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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회찬은 6411 버스를 탔을까, 여태 몰랐던 이야기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④-1 : 6411번 버스

등록 2020.12.17 08:38수정 2020.12.1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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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을 선보인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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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6일 저녁 서울 연세대 대강당. '진보정당 대표의원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 당시 현장 모습. ⓒ 노회찬재단

 
6411번 버스,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하다

2018년 7월 26일 저녁 서울 연세대 대강당. '진보정당 대표의원 자유인‧문화인‧평화인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서는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노회찬의 당 대표 수락연설 영상이 비춰졌다.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 노회찬의 생전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장내는 숙연해지며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서 6411번 버스를 불러낸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해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 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인 '투명인간'을 호명하는 2005자(공백 포함)의 연설문이 뒤늦게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던진 것이다.

노회찬의 마지막 거처였던 정의당은 "노회찬 정신은 바로 '6411번 버스' 정신"이라고 말한다. 2019년 노회찬 1주기를 맞아 이정미(정의당 전 대표)는 '노회찬 정신의 양 날개, 6411버스와 진보정당'이라는 추모의 글을 <프레시안>(2019.7.23.)에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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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노회찬이라는 세 글자를 우연히 읽거나 듣게 되었을 때, 아직도 가슴 한 복판에서는 통증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통증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정의당과 저는 '노회찬 정신'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정신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회찬 정신은 무엇일까요? 정의당은 간명하게 그것을 '6411버스 정신'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6411버스 정신'은 우리 정치가 한 번도 제대로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거명하는 것이고 권력 밖으로 밀려난 시민들을 정치의 한복판의 데려오는 것입니다. '6411 버스 정신'은 사회 경제적 약자에 대한 막연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아닙니다. '6411 버스 정신'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배제된 한국 민주주의를 바꾸겠다는 정치적 소명입니다. 그래서 노회찬 정신의 또 다른 한쪽 날개는 '진보정당'입니다."


2020년 노회찬 2주기를 맞아 심상정은 트위터(2020.7.18.)에 글을 올린다. "당에서 왼쪽, 오른쪽 방향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면 노 대표님은 늘 아래로, 더 아래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으라고 하셨습니다. 대표님의 말씀을 등불로 삼아 정의당은 더 낮은 곳으로, 6411번 버스 곁으로 가겠습니다."

2020년 창당 8주년(2020.10.21.) 기념식에서 김종철(정의당 대표)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대변한 발자취가 정의당의 역사"라며 "노회찬 전 대표의 6411번 버스로 표현되는 정의당의 변함없는 창당정신"이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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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정의당 김종철 대표, 강은미 원내대표와 전현직 대표 및 당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창당 8주년 기념식에서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진보정의당 당대표 취임사와 퇴임사


노회찬이 떠나기 전, 그의 '6411번 버스'와 '투명인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진보정의당 당대표 취임연설(2012.10.21.)과 당대표 퇴임 고별사(2013.7.21.)를 통해서였다. 6411번 버스를 호명하는 두 연설의 본문 내용은 시작 부분과 뒷부분을 제외하고는 똑같다.

노회찬은 6411번 버스를 통해 (1)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불러낸다. : 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한 달에 85만 원 받는,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인 50, 60대 아주머니 분들 ② 현대자동차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③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④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

그리고는 (2) 투명인간의 고단한 삶과 '진보'의 부(존)재를 묻는다.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어서 (3) 진보정당의 현주소를 고백하며 진보정당의 지향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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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의당 당대표 취임연설(2012.10.21.). ⓒ 진보정의당

 
(취임연설 중)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 진보정당,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 강물은 아래로 흘러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중정당은 달리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퇴임고별사) "진보정의당의 앞길에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 철로는 놓여 있지 않습니다. 진보정의당의 앞길에는 이정표도 신작로도 없습니다.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선 우리는 더 바뀌고 더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혁신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혁신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할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믿고 여기까지 함께 온 분들께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그 길을 걷는 길동무들이라 합니다."


삼성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당원 자격조차도 '박탈'당한 노회찬, 그럼에도 당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심경이 노회찬의 당대표 고별사 말미에 오롯이 담겨있음이 느껴진다.
   
기억에서 잊힌 2010년 선거캠페인, '6411, 새벽첫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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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 '투명인간'과 노회찬. ⓒ 노회찬재단

  
노회찬의 정치궤적에서 6411번 버스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2010년 지방선거 진보신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 선거운동 과정에서였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잊힌', '실패한' 선거캠페인이었다.

2010년 4월 13일 노회찬은 서울시장 예비후보 출마 당시 '함께하는 새벽 첫차'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두 명의 수행 보좌진(이종수·윤희만)과 함께 초록색 6411번 버스 새벽 첫차에 오른다. 6411번 버스는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1단지까지 대략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다. 구로에서 강남까지 6411번 버스요금으로 노회찬이 낸 돈은 1000원이었다(교통카드는 900원).

