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티아고 '버그내 순례길'을 걷다

총 13.3km, 3~4시간 소요... “한국 천주교 유입과 박해의 역사가 고스란히”

등록 2020.12.29 10:56수정 2020.12.2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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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내 순례길 코스 안내 ⓒ 김예나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한국에는 버그내 순례길이 있다. 과거 내포지역은 포구가 발달해 서양 선교자들이 들어온 주요 입구이자 활동지였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고향인 당진 역시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당진 지역의 천주교 성지를 연결한 길이 버그내 순례길이다. 이 길은 한국 천주교가 공인되기 이전에 천주교 전파를 위해 선교자들이 걸었던 길이자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들의 압송로이기도 하다. 

총 13.3km 거리인 버그내 순례길은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곳인 솔뫼성지에서 시작된다. 천주교 전파가 왕성하게 이뤄졌던 버그내장터(합덕전통시장)를 지나 조선시대 3대 방죽인 합덕제, 130년 역사의 합덕성당,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 합장된 무명순교자의묘, 제5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신리성지까지 순례길이 이어진다.  


'ㅂㄱㄴㅅㄹㄱ' 표시 따라 걷기

버그내 순례길의 시작점인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의 시작과 같다. 이곳에서는 내년 1월부터 연중행사로 열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천주교 예술복합공간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솔뫼성지 앞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캐릭터와 함께 길 안내 표지판이 친절히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화살표를 따라 걷다보면 길바닥에 'ㅂㄱㄴㅅㄹㄱ'이라는 유도표시를 발견할 수 있다. 'ㅂㄱㄴㅅㄹㄱ'은 버그내 순례길의 자음을 따서 만든 로고다.

가는 길에는 순례길 코스를 소개하는 설명판이 설치돼 있지만 글씨가 벗겨져 글을 읽을 수 없었다. 또한 솔뫼성지부터 거리가 얼마 안 된 곳에 설치된 안내표지판에는 '솔뫼성지 4.92km'라고 적혀 있어 합덕과 우강을 처음 찾거나 잘 모르는 순례객들에게는 혼선을 줄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130년 역사를 지닌 합덕성당


우강면 행정복지센터까지 가는 길에는 김대건 신부와 프란치스코 교황을 표현한 조형물과 그림이 있다. 길가의 벽에는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진을 방문한 사진이 전시돼 있다. 전시된 사진을 감상하면서 걸으면 어느새 합덕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합덕버스터미널과 합덕전통시장을 지나면 한적한 시골 길이 펼쳐진다. 가을이면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합덕 뚝방길은 넓고 평탄하다.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도 없어 쉽게 걸을 수 있다. 길이 좋아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기에도 좋다. 중간 중간 설치된 의자는 순례객들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합덕제에는 쉼터가 조성돼 있지만 온갖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합덕제와 이어진 합덕성당은 솔뫼성지에서 약 6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버그내 순례길의 중간쯤 된다. 1890년에 설립된 양촌성당(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이 합덕성당의 전신이다.

초대 합덕성당의 주임신부인 퀴를리에 신부가 1899년 현 위치에 120평의 대지를 매입해 한옥성당을 건축, 이전해 '합덕성당'으로 명칭을 바꿨다. 그 뒤 7대 주임신부인 프랑스 페랭 신부가 1929년 현재 건물인 벽돌조의 고딕성당을 설계, 신축했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리고 두 개의 종탑을 세운 합덕성당의 건축양식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양식이다. 

안내판 부족… 길 잃을 수도

합덕성당을 나온 뒤에는 합덕제 중수비를 찾아 걷는다. 합덕제 중수비에는 1800년 이후 합덕제에 대한 기록이 쓰여 있다. 총 8개의 비가 서 있는데,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던 것을 대합덕리에 모아 놓은 것이다. 

이어 성동리에 위치한 원시장·원시보 우물터로 향한다. 합덕제 중수비에서 원시장·원시보 우물터로 향하는 길에서는 농촌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다만 버그내 순례길 방향을 표시하는 안내판이 부족해 길을 잃기 쉽다.

비교적 큰 길에서 좁은 마을길로 들어가면 원시장·원시보 우물터가 나온다. 이곳은 성동리에서 가장 오래된 샘으로, 원시장‧원시보 형제도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이 우물터는 생명의 샘이자 순교자들의 영혼이 쉬어간 곳으로 여겨져 의미가 크다.  

