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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위원장님, 2분 30초만 내주십시오

[교제살인 - 그 후 ③] 교제폭력 양형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등록 2020.12.24 17:54수정 2020.12.2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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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교제살인 기획을 통해 최소한 열흘에 한 명이 교제 상대에게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입법·사법·행정 각 분야에 걸쳐 대안을 제시합니다. 물론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변화와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 보도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편집자말]
그 판결문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교제 중이었던 피해자를 칼로 무려 24회 이상 찔러 살해했다고 판결문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습니다. 양형 이유 중에는 더더욱 납득이 어려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이미 죽었고 말이 없는데도, 재판부는 오히려 가해자의 격분을 헤아렸습니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사귄 이후에도 여러 명의 다른 남자들과 만나면서 거짓말을 반복하였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믿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략) 피해자가 계속하여 거짓말과 외박을 반복하는 한편 피고인을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까지 보이자 마음의 상처와 그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분노가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커졌는데 사건 당일 피해자 말에 격분하여 이성을 잃고 피해자를 살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18고합○○○)

편차

반면 교제폭력(데이트폭력) 그 자체를 특별히 형벌이 더 무거워야 하는 범죄로 적시한 판결문(2018고합○○○)도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주거지, 연락처, 직장, 가족 및 친구관계, 생활 습관, 행동반경 등 모든 요소가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어 범행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가해자에게 징역 20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연인관계 내부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폐단이 크고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로서,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를 상대로 한 신뢰관계 및 피해자의 약점을 이용한 범죄라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고 비난 가능성도 높다"고도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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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양형기준 ⓒ 양형위원회

 
이런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마이뉴스> 독립편집부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교제살인 판결문 총 108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계속 마주쳤던 질문이었습니다. 판사의 성인지 감수성에 따라 양형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현직 판사는 "그 편차가 납득할 수준 이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면서 "양형 기준 제도가 시행되면서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양형 편차가 제법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양형 기준에 주목했습니다. 판사 개개인의 판단이나 책임에만 의존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교제폭력 또는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양형 기준에 반영해서 그 편차를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전합니다. 

의견

첫째,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의 정의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행 양형 기준은 "신체 또는 정신 장애, 연령 등으로 인하여 범행에 취약하였고, 피고인이 이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 등을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교제관계나 부부관계에서 발생한 범죄 피해자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사는지, 어디서 일하는지, 누구와 친한지 등을 모두 알고 있는 상대로부터 벗어나기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판결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108개의 사건 중 76건(70.4%)이 피해자 거주지나 그 근처 또는 차량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을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범죄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범행에 취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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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살인범죄 양형 기준 중 감경요소와 가중요소 ⓒ 양형위원회

 
둘째, 양형 기준을 보면 감경, 기본, 가중 영역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적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제관계 또는 부부관계에서 일어난 범행일 경우 동일 피해자에 대한 '누범(또 죄를 지음)'을 양형 기준의 가중 영역에 반영해주십시오. 범행에 앞서 과거 동일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처벌불원이 있었을 경우, 이 또한 가중 영역에 적용해주십시오. 

저희가 분석한 바로는 앞서 동일 피해자를 상대로 한 협박, 폭행, 감금, 살인 미수 등으로 가해자가 전과가 있었던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에 상습적 폭행 사실이 적시된 경우는 108건 중 22건(20.4%)나 됐습니다. 또한 앞서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다가 동일 가해자에게 살해된 피해자는 모두 6명이었습니다.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를 상대로 한 '누범' 사실과 처벌불원 이력은 마땅히 가중 요소로 판결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교제관계 또는 부부관계에서 일어난 범행에서 피해자(측)의 처벌불원을 일반감경인자로 적용해주십시오. 

양형에서 특별 인자는 일반 인자보다 그 영향력이 더 큽니다. 앞서 양형위원회는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아동·청소년의 처벌불원을 일반감경인자로 낮춘 바 있습니다. 범행에 극도로 취약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보복을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 공유 관계로 인해 할 수 없이 처벌불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피해자의 처벌불원은 일반 감경 인자로 낮춰 감형에 반영되는 정도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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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열흘에 한 명이 교제폭력으로 죽고 있습니다. 범행에 취약한 '나'가 너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교제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양형 기준 개정이 필요합니다.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교제살인' 일러스트. ⓒ 이강훈

 
열흘에 한 명이 교제폭력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만 그렇습니다. 여기에 가정폭력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법이 반영해야 하는 현실은 분명 더 참혹할 것입니다. 범행에 취약한 '나'가 그만큼 많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이 양형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형위원회는 국민의 건전한 상식이 반영된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하여 출범하였다." (2020 양형기준 발간사 중)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교제 상대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부터 피해자는 빠져나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범행에게 내려지는 형벌의 정도(양형) 차이가 적지 않다는 것.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이 건전한 상식임에 분명합니다.

이 제안서를 다 읽는데 2분 30초면 충분합니다. 양형위원회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독립편집부 이음 : 이주연 기자,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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