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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만료' 박주영, 이동국처럼 유종의 미는 가능할까

[주장] 소속팀과 계약 만료,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 쏠려

20.12.22 11:51최종업데이트20.12.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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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FC서울의 베테랑 박주영은 2020시즌을 끝으로 소속팀과의 계약이 만료됐다. 올 시즌 직후 이동국과 정조국은 은퇴를 선언했고, 염기훈이 소속팀 수원 삼성과 1년 계약 연장을 합의하는 등 K리그를 대표하던 베테랑 선수들의 거취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박주영의 행보에도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주영은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2000~201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중 한명으로 활약했다. 2005년 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문한 이래 2008년부터 AS모나코(프랑스)를 시작으로 아스널(잉글랜드), 셀타비고(스페인, 임대), 왓포드(잉글랜드, 임대), 알샤밥(사우디) 등 유럽 빅리그와 중동까지 다양한 해외무대를 거쳤고, 2015년에는 다시 친정팀 서울로 돌아와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다. 서울은 박주영과 함께한 2015년 FA컵 우승, 2016년 K리그1 우승을 이뤄냈다.

박주영은 국가대표팀에서도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2005년 U20 월드컵을 시작으로 무려 3번의 월드컵과 2번의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며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다.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한국축구가 사상 최초의 원정 16강을 이뤄내는데 기여했고, 2012 런던올림픽에는 와일드카드로 사상 첫 동메달을 수확하던 순간에도 함께했다. A매치에서는 통산 68경기에 출전하여 24골을 넣었다.

하지만 포항스틸러스와의 우선협상권 관련 사건, 모나코 시절 장기체류권을 통한 병역 기피 꼼수 논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의리축구 특혜 논란과 극도의 부진 등, 각종 오점도 남기며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렸다. 2014년 11월 이란과의 평가전을 끝으로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여 사실상 대표팀에서의 경력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했다.

박주영은 축구인생 내내 6년 선배인 이동국과도 자주 비교대상에 올랐다. 전성기에는 이동국과 대표팀 주전 공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이기도 했으며, 유럽무대에서 실패하고 K리그로 다시 유턴하여 재기에 성공한 이력도 비슷하다.

하지만 정작 두 선수의 축구인생 행보는 신기할 정도로 평행선이었다. 이동국은 유럽무대에서는 독일과 영국무대를 거쳤으나 모두 철저히 실패한 반면, 박주영은 아스널 입단전 적어도 프랑스 AS모나코 시절까지는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올릴 만큼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이동국은 명성에 비하여 월드컵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지만 박주영은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골까지 넣었다.

반면 K리그에는 이동국이 득점과 도움, 우승, 경기출장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명실공히 '올타임 넘버1'선수로 자리매김한 반면, 박주영은 FC서울의 간판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K리그에서 이동국 만큼의 압도적인 활약상은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동국은 올해 전북이 K리그와 FA컵에서 더블(2관왕)을 달성하면서 영구결번(20번)과 함께 누구보다 명예롭게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서울은 올해 극도의 부진속에 하위스플릿(9위)으로 추락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고 ACL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서울은 최용수 감독-김호영 대행 등 여러 지도자들이 잇달아 물러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박주영은 외국인 공격수들의 존재감이 없었던 올해 서울에서 별다른 경쟁없이 주전 자리를 꿰찼지만 23경기에서 4골 2도움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치며 노쇠화 조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FA컵과 ACL까지 포함하면 31경기 9골 3도움으로 서울 팀내에서는 그나마 최다득점-공격포인트였다. 서울은 올 시즌 내내 공격진이 최대 약점으로 지적됐다.

박주영은 알고보면 서울에서도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수다. 해외 시절을 제외하고 K리그에서는 오직 서울에서만 10시즌을 뛰었지만, 데뷔시즌인 2005년 18골 4도움을 기록한 게 가장 좋은 활약이었고 이후로는 이만한 활약을 재현한 적이 없다.

물론 2016시즌 최종전에서 서울의 역전우승을 확정짓는 극장골 등 중요한 순간에 종종 한방을 터뜨려주기는 했지만, 잦은 잔부상으로 경기에 꾸준히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즌마다 기복도 심한 편이었다. 박주영이 서울에 복귀한 2015년 이후로도 팀의 넘버1 골잡이는 어디까지나 데얀(대구)이었고, 박주영은 팀의 2~3번째 옵션이나 조커로서 기용될 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박주영이 그나마 서울에서 오랜 시간 꾸준히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최용수 감독의 영향력이 컸다는 분석이다. 최용수 감독은 개성 강한 선수들이 넘쳐나던 서울에서 박주영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었던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데뷔 초기의 이장수 감독을 비롯하여 황선홍 감독-이을용 대행 등 여러 지도자들과는 번번이 갈등설-불화설 등에 휩싸이며 팀내 고참선수로서의 영향력에 의문부호에 달린 바 있다.

특히 2018년에는 서울이 강등권까지 추락하는 극도의 부진 속에 SNS로 황선홍 감독을 저격했다는 항명파동에 휩싸이며 큰 논란에 휩싸인 일도 있었다. 라이벌로 꼽히는 이동국이 2009년 전북 입단 이후 11년간 팀의 중심으로 지도자들이나 팀동료들과 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전북의 왕조 건설을 이끈 것과 대조되는 행보였다.

서울은 2021년 박진섭 감독 체제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올 시즌 최악의 성과를 거둔 서울은 팀분위기 전환 차원에서도 대대적인 팀개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전통의 명가인 서울이 최근 3년간 2번이나 하위권으로 추락하며 큰 시련을 겪은데는 구단이 리빌딩과 세대교체에 소극적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몇 년전부터 잦은 부상과 노쇠화 현상이 뚜렷한 데다, 그동안 팀내에서 고참선수로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했다고도 보기 어려운 박주영을 아직도 왕년의 프랜차이즈스타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안고가야할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유다.

박주영에게는 서울과의 재계약이 아니라면 다른 팀으로 이적이나 은퇴라는 선택지도 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와 그가 서울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그나마 지금 시점에서 명예로운 마무리를 고려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어느덧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생각해야 할 시점에 이른 박주영과 FC서울이 과연 유종의 미를 위하여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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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FC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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