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1 07:45최종 업데이트 20.12.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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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과 과학적 발견들이 사실이며 우리는 이를 뒤따라가야 한다는 믿음 덕분에 오늘날 유럽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연방의회에서 12월 9일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24시간 기준 590명에 달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강력한 조치에 따라줄 것을 호소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유럽만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전은 과학적 발견과 그 응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도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와 과학적인 대응으로 우리는 1년 가까운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마스크 사용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바이러스 변이 모니터링,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이에 포함된다.

좀비처럼 계속 인용되는 거짓 논문

그렇지만 과학적 사실을 따른다는 말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특히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은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할 때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를 테면 과학 저널에 실리는 연구 논문 중에서도 상충하는 결론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과 가설과 질문에 따라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충분한 관찰 결과가 모여야 하는 만큼 이 과정에서 상충하는 결론은 흔히 있는 일이며 대개 후속 연구 결과들이 쌓여 최종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인들과 달리 유라시아인들에게 네안데르탈인과의 혼혈 흔적이 남아 있다는 유전체 상의 발견을 보자. 지금은 정설로 자리 잡았지만, 초기 연구가 발표될 때만 하더라도 네안데르탈인과의 혼혈이 아니더라도 현대 인류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호주 등으로 퍼지기 이전인 수 만년 전 시점에 아프리카에 살던 인류 집단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던 유전체 상의 구조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여러 가설들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다 점차 현대 인류를 비롯해 여러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화석에서 채취한 유전체들의 서열이 분석되면서 유라시아인들과 네안데르탈인들 사이의 유전적 교류를 더 정교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보다 대중을 더 헷갈리게 하는 경우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논문 중 하나가 거짓으로 판명 날 때다. 그런 경우 대중들은 과학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되기 쉽다. 더 큰 문제는 거짓으로 판명된 연구 결과가 좀비처럼 남아 계속해서 근거로 인용되는 경우로, '검증된 과학'이라는 허울을 쓰고 나타나는 가짜 뉴스에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 MMR(홍역·볼거리·풍진)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조작된 연구 결과를 <란셋>지에 발표했던 영국 의사 앤드류 웨이크필드가 사기 행위 발각 후 논문의 철회뿐 아니라 의사면허가 박탈됐음에도 여전히 백신 반대자들에게 인용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코로나19 치료제 논란

과학 논문 논란의 가장 최근 사례는 코로나19 치료제로 떠올랐던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에 대한 것이다. 웨이크필드의 사기 연구와는 또 다른 흥미로운 경우인데, 후속 연구들에 의해 자연히 검증됐을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을, 팬데믹이라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홍보를 하면서 대중들 사이에 퍼졌다. 

올해 초, 수십 년간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되어 오던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환자들의 치료나 예방에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케이스리포트(실험이 아니라 우연한 관찰을 보고하는 것) 성격의 보고들이 중국에서 나왔다. 이후 프랑스의 바이러스학자 디디에 라울(Didier Raoult)은 36명의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에 비상한 효과가 있다고 알렸다.
 

프랑스의 바이러스학자 디디에 라울(Didier Raoult) 박사 ⓒ 연합뉴스

 
이 논문이 국제 화학요법 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Antimicrobial Agents)에 실린 것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한창 번지던 3월 20일로, 이 같은 주장은 발표 직후 높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이 약물을 시험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치료제가 시급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학계에서는 뜨거운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당장 논문이 발표되었던 학회지에 4월 3일자 공지가 떴다. 국제 화학요법 학회장이 라울의 논문이 "국제 화학요법 학회지의 표준 기준에 못하는 수준"이며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한 것. 일부 학자들은 어째서 우려만 표명을 하고 이 발표를 저지하는 다른 추가 조치는 안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동 학술지에는 네덜란드 라이든 대학의 감염병학 교수 프리츠 로젠달(Frits Rosendaal)의 리뷰도 발표되었다. 그는 디디에 라울의 논문에 대해 "거의 혹은 완전히 정보가치가 없게 하는 수준의 중대한 방법론적 결함들이 있다. 따라서 이 보고에서 제시하는 결과들을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과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나 이 약물의 사용을 제안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치료제가 다급하게 필요한 현 상황과 잠재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 논문의 문제점으로 중대한 방법론적 결함 외에도 논문에 실린 결과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능이라는 결론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미생물학자이자 위조된 연구 결과들을 찾아내고 이른바 '과학적 진실성(scientific integrity)'을 위해 일하는 엘리자베스 비크(Elisabeth Bik)' 역시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가지는 실험군과 대조군 사이에 나이나 성별, 증상의 정도, 입원한 병원 등의 여러 요소들이 제각각이라 전혀 대등한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36명의 환자 중 하이드록시클로로퀸으로 치료한 실험군 26명 중 경과가 좋았던 20명만 분석에 사용된 점이다. 포함되지 않은 6명 중 적어도 4명은 중환자실로 이송되거나 사망한 경우였고, 이는 분명 상태가 나빠진 것임에도 분석에서 누락시켰다고 지적했다. 

