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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헹씨 시신 발견한 동료들, 여전히 비닐하우스에 산다

이주인권단체, 이주노동자 속헹씨 죽음 진상규명 촉구하면서 대책위 결성

등록 2020.12.28 17:33수정 2020.12.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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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비닐하우스 숙소 사망 관련 진실 규명 및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앞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것이 알려진 바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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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비닐하우스 숙소 사망 관련 진실 규명 및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앞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것이 알려진 바 있다. ⓒ 이희훈

 
속헹(Sokkheng), 우리 나이로 서른한 살밖에 되지 않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다. 2016년 3월 '비전문 외국노동자' 비자로 입국한 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의정부와 포천 등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머물며 농장에서 채소 재배 등을 하며 지내왔다. 내년 2월 취업비자 만료를 앞두고 오는 1월 10일 캄보디아 프놈펜행 항공기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속헹씨는 지난 20일 경기도 포천시 농지 위에 세워진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포천 지역은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8.6도까지 떨어져 한파 경보가 내려졌다. 

속헹씨가 머물던 숙소에 전기장판 등 난방기구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속헹씨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동료들은 당시 '한파' 등의 이유로 지난 19일부터 외부에서 잠을 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28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동료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한 결과 냉장고 등 모든 전자기기를 다 끄고 난방장치를 올렸는데도 계속 차단기가 내려갔다"면서 "결국 동료들이 다 나갈 때 '괜찮다'라고 말한 속헹씨만 비닐하우스에 있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24일 속헹씨의 사망원인에 대해 "국과수 1차 구두 소견을 통보받았다"면서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으로 보이며, 동사했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김 대표가 이끄는 <지구인의 정류장>을 포함해 관련 단체들은 속헹씨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간경화 앓았다는 속헹씨, 제대로 치료를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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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비닐하우스 숙소 사망 관련 진실 규명 및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앞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것이 알려진 바 있다. ⓒ 이희훈

 
김 대표는 경찰의 발표에 대해 "숙소의 환경 등 현장을 제대로 살핀 것이 맞냐"면서 "누전차단기가 내려가면 난방이 안 되는데 속헹씨가 머물던 하우스는 차단기가 내려간 상태였다. 이 부분에 대한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합리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은 입국할 때 건강검진을 받는다"면서 "이후엔 1년마다 건강검진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과연 '간경화로 사망했다'는 속헹씨가 제대로 된 검진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한 달에 이틀 정도만 쉬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는데, 과연 제대로 된 치료가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민주노총 이주노조가 이주노동자 6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휴일과 관련해 응답자(632명)의 10.9%(69명)가 "일주일에 하루 이상 쉬지 못한다"라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휴일이 없다'고 답한 노동자도 6명이 있었다.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경우는 절반에 가까운 47.3%(301명)였다. 주 68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도 11.9%(74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8년 10월에 농축산어업에 종사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는 '주당 61.2시간을 일하면서 150여만 원의 임금을 받고 있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가 속한 대책위원회는 28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위생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숙식 환경 속에서 고강도 노동을 지속해야 했던 노동 환경의 문제, 질병이 있었다 하더라도 적시에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망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고인의 사망 원인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고인이 근무했던 농장의 운영에 불법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또 대책위원회는 "동료의 사망을 목격하고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을 다른 노동자들이 사업장과 사업주로부터 분리되어 안전하게 머무르고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조치가 시급히 취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2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남은 동료들은 여전히 그 숙소에 머무는 것으로 안다"면서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에서 면담해보니 그곳에 계속 거주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업장 변경도 희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29일 부천에 위치한 트라우마센터에 직원들과 함께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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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비닐하우스 숙소 사망 관련 진실 규명 및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앞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것이 알려진 바 있다. ⓒ 이희훈

 
이날 통화에서 김 대표는 "속헹씨가 살던 곳은 주거지도 아닌 곳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였다"면서 "업체 사장은 이렇게 해놓고 다달이 노동자들에게 월급의 8% 이상을 숙박비를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고시로 이런 행태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속헹씨가 살던 건물은 건축대장에도 등록되지 않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가건물로 비닐하우스 안에 만들어졌다. 

대책위원회는 "지금도 수만 명에 달하는 농업 종사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 샌드위치 패널, 컨테이너 박스 등으로 만든 임시가옥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지난 여름 장마 기간 동안의 수해 이재민의 상당수가 이주노동자였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임시가옥은 폭염, 폭우, 한파를 막아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보안에 취약하고 화재와 같은 상시적인 위험도 안고 있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월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장 1만 5773곳 가운데 노동부가 정한 외국인 기숙사 최저기준에 미달한 사업장은 전체의 31.7%가 넘는 5003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는 부속 기숙사를 설치 운영할 때, 근로자의 건강 유지,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역시 "화장실과 세면, 목욕시설을 적절하게 갖춰야 하며, 채광과 환기를 위한 적절한 설비 등을 갖춰야 하고, 적절한 냉난방 설비 또는 기구를 갖추고, 화재 예방 및 화재 발생 시 안전조치를 위한 설비 또는 장치를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됐다.

이에 대해 대책위원회는 "농지 가운데 설치한 조악한 임시 건축물들이 이주 노동자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해 온 고용허가제 담당 고용노동부, 그리고 불법 용도변경 등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책임도 결코 묵과할 수 없다"면서 "비닐하우스, 농막,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임시건축물의 기숙사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인 사업장변경금지정책을 철회하고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변경의 자유를 허용하라"라고 요구했다.

앞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SNS에 이 사건과 관련해 "차가운 비닐하우스에서 생을 마감한 이주노동자의 명복을 빈다"면서 "비닐하우스뿐 아니라 농촌의 이주노동자 임시 숙소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착수하겠다. 실태조사를 토대로 이주노동자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보겠다"라고 밝혔다.

속헹씨는 28일 캄보디아 대사관 주도 아래 성남에서 화장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속헹 #이주노동자 #고용노동부 #포천 #의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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