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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공포일=관보게재일' 바로잡힐까?

강병원 의원, '법령 등 공포 관한 법률' 대표발의... "법률안 공포 절차의 법적혼란 바로잡아야"

등록 2020.12.23 17:05수정 2020.12.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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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 강병원의원실

 
국회나 정부에서 제출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이 법률안은 대통령에게 이송돼 대통령이 서명하는 절차를 거친다.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이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되고, 그렇게 확정된 법률의 효력은 법률안이 관보에 게재(발행)됨으로써 발생한다.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제5조와 제7조에 따르면,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은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압날(押捺, 날인)하고 그 공포일을 명기"한다. 즉 대통령은 법률안에 서명할 때 서명일('공포일')을 적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법률 제12조에는 "법령 등의 공포 또는 공고일은 그 법령 등을 게재한 관보 또는 신문이 발행된 날로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법률공포일은, 대통령이 서명한 날이 아니라 법률안을 관보에 게재한 날로 산정해왔다.

2009년 소준섭 조사관의 첫 문제제기 "입법절차의 심각한 하자"

이를 두고 "입법절차의 심각한 하자"라는 지적이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009년 소준섭 당시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는 "국가수반으로서 대통령이 국가제도의 근간인 법률의 확정을 서명하면서, 그 일자조차도 명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입법절차에서 너무나 심각한 하자"라고 주장했다.

법률공포일을 관보게재일로 하는 것과 관련, 소준섭 조사관은 "법률의 서명과 날인, 공포일의 명기는 모두 대통령의 행위"라며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는데, 어떻게 아직 발생하지 않은 행위인 공포의 일자를 미리 명기할 수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소준섭 조사관은 이러한 입법절차의 하자는 '공포'라는 법률적 개념을 잘못 해석·적용한 데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가 '공포'와 '공표'(혹은 '공시')라는 법률적 개념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법률적 '공포' 개념이 한국에서 오용되고 있다). 


실제로 '공포'와 '공표'(혹은 공시)는 완전히 다른 입법행위이자 절차다. 공포(公布, Promulgation)는 '법률의 확정'이라는 뜻을 가지는 법률적 개념이고, 공표(公表) 혹은 공시(公示, Publication)는 '대중에게 법률 확정 사실을 널리 알리는 절차'다. 법률의 효력은 공포가 아니라 공표(혹은 공시)에 의해 발생한다.

이러한 개념 규정에 따르면 대통령의 서명은 법률을 확정하는 '공포'에 해당하고, 관보게재(발행)는 국민에게 법률 확정을 알리는 '공표'나 '공시'에 해당한다. 미국과 일본, 한국, 대만을 제외하고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연합(EU) 국가들과 러시아 등 대부분의 나라는 법률공포일과 대통령 서명일이 일치하고, 법률공포일과 관보게재(발행)일은 다르다.

강병원 의원 "대통령 법률안 서명행위의 올바른 법적 의미를 되찾아야"

이러한 입법적 절차의 하자가 바로잡힐 길이 열렸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률공포일을 대통령 서명일로 하는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이다.

강병원 의원은 지난 3일 황희·김철민·윤재갑·김민기·양경숙·강득구·김영호·윤영찬·권칠승 의원과 함께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제3조(헌법개정안)와 제4조(헌법개정), 제5조(법률), 제6조(조약), 제7조(대통령령), 제8조(예산 등), 제9조(총리령 등)에 명기된 '공고일'과 '공포일'을 모두 '서명일'로 바꾼다. 

강 의원은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을 공포하는 법률안 공포권을 가지는데(헌법 제53조), 2008년 개정된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이 법률안에 서명할 때 '그 공포일을 명기'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대통령은 문서에 서명하는 날이 아닌 향후 예정된 '관보게재'일을 '공포일'로서 미리 기재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공포'를 '관보게재'와 동일시하고, 양자가 별개의 법적 개념임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라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이에 실제로 서명이 이루어진 날을 명기하도록 해서 '공포'와 '관보게재'가 구분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법률안 공포 절차에 존재하는 법적 혼돈을 바로잡고, 대통령의 법률안 공포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서명행위의 올바른 법적 의미를 되찾도록 하고자 한다"라고 개정안 발의의 의미를 설명했다.

소준섭 전 조사관 "대통령 법률공포권 침해 등 바로잡히길"
 

'법률공포일=관보제재일'이 "법률성립의 절차적 하자"라는 문제를 처음 제기한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 본인제공

 
이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던 소준섭 전 조사관은 23일 <오마이뉴스>에 "공포의 잘못된 개념으로 현재 대통령이 법률에 서명하고도 그 일자도 명기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로 인해) 법률 성립 절차적 하자 문제나 대통령의 법률공포권 침해 등 여러 문제를 낳는데, 이러한 혼선을 이번에 바로잡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소준섭 전 조사관은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상하이 푸단대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 대우교수를 거쳐 오랫동안 국회도서관 중국 담당 조사관으로 근무했다. 국회도서관에 근무하는 동안 '상고법원 반대' 기고를 계기로 대한변협의 '상고법원 반대 TF'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중국 전문가인 그는 <한중일 삼국지>, <독설과 편견>, <중국을 말한다>, <왕의 서재>, <중국인은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가>, <직접민주주의를 허하라>, <사마천 경제학>, <제국의 부활>, <역경에 답하다>, <사기, 근본을 들여다 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처방전>, <중국법의 이해>, <소준섭의 정명론>, <중국사 인물열전>, <변이국회의원의 탄생>, <광주백서-1980년 광주에서 기록된 최초의 항쟁백서> 등을 썼다. <사기>, <십팔사략>, <논어>, <도덕경> 등 중국 고전도 번역했다. 

[관련기사]
대통령 서명 법률안에 왜 '서명일'은 없나?
법률공포 주체는 대통령인가 행안부 장관인가?
#강병원 #법률공포일 #관보제재일 #소준섭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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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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