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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추적으로 찾은 사위,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책줍일기] 김비·박조건형 작가, 장모의 40일간 동거기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

등록 2020.12.21 08:14수정 2020.12.2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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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더미 속에서 사심을 담아 알리고 싶은 책, 그냥 지나치긴 아까운 책을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가 골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얼마 전 한 선배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웃었다. 본가에서 보낸 택배를 찍은 사진이었다. 국물과 냄새가 새어 나올까 비닐봉지로 두세 겹 꽁꽁 싸맨 김치통, '서비스'로 넣은 사과 세 알, 멸치볶음과 무말랭이까지. 어쩜 반찬 품목도, 구성도 이렇게 소름 돋게 비슷할까. 딱 며칠 전 우리 엄마가 보낸 택배 같았다. 

택배 상자에 담긴 마음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바로 한 김장 김치를 얼른 먹이고 싶어서, 귀찮다고 대충 끼니를 때울 게 뻔하니 금방 상하지 않는 밑반찬을 몇 개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서, 비싸다고 안 사 먹는 과일을 이렇게라도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그 중구난방의 음식들을 택배 상자에 꼭꼭 눌러 담았으리라. 

그 마음을 알아서 자취를 시작하고 몇 년째 먹어 이젠 질릴 대로 질린 멸치볶음과 무말랭이를 받아도 군말 없이 냉장고에 넣지만, 가끔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혼자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음식을 받거나,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되는 생필품까지 가득 담은 택배를 받을 때 그렇다. 배부른 소리라는 걸 알지만, 애정이 부담이 되는 순간이다. 

'이거 다 못 먹어서 버릴 텐데', '이런 건 내가 사는 게 더 편한데' 싶은 생각이 들면 꼭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한바탕 투덜거리게 된다. 미안함이 속상함으로, 또 죄책감과 답답함으로 이어져 기어코 짜증을 내고야 만다. 언젠간 이 묵직한 꾸러미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순간이 올 거란 걸 알면서도 그렇다. 엄마에게 이 세세한 감정의 결을 다 툭 터놓고 보여준다면 서로 괜한 상처를 만들지 않으련만, 나는 번번이 설명에 실패하고 만다. 

꼭 택배 상자를 두고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이를 먹고, 혼자 산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랜만에 본가에 갔을 때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엄마만의 방식으로 가꿔놓은 모든 것들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이젠 좀 편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괜한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 때면 꼭 날 선 말이 나왔다. 

여느 때처럼 집에 내려가 잠자는 시간만 빼고 계속 짜증을 부리다가 서울로 올라왔던 어느 날, 찝찝한 마음을 곱씹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고작 몇 년 혼자 살아봤다고 엄마라는 '타인'의 터전에 대해, 일상에 대해 함부로 떠들며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삶을 제멋대로 침범하고 있다는, 최초의 반성이었다.  

무척 사랑하지만 가끔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친밀한 타인, 가족과 어떻게 불화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우리의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소설가 김비 작가가 쓴 에세이 <복희씨와 헤어질 때 절대 울지 말아야지>를 펼쳐든 건,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어서였다. 

너무 다른 세 사람의 얼렁뚱땅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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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 ⓒ 김영사

 
지난 4월, 김비 작가는 남편 박조건형 작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하기 전까지, 두 달을 살고 올 작정이었다. 이 두 달 살이의 목적은 모호했다. 일거리를 들고 가니 여행이라고 하긴 어려웠고, 완전히 정착하는 것도 아니니 '생활'하러 간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유일하게 정해놓은 계획은 반려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된 김비 작가의 어머니 '복희씨'의 집에 머물며 김 작가는 글을 쓰고, 그의 신랑 박조건형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궤적도, 성격도 다른 세 사람의 '얼렁뚱땅 동거'가 시작됐다. 에세이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는 그 여행 겸 생활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노랫말 같은 혼잣말을 끊임 없이 늘어놓고(복희씨), "대답 같지 않는 대답으로 추임새를 넣"고(김비 작가), "고집스러운 침묵으로 베이스를 까는"(박조건형 작가) 세 사람은 일하다가 함께 밥을 차려 먹고, 마당의 꽃을 구경하고, 섬에 가고, 오름을 오르고, 제주에 수십 년을 살고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를 탐방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불협화음 같은데, 크게 모난 데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이어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두 달 살이'라는 계획은 40여 일로 줄어들지만,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세 사람 사이에 전에 없던 진한 유대감이 피어오르진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평생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래서 여행지에 가서도 각기 다른 부분에 눈길을 빼앗기는 이들이 한 달 조금 넘는 동거로 어떻게 끈끈해질 수 있을까.  

