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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반대' 뒤에는 '아파트 재건축'이 있다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본 경원중 '마을결합형 혁신학교' 공모 취소 사태

등록 2020.12.21 17:38수정 2020.12.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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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원중 후문 양켠에 붙어 있는 투쟁 띠. ⓒ 윤근혁


지난 12월 10일, 서울 잠원동 경원중학교 학교운영위원회는 긴급 임시회를 열어 서울시교육청에 신청한 '마을결합형 혁신학교' 공모 취소를 결정하고 이를 가정통신문으로 알리며 유감을 표명했다.

앞서 '마을결합형 혁신학교 반대'를 외치며 7일 밤늦게까지 학교 앞에서 교직원들을 위협하고 집단행동을 벌인 반대세력의 교육권 침해, 폭력 행위가 다수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이들은 지난 11월 말경부터 주로 온라인 부동산·학부모 커뮤니티를 통해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반포3동, 잠원동 일대에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관련기사 : "교장, 나는 너를 죽어서도..." 저주 펼침막에 항복한 교육청 http://omn.kr/1qw6r )

뚜렷한 근거 없는 혁신교육 반감...9년차 혁신학교 서초중은 '입시 우수'  

이들의 반대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마을결합형 혁신학교'는 이름만 바뀐 혁신학교다. 둘째, '학교 전환'에 대한 학부모·지역주민 대상으로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 없어 민주적 절차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선 '이름만 바뀐 혁신학교'를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대 게시물을 읽어도 그렇고, 1만 2000여 명이 서명한 서울시교육청 시민청원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결사반대'를 보면 '교육감 개인의 사리사욕에 학교를 이용 말라'는 3줄짜리 내용이 전부다. 도대체 혁신학교가 왜 문제인가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지난 10여 년간 시도교육청에 의해 추진된 '혁신교육', 혁신학교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왔다. 특히 입시위주 교육과정을 탈피한 창의적 교육활동이나 수업방식 변화를 표방하기에 입시에 불리해질 수 있는 '학력저하 우려'가 자주 도마에 오르내렸다. 이에 대한 갖가지 연구결과와 발표들이 있지만 같은 서초구에 있는 혁신학교를 보아도 이러한 걱정은 과도한 감이 있다.

학교알리미 공시를 활용하는 진학정보사이트에 따르면, 9년째 서울형혁신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서초중학교의 2019학년도 진학자 순위는 서울 406개교 중 과학고 10위, 외고‧국제고 20위, 자율고 50위로 상위권을 차지한다. 서초구 내 특목고 진학률(%)은 16개교 중 6위였다. 2016년엔 자율고 진학률이 관내 1위였다. 사실 서초구는 서울시 평균 자율고 진학률 9.4%를 훌쩍 뛰어넘는 학교가 반포‧잠원동에 9개나 있고, 작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 지역은 반경 3km 내 자율고가 3~4개나 소재하고, 그 외 고교 수가 극히 적다는 지역적 특성도 있다. 따라서 만약 이 학교들과 격차가 있다 해도 혁신학교 서초중이 '입시 우수 학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초중은 이미 2013년 교육부 주관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혁신학교 지정 이후 어떤 문제가 있었다면, 서초중학교가 9년 넘게 혁신학교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마을결합형 혁신학교'는 과연 혁신학교인가

그러면 이번에 경원중학교가 신청을 포기한 '마을결합형 혁신학교'는 과연 흔히들 알고 있는 혁신학교일까. 우선 혁신학교는 신청 학교에 3대 운영과제가 부여되고 연 평균 4000-5000만 원의 예산지원이 따른다. 교육과정은 일괄적이지 않고 학교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데 앞서 언급한 서초중학교는 영어교육, 학습멘토링, 문예‧스포츠 교육에 성과를 보였다. 또한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자율학교 지정이 가능해지는데, 자율학교는 법령에 의해 자율권 행사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의 홍보물이나 공개된 '2021년도 운영현황'을 보면 마치 경원중학교가 이 혁신학교가 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내년도 서울형혁신학교 공모 계획을 보면, '마을결합형 혁신학교'는 애초 분류가 다른 신규 사업이다. 운영내용에는 혁신학교 3대 과제도 제시되어 있지만 교육과정 및 융합수업에 마을(지역)과 연계하는 것이 중점으로 되어있다. 이는 2015년 도입된 혁신교육지구 학교선택제 사업의 연장선이다. 

