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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속 되레 자유로웠던 노회찬, 어떻게?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⑦-1 :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등록 2020.12.28 06:50수정 2020.12.2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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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을 선보인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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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트위터(왼쪽)와 경기고 교훈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 노회찬트위터, 경기고페이스북 갈무리


2009년 7월 7일 오전 6시 노회찬은 트위터를 시작한다. 얼마 있다가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라는 글귀를 트위터 대문에 내건다.

몇 달 뒤인 2009년 연말 노회찬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노회찬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dc뉴스 Ade, 2009.12.30.). 

질문 : "정치인으로서 노 대표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노회찬 : "제 모토가 자유인, 평화인, 문화인입니다."
질문 : "아, 트위터에서도 봤어요."
노회찬 : "네, 우리나라가 자유국가, 평화국가, 문화국가가 되는 것. 전쟁 걱정 없이, 그리고 땀 흘린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국가가 되는 게 제 꿈이죠."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 경기고 교훈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이 학교에서 내가 가져갈 것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고 말한, 노회찬의 모교 경기고등학교의 '교훈'(敎訓)이다.

("경기고에서 가져갈 것은 이것 하나뿐"이라던 노회찬, 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빼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와 함께 고교 시절부터 그가 떠나기 얼마 전까지 오랫동안 동고동락해 온 여러 고교 동창 친구들이다. 노회찬이 황망히 떠난 뒤에도 이분들은 그의 꿈과 뜻을 이어가려는 노회찬재단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 넣고 있다.)

이 교훈은 1955년 당시 경기고 교장으로 재직한 조재호 선생에 의해 새로 만들어졌다. 경기고의 교육 목표는 창조적 지식과 전인적 품성을 겸비한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의 육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듯 경기고 학생들도 이 세 가지 슬로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경기고는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자유인(自由人)이다. 자유란 남의 구속을 받지 않는 자체로서 존귀한 것이다. 나아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창의력이 고도로 발휘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를 사랑하고 스스로도 자유스러워지려는 자유인으로서의 자세는 지식 기반 사회에서 창조적 지식을 창출하는데 기본이 된다는 의미다.

둘째, 문화인(文化人)이다. 문화인은 민주사회의 성숙한 시민이다. 문화인은 개인적으로 삶의 질 향상시킴은 물론 사회전반의 문화 수준을 선도한다. 원숙한 인격의 바탕 위에 스스로의 자질과 덕성을 갈고 닦아 높은 문화적 안목과 교양을 겸비하는 문화인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평화인(平和人)이다. 평화인은 인종과 민족과 이념을 초월해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인간의 존엄성을 자각하고 세계 시민적 자질을 갖추어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위해 매진하며, 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미래 투시적 안목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춘 평화인이 돼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노회찬이 스스로를 소개할 때 사용한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의 뜻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있지만 똑같지는 않다. 노회찬이 생각하는 자유·문화·평화에 대해 기록을 통해 살펴보자.

'자유인 노회찬'의 '자유' 엿보기... "어머니가 주신 첫 선물"
 

2011년 8월 10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진보신당 노회찬 상임고문의 모습. ⓒ 유성호

 
노회찬에게 자유란 '어머니가 주신 첫 선물'로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2011년, 30일간의 단식농성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하순 어느날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자유인(自由人)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나에게 자유라는 것이 생명과 같은 것이다. 생명이 없으면 자유가 무의미하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자유는 생명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선물은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고 또 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만큼 자유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자유는 어머니가 주신 첫 선물이라 생각한다."

'엿보기'라고 소제목을 단 것은, 자유에 대한 딱딱하고 어려운 고담준론의 철학적 접근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접근으로 노회찬의 "자유를 자유케" 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서다. 그랬을 때 소소한 접근을 통해 바라본, "자유를 사랑하고 스스로도 자유로워지려는" 노회찬의 이야기들은 그가 남긴 기록 곳곳에 나온다.