엘리자베스는 이 외에도 논문의 데이터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 논문이 학회지에 제출된 것이 3월 16일이었는데 합격된 시점이 3월 17일이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통상 논문이 발표를 위해 제출된 이후에는 '피어 리뷰'라 불리는 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와 피드백, 이를 바탕으로 논문의 결과와 원고 내용을 개선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린다. 

이렇게 디디에 라울의 논문은 발표 이후 여러 전문가들의 집중 포화를 받았지만, 제대로 된 검증과정 없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위시한 유명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홍보가 돼 계속해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전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했고 크고 작은 논문들이 끊임없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논문들 중에서 언론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것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장 관련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라는 내용의 논문이 <란셋>에 발표되었다가 불과 며칠 만에 철회되었을 때였다.

세계적인 권위의 저널에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하이드록시클로로퀸으로 임상 시험을 하던 연구자들은 즉시 실험을 중단시켰다. 그 파장은 대단했다. 그러나 정작 논문의 저자들 일부가 며칠 만에 연구에 사용된 데이터 정보원이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논문 철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팬데믹 상황에서 긴급하게 조성된 여러 연구자들의 공동 연구 형태에서 발표를 서둘렀던 연구자들의 허점이었다.
 

<란셋>지에 실렸다가 며칠 만에 철회되었던 논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심장 관련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보고했다. ⓒ 란셋

 
논문은 즉각 철회됐지만 권위 있는 저널이 이렇게 허술하게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 일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이 같은 심각한 영향력을 갖는 논문이 며칠 사이에 발표와 철회를 하면서 여러 약물 시험들을 중단시키고, 프랑스 등에서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치료 목적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처사로까지 이어지면서 이러는 동안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게 아니냐는 원성이 이어졌다. 

6월 5일자 <가디언> 기사는 <란셋>의 이 논문 철회를 현대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논문 철회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한 연구결과들

<란셋> 논문 철회 사건 이후에도 하이드록시클로로퀸 효과에 대한 실험들은 계속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결과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의 치료나 예방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연구진들이 지금까지 최대 인원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면 1542명의 입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치료 후 28일 시점에서 25.7%가 사망한 반면, 이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표준치료만 받은 3132명의 환자들 중에서는 23.5%가 사망했다. 두 대조군 사이에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연구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된 23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무작위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일반 치료로 나누어 처방한 연구였는데 이 경우에도 코로나19로 증상이 발전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외에 발표된 대부분의 연구들은 위 연구들과 달리 작은 규모의 실험들이었는데 최근 이 같은 연구 24개를 종합분석한 메타연구가 <미국 내과학회>지에 발표되었다. 결론은 역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나 클로로퀸으로 코로나19를 치료한다는 근거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예방 효과에 대해서도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진이 <뉴잉글랜드 메디슨>지에 가장 큰 연구를 발표했는데, 보호도구 없이 코로나19 환자와 10분 이상 가까이 접촉한 821명에게 각각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나 플라시보를 보내주었을 때,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한 사람 중 12%가, 플라시보에서는 14%가 각각 코로나19 증상을 보였다. 역시 통계적으로 의미 없는 차이였다.

한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나 예방에 효과를 보인다는 내용으로는 큰 규모의 연구가 발표되지 않았다. 디디에 하울 박사가 훌륭한 연구라고 코멘트한 논문 하나가 <메드아카이브>에 실렸다가 최근 철회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하이드록시클로로퀸 ⓒ 연합뉴스

 
이렇게 방대한 결과들이 모이면서 점차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미칠 치료 효과에 회의적이 되고 있다. 최종 결론에는 큰 데이터가 중요한 만큼 더 관찰 자료가 모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코로나19의 치료제로 거론되는 것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뿐만이 아닌 상태에서 연구진들이 이 실험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다른 더 좋은 잠재적 약물들을 실험할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 된다는 점에서도 관련 실험들이 이제 중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학에서의 합의는 권위 있는 하나의 논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향력 있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 관심을 더 받게 되는 게 사실이지만 후속 연구들에 의해 끊임없는 도전을 받는다. 그러는 중에 드러나는 일부 과학자의 탈선이나 꼭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더라도 흠결 많은 분석과 같은 것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임이 분명하다.

다만 여러 연구자들의 교차 검증과 새로운 결과가 쌓여 가는 과정에서 쭉정이가 솎아지듯 이들은 결국 걸러지고, 더 나은 합의가 도출되어 간다는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결국 과학적 사실을 대하는 자세란 이 같은 검증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과학적 합의를 지켜보는 자세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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