혁신교육지구 학교선택제는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약을 맺어 창의력 증진, 진로탐색, 문화예술, 4차 산업혁명기술 등 교육활동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서초구도 2017년부터 운영 중인데, 올해만 해도 관내 학교 95% 이상이 교육청 지원을 받았고 시‧구 지원은 100% 모두 시행중이다. 경원중학교가 작년부터 시행 중인 '마을결합중점학교'가 바로 이 학교선택제 사업의 일환이다. '마을결합중점학교'는 지역 내 체험학습과 진로교육을 위한 학습비, 교재비, 강사비를 지원받는데 경원중은 2년째 공모해 지난해 3000만 원, 올해 5000만 원의 예산을 받았다. 그런데 이 사업은 2021년부터 사업명이 바뀌고 지원 규모가 늘어났다. 그게 바로 '마을결합형 혁신학교'다.        

공립학교 예산 70~80% 이상 보조금 의존...경원중은 예산확보 모범학교     
       
요약하면 혁신교육지구 학교선택제, 마을결합중점학교(혁신학교)는 양질의 교육기회 제공을 위해 추가로 편성된 보조금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립학교 예산의 70~80% 이상이 시도교육청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다수 학교는 예산을 따기 위한 공모 기획에 적극 뛰어든다. 실제 2018년 12월 경원중 학교운영위원회에 처음 이 사업안을 심의한 위원들의 관심사는 예산을 전 학년이 골고루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올해 9월 2일 학운위 안건으로 올라온 공모신청 심의에서 학교는 "내년에 사업이름이 변경되지만 현재의 교육과정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예산규모가 커지면서 자유학년제, 동아리, 마을결합형 융합수업지원 등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기대감을 나타냈다.    

경원중학교는 올해 관내 중학교 중 학교선택제 예산으로는 최고인 총 6300만원을 확보했다. 자율고 진학률로 유명한 인근 학교들의 1.5배 이상이다. 달리 말하면 '예산확보 모범학교'라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0년 경원중학교 학교예산액은 11월 현재 28억 원 가량. 이중 교육청 보조금 비율은 22억 1300만원으로 78%에 달한다. 6000만 원은 이 액수의 2.3%이므로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다. 내년 지원금은 7700만 원으로 늘어났으므로 비율은 더 높아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신청취소로 인해 5년간 사용할 수 있었던 3억 8000만 원의 예산은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사업이 통째로 없어졌으니 2년간 진행됐던 교육활동 또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참고로 경원중은 1학년 도덕수업이 2019년 마을결합형 교육과정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육청‧교장의 음모" "학교운영 아파트입주자와 논의하라"...황당한 가짜뉴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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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0시 9분쯤, 서울 경원중 주민들이 교장 이름이 적힌 펼침막을 떼어내고 있다. ⓒ 윤근혁


반대세력은 연일 서울시교육청을 비난하며 '지정 철회'를 요구했지만 사실 교육청엔 '마을결합형 혁신학교'를 임의로 지정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이전의 학교선택제 공모와 이번 신규 사업 모두 학운위가 심의하고 학교 스스로 신청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교육감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음모'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공모심사 과정을 거쳐 예산을 지급해야 하는 사업을 교육청이 임의로 처리할 수 있다면, 이해당사자들로부터 형평성 시비가 일지 않겠는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일뿐더러, 오히려 이런 주장이야말로 음모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현직에 있는 A교장에게 가해진 온갖 인신공격들은 한 말을 잃게 만들 정도다. A교장은 2019년 9월에 취임했는데 이때는 이미 경원중학교가 앞서 말한 학교선택제 사업을 운영 중인 시기였다. 또한 공모사업의 성격상, 우수사례 선정 등 실적이 좋고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사업을 재신청하는 것은 학교장으로서 당연한 선택지다. 애초 교장이 앞장서 추진하지도 않았던 일을 놓고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고 현수막까지 내걸었던 반대세력의 횡포는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또 반대세력은 "경원중이 '마을결합형 혁신학교'가 되면 교육청, 교장 입맛에 맞는 특정인사를 불러 학교를 장악할 것이다"라고 비방하기도 했다. 초빙교사제는 1997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시된 제도로 혁신학교를 통해 주목받은 바 있는데, 이것 또한 법령에 의해 인사범위와 요건이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실제 경원중학교는 어떠했을까? 지난 11월 16일 경원중 학운위 회의에서 한 학부모가 초빙교사 경쟁률을 묻자 학교장은 "업무 부담이 가중되어 신청률이 낮고 기피해 우선 공고를 내고 기다려야한다"며 사실상 정기전보 인사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토로한다. 반대세력의 주장이 극심한 사실왜곡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가장 황당한 주장은 인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단 명의로 배포된 성명서에 담겨있다. 이들은 "어떤 입주자대표회의도 학교와 교육청의 협조 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설명회나 간담회를 들은 적도 없다"며 아파트 주민 대상 설명회를 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학교와 지역사회가 서로 존중하고 건강한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러나 학교가 이미 내부구성원을 통해 결정한 사항에 대해 외부인에게 설명회를 열거나 동의 절차를 얻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경원중 공모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한 인근의 일부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학생들 교육기회 박탈한 무거운 책임 물어야
 