2004년 정운영과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랜덤하우스중앙, 2004, 153쪽). 

정운영 : "두고두고 생각나는 영화는 무엇이고, 배우로는 누가 있습니까?"
노회찬 : "감옥에서 본 탈옥 영화 '빠삐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희랍인 조르바'의 앤서니 퀸을 매력적인 배우로 생각합니다."

나는 노회찬이 언급한 두 영화 모두 '자유'가 열쇳말이라고 본다. 먼저, 영화 '빠삐용(Papillon)'은 실존 인물 앙리 샤리에르(Henri Charrière)의 실화를 각색한 것으로 1973년 제작된 영화다(한국 개봉은 1974년). 주인공 빠삐용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참혹한 감옥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끝내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탈옥을 시도한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뒤 드디어 탈출에 성공하여 남아메리카에 정착, 자유인으로 여생을 보낸다.

영화의 카피는 "자유를 향한 마지막 날개짓 그 누구도 나를 가둘 수 없다"였다. '영화 주제음악의 거장'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의 작품인 '빠삐용'의 주제음악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선율이다. 골드스미스의 음악은 전세계에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TV나 극장가에서 연주되고 있다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희랍인 조르바'에 대한 입담을 뽐냈던 노회찬. '그리스인 조르바'는 '국회의원의 서재'에서 그가 말없이 추천한 책 가운데 하나다. 노회찬에게 책은 "자신이 가보지 못한 세계를 깨우쳐주는 안내자이자, 낯선 세계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거름"이었다(국회도서관, '국회의원의 서재-정의당 노회찬 의원', 446호, 2017.4).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가 1946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원제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Vios kai politia tou Alexi Zormpa)'이다. 이 작품은 카잔차키스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를 비롯해, 앙리 베르그송의 자유의지, 니체의 초인주의, 부처의 무소유 사상을 끌어안은 작가의 세계관을 잘 반영하고 있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크레타섬의 이라클리오 성문 밖 공터에 안장된 카잔차키스의 묘비문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는, 자유의지의 실천을 노래했던 조르바의 정신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참된 자유는 자기 이유를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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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7년 4월, '국회도서관보'와 인터뷰한 노회찬. ⓒ 국회도서관보 갈무리

 
'그리스인 조르바' 위로 보이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노회찬의 '마음의 스승'으로 모신 무기수 신영복 선생의 20년 20일간 옥중 삶을 사색한 책이다. 노회찬이 '인생책'으로 꼽은 이 책에도 '빠삐욘'이 등장하고 '자유'가 등장한다. 

"'빠삐욘'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닙니다. 엊그제는 서너 사람의 묽은 기억을 뒤적여 대강 그 영화의 줄거리를 읽어 보고는, 선승(禪僧)도 못되는 터수에 화두(話頭) 하나 얻은 듯, 가을밤 생각은 길어 이곳 수인들의 후진 인생들을 떠올려보았읍니다. 에스키모인들의 옷을 벗을 수 있는 자유를 '자유'라 부르지 않는다면 내밀한 집념이 각각 다른 외피를 입었을 뿐 이곳 역시 수많은 빠삐욘의 현장이라 생각됩니다." (신영복, 1980년 10월 10일 대전에서)

신영복은 자유를 이렇게 말한다.

"참된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갖는 것입니다."

또 다른 책 '담론'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노회찬이 부모님께 부친 편지에도 가끔씩 자유가 등장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이 평생의 운명처럼 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비록 신체적 자유가 구속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곳에서 편안히 독서하고 운동하며 또 일주일에 한두 번쯤 상추쌈까지 먹을 수 있는 저의 처지는 여전히 혜택받는 계층에 속한다 할 것입니다."(1990.5.26. 서울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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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자유'. ⓒ 신영복아카이브

 
서울구치소와 청주교도소 수감생활을 함께 한 사회학자 이진경(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은 노회찬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노회찬재단 모아냄, '그리운 사람 노회찬', 2019).