'노회찬은 하고 많은 버스 중에 왜 6411번 버스를 탔을까?' 내가 이 글에서 주목하는 물음이다. 

새벽 4시 30분 이전에 좌석이 가득 차는 2019년의 서울 버스노선은 179개였다고 한다(2010년이라도 크게 차이는 없었을 것으로 본다). 그 가운데 새벽 첫차로 6411번 버스를 노회찬 선본에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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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 '투명인간'과 노회찬. ⓒ 노회찬재단

   
당시 노원구 상계동에 거주하던 노회찬은 묻는다.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6411번 버스를 타야 하나? 다른 버스들도 많을 건데." 어쩌면 당연한 질문일 수도 있다. 대표비서실장 오재영이 말한다.

"구로에서 출발해 강남에 도착하는 노선이기 때문에 상징성이 있습니다. 6411번 버스 꼭 타셔야 합니다." 

오재영의 배우자 권신윤이 2020년 11월 전화로 들려준 이야기다. 

노회찬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오재영이 말한 구로와 강남의 상징성은 아마 다들 눈치 챘을 것이다. 구로는 1960, 1970년대의 '굴뚝 제조업' 구로공단에서 오늘의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의 상징적 일터였다. '말죽거리 신화' 강남은 한국사회 부의 대표적 공간이자 가진자들의 상징적 삶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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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 '투명인간'과 노회찬. ⓒ 노회찬재단

   
6411번 새벽첫차에 오른 노회찬은 승객들과 나눈 대화와 버스 안 풍경을 영상에 담아 '노회찬의 새벽 첫차'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 올렸다. 온라인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노회찬 : "제일 힘드신 게 뭐예요?"
"우리요? 어휴 일하는 데 힘들다고 하면은 안 되죠."

- 노회찬 : "아니, 일이야 뭐 또 다 잘 하시겠고."
"힘드는 거는 저기 아침에 버스 타는 게 힘들죠.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여기서 많이 시달리니까, 다른 거는 뭐."

"일하는 것 자체보다도 만원버스 새벽 출근길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노회찬은 버스에서 내린 뒤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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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 '투명인간'과 노회찬. ⓒ 노회찬재단

 
"오늘 새벽 4시 10분에 대림동에서 버스를 탔는데 종점인 개포동까지 왔습니다. 5시 40분이 지금 시각이고요, 1시간 반 걸렸습니다. 흔히들 새벽 첫 버스하면 승객이 별로 없고 텅텅 빈 버스로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새벽 첫 버스가 타자마자 승객이 완전히 만원이 됐습니다. 이 콩나물시루와 같은 버스를 1시간 이상씩 타고 출근하는 분들, 그분들의 평균 연령이 60대가 넘는 것 같습니다. 

참 어렵게 사시는 우리 서울 시민들의 모습을 오늘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일하는 것보다 출근하는 게 더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저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첫차 운행 편수를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심 때 빌딩에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국이나 찌개도 끓이지 못하고 마른 반찬으로 도시락밥을 드시는 분들, 참으로 가슴이 아려옵니다.

결국 서울을 만들고 있는 분들, 서울을 떠받들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이 새벽에 힘든 출근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상의 마지막 자막은 '노회찬이 서울 시민을 응원합니다'였다.

해장국으로 빈속을 든든히 채운 노회찬은 이후 일정으로 지하철 출근길 인사(30차)를 마치고, 명동 일대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올레' 선거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④-2]로 이어집니다(바로 읽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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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번 버스 '투명인간'과 노회찬. ⓒ 노회찬재단

 
[보론] '초록색' '6411번' 버스의 의미

2004년 7월 1일 서울시의 시내버스 체계개편을 통해 서울에는 주요 거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파란색(B) 간선버스, 지하철 및 간선버스 환승 편의를 위해 여러 지점을 운행하는 초록색(G) 지선버스가 달린다. 서울 외곽과 시내를 연결하는 빨간색(R) 버스와 특정 지역 안에서만 도는 노란색(Y) 순환버스, 동네 골목을 누비는 마을버스도 있다. 

버스에 적힌 번호 0부터 7까지는 시내 8개 권역을 표시한다. 서울 북동쪽의 '도봉·강북·성북·노원'(1번)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북서쪽 '은평·서대문·마포'(7번)까지 순차적으로 번호를 붙였고, 중심부 '종로·중구·용산'은 0번이다. 

6411번의 '6'은 출발지가 '강서·양천·영등포·구로' 지역이고 '4'는 도착지가 '서초·강남'이란 뜻이다. '11'은 '64~'로 시작하는 버스 노선들을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일련번호다. 초록색 6411번 버스는 지선버스로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강남구 개포동을 오간다. 
#노회찬 #6411버스 #노회찬재당 #오재영 #투명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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