한편, 반대세력이 '학부모 대상으로 제대로 된 동의 과정이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부분 또한 허위에 불과하다. 이는 경원중학교 측이 밝힌 추진경과나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서초구청에 반대 민원을 넣거나, 지난 7일 야간 집단행동에 몰려든 이들 대다수가 경원중 학부모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 [단독] '혁신학교 반대' 민원, 경원중 학부모 22% 불과했다 http://omn.kr/1qy9r)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반대세력들의 중심에는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가 있었다. 이들은 경원중학교가 공모신청을 취소한 뒤에도 '다음은 어디를 막아야한다', '온건한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등 새로운 공격 대상을 찾으며 조직적인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과연 교육당국, 국가와 지자체, 지역사회가 이들의 무법 행위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종합하면 잠원동의 교육여건을 악화시킨 주범은 혁신학교가 아니다. 바로 '마을결합형 혁신학교' 신청을 방해한 반대세력이다. 허위사실 유포, 억지주장, 폭력 행위를 통해 공립학교 예산 3억 8000만 원을 날리고 교육기회를 박탈한 그들에게 구상권이 청구되어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다. 경원중 교직원과 학부모는 이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의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경원중학교 학생들이다. 

반대세력의 뜻대로 공모신청이 철회됐다고 해서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이 모든 피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그들이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약 현행 제도를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앞으로 이러한 반교육적 폭거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엄중한 코로나19 상황 속에 지난 7일 학교 앞 집회행위를 방관한 서초구청과 서초경찰서도 직무 유기 부분이 없는지 조사되어야 한다. 전후사정 파악 없이 반대세력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부 정치인도 자중해야 한다. (관련기사 : 강남은 코로나 무법지대?...주민 300명 집회 방치한 경찰 http://omn.kr/1qwfa)

'혁신학교 반대' 물결은 재건축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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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원중 혁신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학교 주변에 펼침막을 걸어놓았다. ⓒ 윤근혁


  이번 사태가 '앉으나 서나 아파트 생각뿐인 강남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라는 반응을 볼 때마다 강남‧서초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참담함을 느낀다. 교육과 부동산 이슈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조금만 더 자세히 살피면 유별나게 '혁신학교 반대'를 외쳤던 지역들의 주된 공통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송파구 해누리초‧중 지정을 반대한 헬리오시티는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한 곳이다. 작년 무산된 강남구 개일초는 개포주공1‧2단지 재건축 현장 인근에 있는데 새로 입주한 래미안 학부모들끼리 먼저 자녀를 보내려고 학군 싸움까지 났던 곳이다. 대곡초는 '재건축의 대명사' 대치동 은마아파트 1배정 학교다. 얼마 전 경원중보다 먼저 '마을결합형 혁신학교' 신청을 철회한 강동고는 고덕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한 고덕지구 인근에 있다.

이쯤 되면 느낌이 온다. 경원중학교 인근은 한신4지구가 재건축 중이고 지난 11월 5일에는 학교 후문 바로 앞에 있는 신반포7차아파트의 재건축이 승인됐다. 이 아파트에도 '교장, 너를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기존 소유주들에겐 엄청난 규모의 자산 증식이 보장되고, '영끌' 모아 새 아파트로 이사해 '집값도, 교육도 차별화된 명품 동네'를 꿈꾸는 이들의 욕망이 모이는 민간 재건축사업, '혁신학교 반대'의 물결은 재건축을 타고 휘몰아치는 셈이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인지는 이 글에서 세세히 살펴보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건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선 '혁신교육'에 대한 시각과 이해가 온전히 '교육' 자체의 본질만 생각하며 형성될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교육당국의 힘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교육과 부동산 사이에 묶여있는 이 지긋지긋한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사회적 해법이 시급하다.

코로나19 상황으로 학원 영업이 제한되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강남‧서초 곳곳의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앉아 입시 공부를 하고 있을 어린이,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자꾸 밟히는 겨울이다. 이들에게 봄은 언제쯤 오게 될까.
덧붙이는 글 필자는 서울 강남‧서초 지역에서 노동권, 도시권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노동도시연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경원중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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