"노회찬 의원과는 개인적인 연이 있습니다. 구치소에서도 같이 있었고 징역 생활도 청주에서 같이 했지요. '삶을 위한 철학 수업' 강연할 때 항상 드는 예인데 아주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이란 자유를 제한하는 구속의 공간이죠. 그래서 누구나 닫힌 방의 숨막히는 공간에서 나오려 애쓰는데 그래도 그 당시 구치소는 정치범이 너무 많아(300명 이상) 징역 생활이 좀 '트여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노회찬씨는 인사라도 하려 찾아가보면 문을 잠가놓고 있는 겁니다. 하여 문을 따달라고 할까요 물어보면 그러지 말라고, 자기가 일부러 부탁해서 잠근 거라는 겁니다.

이유를 물으니 구속되기 전엔 보고 싶은 책이 많아도 시간이 없어 못 보았길래 구속되면서는, 이젠 책 좀 실컷 봐야지 했답니다. 그러나 징역이 트여있는 덕에 찾아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 책을 제대로 볼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일부러 잠가 놓고, 닫힌 문 앞에서 얼른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라는 겁니다.

흔히 자유와 구속을 대립시키지만 이를 보고선, 아, 자유란 때로 더 강한 구속을 자처하면서도 가능한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책을 보는 자유를 위해 방문을 잠그는 구속을 자처한 것이니까요. 마치 자유인이 되기 위해 문을 잠그는 무문관 수행자들처럼. 자유란 그런 점에서 능력이라고, 능력만큼 자유로운 것이라고 하는 얘기를 무엇보다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자기 삶에서 놓치고 지나친 대목들"

'노유진의 정치카페', 노회찬과 유시민과 진중권이 함께한, 꽤 유명세를 탄 팟캐스트다. 언젠가 세 사람은 "자기 삶에서 놓치고 지나친 대목들"과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노회찬 :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어요. 속도를 내는 거죠. 그런데 자전거밖에 못 타봤어요. 기회가 없었죠."
진중권 : "노회찬씨가 가죽바지 입고, 할리데이비슨 타면 멋질 것 같아요."
유시민 : "헬멧은 특수제작 해야 될 거 같아요. 대두..."
노회찬 : "그런 분들은 헬멧은 잘 안 쓰시고,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죠."

노회찬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합성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맸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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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데이비슨을 탄 노회찬 합성 이미지. ⓒ 노회찬재단

 
좋아하는 색깔이라고 말한 '우아한 빨간색'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가죽바지를 입은 채 할리데이비슨에 손을 얹고 바람 속으로 질주하는 '자유인 노회찬'의 모습을 잠깐 그려본다. 순간 호기심 많고 열정이 넘치는 청년, 여행과 모험을 즐기고 모터사이클광이었던 청년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모습이 겹쳐 나타난다. 

세상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고물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타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람처럼 자유롭게 떠난 23세의 게바라와, 참당암에서 한 달간의 '고행'을 마친 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세상 속으로 돌진하는 25세의 노회찬이 마주친다면 두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아마도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함께 박장대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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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의 '고행'을 마치고 참당암에서 막 나온 25세의 청년 노회찬(1981). 수염과 모시적삼 비슷한 삼베옷이 인상적. ⓒ 노회찬재단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런 자질이 없는 혁명가는 생각할 수 없다." (게바라)

"진보의 기본원리는 실사구시라는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보가 이상은 있지만 실시구시가 없다면 꿈으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사구시가 생명이라고 봐요." "나는 그 무엇보다도 인간이 좋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칭호는 휴머니스트다. 그만큼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되는 세상에 대한 분노도 크다."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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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23세 청년 게바라(1951), 오른쪽은 31세 청년 게바라(1959). ⓒ wiki commons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⑦-2]로 이어집니다(바로 읽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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