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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핵심'은 왜 거기서 배제돼야 할까

[쿠팡 일용직 노동, 2년의 경험 ⑦] 노사협의회 참여 안된다? 사실은 가능

등록 2020.12.25 16:53수정 2020.12.2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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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사회시간에 '노동3권'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잠깐 지나가는 식이었지만 그때 받은 신선한 충격은 잊히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이런 권리가 있다는 걸 처음 배웠기 때문이다.

교과서에는 '한국은 노동3권을 보장한다'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반대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노동조합에 가입한다고 해고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파업하면 경제가 망한다는 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넘쳐났다. 

사회가 그렇게 떠드는 동안 노동자들은 하늘에서는 고공농성을 하고 땅에서는 곡기를 끊으며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외로이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하소연을 듣기 시작했고, 세상은 조금이나마 변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유리한 세상은 아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것은 여전히 큰 결심이 서야만 가능한 행위다. 아니, 어쩌면 이런 고민도 사치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고민의 대상인 노동조합이 직장에 없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왜 참여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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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신선물류센터 내 하역장. ⓒ 연합뉴스

 
내가 다니던 물류창고에서도 노동조합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날 친한 계약직 노동자에게 혹시 '그런 게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글쎄? 그런 게 있나?"

다른 노동자들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결국 현장에서 노동조합의 존재를 찾으려던 시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나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노동조합은 없는 현장이지만, 법적으로 의무 설치인 노사협의회는 있었다.

그 공고를 보고 나도 근로자위원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비록 근로계약을 매일 새로 체결하는 일용직 노동자지만, 꽤 물류창고에 오래 다녔기 때문이다. 막연히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투표는 계약직 노동자들만 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일용직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쉽게 납득해 버렸다. 매일 출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투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일용직도 가능했다

쿠팡 물류창고에서 나온 이후 나는 노사협의회 관련 법을 살펴보았다. 노사협의회 관련 내용을 담은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제6조에서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6조(협의회의 구성) ① 협의회는 근로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같은 수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각 3명 이상 10명 이하로 한다.
②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이하 "근로자위원"이라 한다)은 근로자가 선출하되,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대표자와 그 노동조합이 위촉하는 자로 한다.
③ 사용자를 대표하는 위원(이하 "사용자위원"이라 한다)은 해당 사업이나 사업장의 대표자와 그 대표자가 위촉하는 자로 한다.
④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의 선출과 위촉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여기서 근로자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뜻하는데 일용직 노동자를 포함한다.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또한 일용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선출될 수 있다고 판단(노사 32281-5589, '91. 4. 20)했다.

허망함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 혹은 다른 일용직을 근로자위원으로 선출해서 노동환경 개선을 외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차라리 익명 건의가 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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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신선물류센터. ⓒ 연합뉴스

  
어찌 되었든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근로자위원은 선출되었다. 비록 내가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이 좋은 일터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 도리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그의 활동은 간혹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던 소식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는 회사와 협의해 이런저런 것들을 바꾸었다고 적어 놓았다. 큰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익명 건의로 인해 고쳐진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류창고에는 '익명 건의를 해주세요!'라는 종이가 몇 장 붙어 있었다. 종이에 적힌 링크로 들어가면 익명 폼으로 불만 사항을 건의할 수 있었다. 회사는 불만들을 주기적으로 모아서 처리 결과를 알려주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 처리 결과가 더 믿음직했다. 익명이다 보니 일용직, 계약직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불만 사항이 반려되더라도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여서 사측과 소통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내 동료인 일용직 노동자는 일터에 대한 불만이 많은 편이었다. 그는 자주 익명 건의를 이용하고는 했는데, 상당 부분 받아들여져 여러 일용직 노동자가 혜택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일용직 근로자위원"이라고 농담삼아 이야기하고는 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뽑지도 않고, 뽑을 수도 없던 근로자위원보다 익명 건의를 활발하게 하는 동료 노동자가 더 믿을 만했다.

일용직의 권리는 어디로?

물류창고 현장에서 일용직은 하루 일하고 떠날 사람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고, 도중에 도망치는 사람도 있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서 일용직만큼 중요한 사람도 없다. 하루에 수십 명씩 새로 들어오고 교육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지만, 그들이 없으면 물류창고는 돌아갈 수 없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으로 여겨지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막상 물류창고의 중추가 된다. 특히, 정기적으로 나오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창고에서 소중한 존재다. 숙련되었으면서 꾸준히 나오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을 대변할 권리가 별로 없다. 노동조합도 없고, 노사협의회에 끼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익명 건의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용직의 권리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본인들 스스로도 그런 경향이 있다. 하루 일하다 나가는 사람도 있고, 매일 꾸준히 나오지만, 아침마다 근로계약서를 새로 적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강하게 무언가를 주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는 한다. 혹여나 다음 근무 신청에서 누락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일용직들도 계약직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다. 대다수의 계약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한다. 심지어 일용직을 며칠 뛰고 바로 계약직으로 전환한 사람을 고참 일용직 노동자가 가르치는 경우도 많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일용직 노동자들이 나서서 문제를 처리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어떤 노동자가 일용직인지 계약직인지 구분할 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과연 이들을 일용직이라고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타당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 자신을 대변할 근로자위원이라도 뽑게 해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았을까? 하루만 일하고 나간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는 노동자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일용직은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질 수 없었다. 익명 질문만이 본인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

대표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다. 근대 노동자들의 역사는 권리 투쟁의 역사였는데, 그 역사에는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노동조합이 많은 역할을 했다. 그런 만큼 노동자들이 모여서 만든 노동조합은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노동자들이 단체로 조직해서 모여야만 비로소 관심을 준다. 노동자들 개인은 약하지만, 집단으로 뭉친 노동자들은 강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를 조금 넘기는 정도다. 노동조합으로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노동자가 10명 중 1명밖에 안 된다는 소리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대표될 수 있는 권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노사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이 용기 있는 행위가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서 여겨져야 한다.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야 노동자들은 비로소 자신을 대표하기 위해 더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이 불길 속으로 들어간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 사이 한국은 많이 변했다. 세계 선진경제권에 편입되었고,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화도 이룩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는 아직 선진적이지 못하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하느냐 마느냐로 지루한 논쟁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노동자 전태일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는 외침이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에게 "우리는 항상 스스로 대표되어 우리의 권리를 잘 보장받고 있다"고 말할 날이 올 수 있을까?
#노동 #노동조합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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