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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축복받을 존재입니다

장애인들의 그림으로 만든 그림책 '축하합니다!'

등록 2020.12.29 14:36수정 2020.12.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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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표지에 풍성한 꽃다발이 그려진 예쁜 그림책이 나왔다. 연필선 위로 수채화 물감이 물을 만나 곱게 퍼지듯이 따뜻한 기운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꽃 그림이 있을까? 그린 이들이 '꽃이 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만든 이들은 그들이 '별이 되는 시간'을 책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림책 <축하합니다!>를 만든 '두 번째 토요일'은 매월 두 번째 토요일에 재활 시설 <나눔의 동산> 장애인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미술지도 봉사단체 <금잔디>의 출판 프로젝트 이름이다. 2001년에 시작해 이 십여 년 가까이 지속적인 미술활동을 통해 쌓은 예술적 교감을 바탕으로 장애인들의 그림을 담아 한 권의 그림책 <축하합니다!>를 출간했다. 글은 강원도 춘천에서 그림책 작업을 하는 조미자 작가가 썼다. 
 

그림책 <축하합니다!> ⓒ 핑거

 
나도 짧지만 작은 인연이 있다. 오 년 전, 미술 전공을 고민하던 고등학교 1학년 큰딸이 춘천 미술 작가 단체 <금잔디>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학생 봉사자는 학부모와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서, 나도 미술 활동 보조원으로 봉사를 하러 갔다. 재활 시설은 춘천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나가야 하는 외곽에 있었다.

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장애인들이 수업공간으로 모였다. 그날 활동은 '다양한 낙엽 보고 그리기'였다. 능숙하게 그리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지만 무조건 동그라미만 계속 그리는 이, 밑그림은 정교하게 그렸지만 한 색깔로 칠하는 이, 도화지가 뚫어질 때까지 한 부분만 여러 색깔로 칠하는 이도 있었다. 내가 시범을 보인다고 색칠하면 다 칠해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그림을 망쳐 놓는다며 소리 지르기도 했다. 나와 딸은 어디까지 지켜보고 어디까지 도와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다.

연륜 있는 봉사 선생님들은 종이 위에 낙엽을 놓고 선을 따라 그려보게 하고, 파스텔을 바꿔 쥐여주며 여러 색깔을 칠해보도록 유도했다. 무엇보다 칭찬을 많이 했다. "은행잎이 노란색이 아니라 보라색이니까 세련돼 보이네!" 집중하지 않을 때는 가볍게 나무라기도 하며, 그림을 완성해 성취감을 느끼도록 유도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대부분 차분히 그림을 그렸다. 낙엽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거꾸로 놓기도 하면서 관찰하는 모습이 진지했다. 손에 묻은 파스텔을 보고 재밌어 하는 모습에 나까지 즐거워졌다. 자기만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몰입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모두가 밤하늘 자기 자리에서 오롯이 빛나는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완성된 그림은 모아 벽에 걸었다. 작은 그림들이 커다란 캔버스에 담긴 하나의 그림처럼 보였다. 고정관념이 없이 그린 잎 모양과 색깔들은 과감하면서도 순수해서 뭉클했다. 딸도 그들이 그림으로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그림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어렴풋이 느꼈다.


다음 해,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딸은 계속 춘천으로 미술 봉사를 하러 갔다. 딸은 미술 전공을 결심했고, 미술 치료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 역시 SNS로나마 매달 봉사활동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감동받고, 그분들의 안위를 확인했다.

그렇게 좋은 추억만 남아있던 나는 장혜영의 책 <어른이 되면>을 읽으며 뒤늦게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장혜영씨는 어릴 적 헤어져 18년 동안 재활 시설에서 살아온 지적 발달 장애인 동생 장혜경씨를 데리고 나와 함께 살기로 한다.
 
"혜정이는 욕망과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저 '몸'으로 취급받는 삶을 너무 오래 살았다. 그런 혜정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이었다. (『어른이 되면』, 82쪽)"
 
<나눔의 동산>에 옷을 기부하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중증 발달 장애인들은 음식이나 용변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을 때가 많아서, 헌 옷 기부를 부탁받았다. 나는 주위에 당부해 옷을 모으고, 깨끗이 빨아서 가져갔다.

"새로운 옷이 올 때마다, 서로 마음에 드는 옷을 입겠다고 얼마나 신경전을 벌이는지 몰라요."

담당복지사의 말에 나는 "다들 여자는 여자신가 봐요"라며 웃었다. 이 말이 얼마나 차별이 담긴 말이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는 장애인에게 옷이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1차적인 의미로만 생각했구나 싶었다. '욕망과 인격'은 없는 것, 그들에게 '취향'이란 사치스럽다고 생각했구나 싶어 깊이 반성했다.

나는 웃으며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정성껏 간식과 옷을 챙겨갔지만, 마음속으로는 '깨끗하게 입혀주는 대로 입으면 됐지. 고르기까지 하다니'라고 생각했던 '친절한 차별주의자'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각각의 인격체로서 고유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 여성은 예쁜 것,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는 성 고정관념은 덤으로 담긴 차별의 언어였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머리로 학습한다. 장애인을 겉으로 친절히 대하지만,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불완전하고 불편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눈에 보이지 않도록 분리하고 격리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기를 원한다.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에 장애인 복지시설, 장애인 학교가 들어설 경우 다양한 이유로 반대하며 그들의 사회적 고립을 당연시한다. 장애인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고, 무던히 자신의 장애에 적응해가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고 가슴으로 인정할 때, 우리는 '친절한 차별주의자'가 아닌 '온당한 평등주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평등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림책 '축하합니다!'의 한 장면. ⓒ 핑거

 
그림책 <축하합니다>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축복받을 존재라고. 그들은 사랑스러운 꽃을 통해 마음속 아름다운 빛과 소리를 모아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을 위해 말해요. 축하합니다."

나도 화답하고 싶다.

"당신 역시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입니다. 당신이 있음을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조미자 (지은이), 두 번째 토요일 (그림),
핑거, 2020


#축하합니다 #그림책 #재활시설 #미술봉사 #두번째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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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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