로마시대 비밀교회 '신리성지'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 무명 순교자의 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무명 순교자의묘를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가 없어 내비게이션 어플을 이용해 무명 순교자의 묘를 찾아야만 했다.

한편 가는 길에는 주민들이 농작물을 수확하거나 소밥을 챙겨주는 시골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무명 순교자의 묘는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과정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으나 대부분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 무명 순교자로 분류된 시신들이 합장돼 있다. 

마지막 정착지인 신리성지까지는 무명순교자의 묘에서부터 약 15분이 소요된다. 신리성지가 위치한 신리는 과거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한 교우촌으로,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마을이었다. 또한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기도 한다. 

이용호 솔뫼성지 전담신부는 지난 2016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버그내 순례길은 순교자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길"이라며 "걷는 동안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순교자들의 삶을 돌이켜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순례길을 걸으며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 바쳐가며 지키려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묵상해 보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버그내 순례길 코스 안내>  

▪코스 
솔뫼성지 → 합덕버스터미널 
→합덕전통시장 → 합덕제 
→ 합덕성당 → 합덕제 중수비 
→ 원시장·원시보 우물터 
→ 무명 순교자의 묘 → 신리성지

▪거리: 13.3km 

▪소요시간: 3시간30분~ 4시간30분

<주요지점 소개>

솔뫼성지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한 곳이다. 이에 한국의 베틀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1784년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의 증조 할아버지 김진후 비오(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그리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다. 
▪위치 : 솔뫼로 132 

합덕제
합덕제는 합덕 평야에 농업용수를 조달하던 저수지로, 연꽃이 만발해 연지라고도 불리었다. 제방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후기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제 벽골제의 제방이 일직선인데 비해, 이곳의 제방은 곡선으로 이뤄어져 있다. 이러한 제방의 특성을 인정받아 2017년 국제관개배수위원회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됐다.
▪위치 : 합덕읍 덕평로 379-9

합덕성당
이 건물은 1929년 건축된 고딕 양식의 천주교 성당이다. 구 합덕성당의 전신은 1890년(고종 27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설립된 양촌성당으로 1899년 초대 본당주임 퀴를리에 신부가 현 위치에 한옥성당을 지어 이전하고, 합덕성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뒤 7대 패랭 주임신부가 1929년 현재 건물인 벽돌로 된 고딕양식 성당을 새로 지었다.
▪위치 : 합덕읍 합덕성당 2길 22

합덕제 중수비
합덕읍 성동리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8기의 합덕제와 관련된 비석이 서 있다. 1800년 이후 합덕제 중수를 기록한 비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대합덕리에 모아 놓았다. 합덕제 축조 시기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후백제 견훤이 왕건과의 전투를 위해 군마용으로 우물을 파 놓았다는 설과 삼한 또는 삼국시대에 축조됐을 것이라는 설이다. 
▪위치 : 대합덕리 614-1번지

원시장·원시보 우물터
성동리 출신인 원시장 베드로는 내포지역의 첫 번째 순교자다. 그는 1791년 체포돼 천주신앙을 끝까지 고백하다가 감옥에서 순교했다. 사촌인 원시보 야고보 역시 1788년에 체포돼 청주에서 순교했다. 성동리에서 가장 오래된 샘으로 알려진 우물은 이 땅의 선조들과 거룩한 순교자들이 마셔온 생명의 샘이며 영혼의 쉼터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 또한 마음을 정화하고 영혼의 쉼터가 되기를 기원하며 조성됐다.
▪위치 : 합덕읍 성동리 340

무명 순교자의 묘
이곳은 순교자 교우들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원래 마을 어귀에 산재했던 무덤들은 1972년과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파묘, 이장됐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두상이 없는 유골들이 많았고, 썩어 부서진 묵주와 십자가가 무덤마다 출토됐다. 
▪위치 : 합덕읍 대전리 산21번지

신리성지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인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이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했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했다. 또한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했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됐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위치 : 합덕읍 평야6로 135

<개선해야 할 점>
- 표지판이나 이정표가 눈에 잘 띄게 수정
- 우강면행정복지센터 인근에 설치한 표지판 수정 
- 합덕제 중수비와 원시장·원시보 우물터, 무명 순교자의 묘 표지판 부족
- 무명 순교자의 묘 입구 협소해 정비 필요  
#당진 #버그내순례길 #솔뫼성지 #합덕성당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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