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스물아홉의 내가 일곱살의 나와 다시 만났다

[조울증이라고요?③] 조울증이 찾아준 퍼즐 한 조각

등록 2020.12.27 12:07수정 2020.12.28 10:22
1
원고료로 응원

집에선 주로 책을 읽거나 혼자 역할극을 하면서 놀았다. ⓒ 픽사베이

 
밤 10시, 집 현관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있다. 나는 빠르게 가방 어딘가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열쇠를 찾는다. 차가운 금속성의 물체가 손에 잡힌다. 에펠탑 열쇠고리가 짤랑거리는 열쇠를 열쇠 구멍에 밀어 넣는다. 어릴 땐 문을 열려면 열쇠를 오른쪽으로 돌리는지 왼쪽으로 돌리는지 그게 그렇게 헷갈렸다.

집을 열 때면 언제나 '덜컥'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집 안은 어둠 안에 쌓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익숙한 어둠 속에서 형광등 스위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간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둔 리모컨을 밟거나 식탁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불이 탁 켜지면 싱크대 위로 바퀴벌레 한두 마리가 빠르게 도망가는 게 보인다. 비어 있는 집엔 한기가 가득하다.

나는 7살 때부터 혼자 있는 게 익숙했다. 아빠는 지방으로 나가 일했고, 엄마도 온갖 일을 하러 다니느라 집에 없었다. 오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늘 학교며 학원에 있었고, 나를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몇 번 엄마가 일하는 고깃집에 따라가기도 했다. 정확히는 숯불고기 뷔페였는데, 연회석을 완비한 큰 규모의 고깃집이었다.

손님 없는 낮에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오가며 놀았고, 손님이 몰려드는 시간에는 주방 한쪽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가 엄마를 기다렸다. 그 방은 언제나 어두웠고 의자나 식용유 같은 잡동사니가 보관돼 있어서 비좁고 쾌쾌했다. 나는 거기 앉아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그것도 심심해지면 고개를 내밀고 홀을 구경했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엄마와 고기를 먹는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불판을 갈고, 뜨거운 불을 옮기고, 손님이 먹고 나간 자리를 치우고, 밑반찬을 세팅했다. 어두운 방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내 옷에도 고기 냄새가 배었다. 엄마는 일하다 말고 한 번씩 내가 있는 방으로 찾아왔다. '먹고 있어.' 흰 접시에는 돼지갈비 몇 점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허겁지겁 먹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루는 그 방에 서서 엄마가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장면을 봤다. 손님은 엄마에게 계속 화를 냈다. 고기 다 타지 않냐고, 뭐 하는 거냐고.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엄마를 따라 나도 방 안으로 꼭꼭 숨었다. 나는 그 뒤로 엄마가 일하는 곳에 따라가지 못했다. 사장님이 애를 계속 데려오면 곤란하다고 말한 건지, 엄마가 나를 그 좁은 방에 더는 두기 싫었던 건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때부터 나는 줄곧 집에 혼자 있었다.


집에선 주로 책을 읽거나 혼자 역할극을 하면서 놀았다. 늦은 저녁이면 엄마나 오빠가 집에 왔고, 나는 언제나 엄마가 내일은 일하러 가는지 안 가는지를 제일 먼저 묻곤 했다. 아빠랑 통화가 되는 날이면 "아빠 언제 와?"가 일 번 질문이었다. 아빠는 항상 "눈 오는 날"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나는 그 계절이 여름이어도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눈이 언제 오는지 하늘만 쳐다봤다.

그날은 오빠가 학교에 가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오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불안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또 집에 몇 시간 동안 혼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무서웠다. 전날 저녁에는 혼자 있는데 바퀴벌레가 튀어나왔다. 나는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아랫집 아주머니에게 울면서 뛰어갔다. 

"아줌마 집에 바퀴벌레가 나왔는데. 파리채로 잡으려다가 못 잡아서 뒤집어 놨어요."

눈물범벅이 되어 횡설수설하는 내게 아줌마는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느냐고 웃어넘겼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 보라고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닫았다. 바퀴벌레가 너무 무서운데,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 몸을 덜덜 떨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뒤집혀서 아직도 발버둥 치고 있는 바퀴벌레를 보며 그 자리에서 서서 입을 벌리고 울었다. 제발 누구든 빨리 와. 