다만, 이들은 그토록 다른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서서히 익힌다. 함께 하는 동안 때로는 각자가 지닌 아픔을 떠오르게 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가늠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가깝고도 먼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서로의 고유성을 지킬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제주도에 머물던 어느 날, 오랜 시간 우울증과 함께 해온 박조건형 작가가 두 사람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훌쩍 사라진다. 밤늦도록 그와 연락이 닿지 않자, 김비 작가와 복희씨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위치 추적까지 해가며 그를 찾아낸다. 제주를 떠난 그의 발길이 향했던 곳은 양산의 집이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양산에서 신랑을 마주한 김비 작가는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그저 괜찮다고 말한다. 복희씨도 마찬가지. 곧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 그를 품어줬을 뿐이다. 누구도 책망의 말을 하거나 홀로 떠난 이유를 따지지 않았다. 이들은 묻지 않는 것으로 안도를, 그리고 환대를 표현했다. 
 
"... 우린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여행은 계속되고 있었을까? 양산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양산으로, 다시 제주로.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새로움을 꿈꾸어야 하는 삶으로.

복희씨는 별다른 말 없이 처음처럼 신랑을 반갑게 이해해주었다. 신랑도 복희씨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삶이 쓸모 있을까? 이렇게 다시 돌아온 서로에게 잘 왔다, 어서 오라는 환대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무도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우린 잠이 들었고, 눈을 떴고, 다시 복희씨가 차려준 아침을 먹었다."  (p.172)
 
제주도에 있는 독특한 '노인 보호구역'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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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 pixabay

 
김비 작가가 제주에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을 여행할 때면 꼭 유념하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말소리나 발소리를 줄일 것, 주민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할 것". 우리에겐 낯선 여행지가 주민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익숙한 안식처인 것이다. 

때문에 김비 작가의 표현대로,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든 외지인의 방문은 그들에게 '침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제주도 마을을 돌다 보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독특한 표지판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바로 '노인 보호구역' 표지판이다.
 
"노인 보호구역 표지판 아래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어떤 부탁 같았다. '우리 아이를 부탁합니다'라는 말처럼 '우리 부모님을 부탁합니다' 같은. '당신의 부모님과 다르지 않은 분들입니다' 같은. 

노인 보호구역 표지판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일까? 어디에나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있으며, 우리는 누구든 보호하는 존재여야 함을 일깨우는 선명한 부탁들." (p.190)

문득 가족이라는 친밀한 타인을 마주할 때, 그리고 그만의 공간에 내가 '침범'하려 할 때, 앞서 언급한 실종 에피소드와 함께 꼭 이 표지판을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이 사려 깊은 표지판을 기억해낸다면, 내가 보호해야 할 타인의 고유한 삶과 꼭 유지해야 하는 적당한 거리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걸 낱낱이 파악해야만 그의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도, 모든 걸 이해하지 않고서도, 상대의 알 수 없는 마음을 지켜주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 복희씨, 김비 작가, 박조건형 작가가 40여 일의 제주살이를 통해 알려준 소중한 지혜다. 
 
"가을에, 다시 올게요."
"그러자, 그때는 오름 가자. 오름! 박 서방도 잘 살고... 아무 걱정 말어! 그냥 즐겁게 살아, 즐겁게!"

복희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뿐이지만 하지 못한 말이 많다는 걸 안다. (중략) 복희씨와 헤어질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울지 말아야지, 나는 다짐했었다. 다행히 눈물은 나지 않았다. 복희씨와 웃으며 포옹하고 복희씨와 신랑이 포옹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엉뚱하게도 두 사람이 포옹하는데 코 끝이 시큰했다. 으이그, 징그럽도록 사랑스럽고 사람 좋은 밀양 박씨들,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밀양 박씨들." (p.258~261)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

김비 (지은이), 박조건형 (그림),
김영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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