량하던 농갓집 햇살과 더불어 온종일/나부대며 쏘다닐 때 썰물 져 가던 먼 바다/한 목숨이 왜 이리 길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인도 #이승철 #순천 와온에 와서 #리틀 부다 #베르톨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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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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