조증기에 다시 찾아온 7살의 나

커가면서 점점 혼자 지내는 게 무뎌졌다. 중학생 땐 잠겨 있는 문이 아무렇지 않았고 고등학생 때는 빈집의 냄새가 익숙했다. 대학생 땐 오히려 아무도 없는 집이 좋았다. 최근 들어 다시 아무도 없는 빈집이 7살 때처럼 무서워졌다. 바깥에서 나는 큰 소리, 반쯤 열려 있는 옷장, 거울에 비친 퀭한 내 모습, 불 켤 때마다 지나가는 한두 마리의 바퀴벌레까지. 현관문을 열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심지어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공포가 정확하게 겹치는 시점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났다. 자느라 문을 못 열어준 엄마에게 왜 문을 잠가 놓은 거냐고, 불 꺼놓고 TV 보는 아빠에게 왜 불을 꺼놓고 있는 거냐고 따졌다. 이제는 엄마가 먼저 문 좀 열어주면 안 되냐고, 집 불 좀 켜 놓고 살면 안 되냐고 말하는 와중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도 밥 짓는 냄새, 된장찌개 끓이는 냄새로 가득한 집, 훈훈한 온기가 도는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다.

그 시점은 '조증기'와 맞물려 있는 때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화를 많이 내는 것과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을 잡기 위해서 파란색 약 반 개를 추가했다. 아침에 약을 먹고 집에 가만히 있으면 오후 3시쯤에 갑자기 미칠 것처럼 불안해졌다. 불안은 서서히 밀려오는 것 같다가 파도처럼 내 몸을 와락 덮치기를 반복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온 집안을 서성였다. 마치 7살 때 빈집을 지키던 그때처럼, 혼자 있기 무서워서 온갖 인형을 꺼내놓고 혼잣말을 끊임없이 하던 그때처럼.

불안을 참지 못하고 오후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저녁 약을 삼켰다. 저녁 약에도 파란색 알약 반 개가 있었다. 8시쯤에는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내 몸을 때리고,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참으며 울었다. 그런 내가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그때는 이게 약 부작용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부작용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었고, 내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거라고 좌절했다. 나의 이 발작적인 행동을 멈추게 해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병원에선 내 증상을 듣고 바로 약을 조정했다. 빈집을 지키다 무서움에 망가져 버린 것이 아니라 그저 약 부작용이었을 뿐이었다. 그걸 알지 못했던 나는 한 번 지어준 약은 끝까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꾸역꾸역 다 먹은 것이다. 파란색 약을 끊고 원래 먹던 노란색 알약을 하나 더 추가해서 먹자 안절부절못하는 발작적 행동은 사그라들었다. 다시 찾아온 7살의 '나'는 나를 망가뜨리러 온 것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해서 온 것이었다.

이제야 맞춰진 퍼즐 한 조각
 

이제야 맞춰진 퍼즐 한 조각 ⓒ 픽사베이

 
조증기에 있는 힘껏 화도 내보고, 약 부작용에 미치도록 불안해 보기도 하니까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진 기분이 든다. 갑자기 어린 시절 기억에 마음이 이렇게 아픈 건 기쁜 날, 슬픈 날, 무서웠던 날, 심지어 생일 때도 집에 혼자 있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금이라도 알아주라는 의도는 아닐까. 그렇게라도 지금의 내가 어린 날의 나를 위로하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조카들이 학교에 못 가게 되자, 엄마가 오빠네 집에 가서 생활하면서 손주들을 돌봐주고 있다. 이모는 엄마한테 "어릴 때부터 혼자 있던 가시나를 지금도 혼자 두능가?"라고 타박을 했다며, 은근슬쩍 내게 간접적으로 미안함을 전했다. 하루 세 번 밥 먹었냐고 전화하고 늘 내가 신경 쓰인다고 푸념하듯 얘기한다. 이런 애틋한 대화는 낯간지러워서 나는 "언제 또 나를 그렇게 신경 썼다고 그래!"라며 장난치듯 대답한다.

엄마의 기죽은 목소리는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돈 없던 그 시절은 엄마도 나와 같이 혼란스럽고 어렵긴 매한가지였을 테니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다. 엄마가 고깃집에서 일하던 어느 날. 나는 집에 혼자 있다 많이 아팠고,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울다 지쳐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엄마는 내 옆에 앉아 숨죽여 울고 있었다. 엄마는 고된 일을 하러 가는 발걸음마다 혼자 놀고, 혼자 먹고, 혼자 크는 내가 짠해 뒤돌아서서 울었다. '혼자 큰 가시나'라며 붙여준 별명에 엄마의 죄책감이 한 움큼 들어가 있음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 여전히 나는 온기 없는 집에서 혼자 지낸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엔 라면 물을 올리고, 배달 앱을 켜서 매일 거기서 거기인 음식을 배달 시켜 먹는다. 갑자기 불안이 예고도 없이 밀려들 때면 약봉지를 탈탈 털어먹고, 잠시 명상을 한다. 여전히 집 열쇠는 차갑고 어두운 방 불을 켜는 일은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이 너그러워진 날에는 한두 마리씩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는 눈감아주기도 한다. 나는 빈집에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라왔다.
#조울증 #어린시절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가장 사소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는 연결감을 믿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