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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내 글쓰기의 수준은 어디쯤일까?

[에디터만 아는 TMI] 시민기자의 활동을 4단계로 나눠 보았다

등록 2020.12.31 08:02수정 2020.12.3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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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만 아는 시민기자의, 시민기자에 의한, 시민기자를 위한 뉴스를 알려드립니다.[편집자말]
'내 글쓰기(기사쓰기)의 수준은 어디쯤일까?'

궁금한가? 궁금하다. 나도 그렇다. 누가 좀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그럴 사람이 주변에 없다. 시민기자 가운데는 기사를 쓰면 읽고 의견을 주는 동생이나, 남편이나 친구도 있던데 아쉽게도 나는 없다.


대부분의 시민기자가 나랑 비슷한 상황일 거다. 그래서 이번 '에디터만 아는 TMI'는,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내가 지금 어느 단계쯤 와 있는 건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 자가진단이 가능한 내용으로 준비했다. 
 

내 글쓰기(기사쓰기)의 수준은 어디쯤일까? ⓒ envato elements

 
아이디어는 오래 전 선배의 글에서 얻었다. 며칠 전 선배가 십수년 전(무려 2005년!) 사내게시판에 '시민기자 기사쓰기 5단계'라는 글을 써놓은 걸 우연히 보게 된 거다. 당시 편집기자였던 선배는 런114닷컴에서 '내 마라톤 수준은 어디쯤일까?'라는 칼럼을 읽고 비슷하게 따라 쓴 글이라고 했다.

오호라, 이게 뭐야? 구미다 당겼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선배는 시민기자를 '입문 단계→초보 단계→몰입 단계→도약 단계→성숙 단계'로 나누어 각각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아래는 그 내용 가운데 지금도 유효한 내용들로 추린 것들이다(선배의 허락을 구하고 올린다). 편의상, 입문과 초보는 입문 단계로 합쳤다.
 
입문 단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한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다른 시민기자들이 올린 기사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주로 생나무에 머물던 기사가 잉걸로 채택되기 시작하고, 댓글, 원고료 등에 관심이 높아지며, 그에 따라 계속 기사를 올릴지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기사를 올린 후 심리적인 기쁨을 느끼고 약간씩 증폭된다.

몰입 단계
-기사 올리는 횟수가 늘어나고 글 쓰는 감각도 잡히기 시작한다.
-소재의 한계를 모르고 기사 쓰기에 몰두한다.
-메인면 주요 기사로 배치되거나, 독자의 자발적 원고료 등에 희열을 느끼며 자신감에 불탄다.
-처음엔 사는이야기를 주로 쓰다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도약 단계
-톱기사 배치나 원고료보다는 나 자신의 잠재능력이 어디까지인가를 확인하고자 한다.
-기사 배치와 흥미의 답보에 따른 슬럼프, 좌절의 가능성도 있으며, 간혹 일정 기간 잠적하거나 아예 오마이뉴스를 떠나기도 한다.

성숙 단계
-혼자 기사쓰는 기쁨에 충만한 자신을 발견한다.
-톱기사 배치가 아니라 기사 올리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 일련의 과정을 즐긴다.
-원고료,  악성 댓글 등 일체의 소모성 논란으로부터 초연해진다.

선배가 쓴 글을 보자마자 그에 해당할 법한 시민기자 이름이 한 명씩 떠올랐다. 그들에게 '긴급 쪽지'를 보내 물었다. 지금 자신의 단계에서 증상이 어떠냐고.


내가 직접 그 단계를 논하는 것보다, 직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비슷한 위치의 시민기자들에게 더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서로 이해하게 될 것 같아서다. 나와 같은 시민기자 동년배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기사를 쓰는지 알면 이곳이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시민기자 활동을 '입문 단계→몰입 단계→도약 단계→성숙 단계'로 나눠봤다. ⓒ envato elements


'입문 단계' 증상은 가입기간 1년 남짓한 남희한 시민기자가 보내주셨다.  

- 내 글을 이렇게 많이 읽어 본 적이 없다.
- 이렇게 많은 '최종, 최종_최종, 최종_최종_진짜최종' 파일을 만든 적이 없다.
- 네이버 국어사전 서비스가 왜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 분명 고백이 아닌데 누군가의 '좋아요'에 설레버린다.
- 아직 멀었음을 알지만 자꾸 글 욕심이 생긴다.

'몰입 단계' 증상은 역시 가입기간 1년 남짓이지만 올해 기사로 가장 많이 만난 장순심 시민기자가 보내주셨다.

- 메인면 오름 기사로 배치되면 당황스럽다. '이런 글이 올라가도 되나?' 생각한다.
- 오름 배치가 반복되면서 주요하게 올라가는 기사의 특징을 스스로 알게 된다.  
- 매일 하루 두세 시간은 기사를 쓰는 데 소비한다. 
- 자주 쓰는 만큼 소재 고갈을 항상 느끼기에 감이 올 때 바로 메모한다.
- 일상의 소재가 고갈되면 읽던 책이나, 영화를 가지고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다른 시민기자 기사를 보며 소재를 발견하기도 한다. 찜해둔 시민기자를 보며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쓰게 된다.
- 기사가 쌓이다 보니 조금 더 기사다운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무엇보다 가족이 시민기자 활동을 인정해주어 삶의 보람을 느낀다.

'도약 단계' 증상은 역시 가입기간 1년 남짓이지만 올해 '2월 22일상'을 받은 조영지 시민기자가 보내주셨다.

-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원하는 기사의 틀 안에서 고뇌한다.
- 전문가들의 평과 심사에 민감해진다.
- 나의 잠재능력을 시험해보며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 원고료보다 점진적 자기발전을 우선시 한다.
- 주요기사 채택 비율이 전성기보다 후퇴하기도 한다. 타 기사를 유심히 살펴보며 나의 기사와 비교 분석한다.
- 기사, 에세이, 인터뷰 등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글들을 찾아보고 공부한다.
-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동지를 찾기 시작한다.
- 신예보다, 노장들의 글들을 찾아 본다.
- 흥미의 답보에 따른 슬럼프, 좌절의 가능성도 있으며 잠적하기도 한다.
- 꾸준히는 쓰지만, 그게 '잘'로 이어지지 않아 주저앉기도 한다
- 개인적인 글쓰기에서 공적인 글쓰기로 시야와 관심사가 넓어진다.

이 구역의 최고봉 '성숙 단계' 증상은 가입한 지 20년차이자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수상한 이봉렬 시민기자가 보내주셨다. 

- 거리를 걷다가,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책을 읽다가, 뉴스를 보다가… 아무튼 이게 언젠가 기사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되면 일단 메모를 한다.
- 그렇게 모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직조하여 하나의 기사로 만드는 과정을 즐긴다.
- 좋은 기사가 된다는 확신이 들면 취재 과정에 시간이나 돈을 많이 써도 아깝지가 않다.
- 독자들의 댓글에서 옥석을 고를 줄 안다. 악플은 가볍게 넘기고, 조언은 고맙게 받아들인다.
- 톱기사 배치나 댓글, 조회수보다 공유 건수와 독자 원고료에 좀 더 마음이 간다. 독자의 마음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 기성언론의 기자들이 쓰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려 한다(인터뷰이가 혼자 말하는 방식의 인터뷰 기사, 독자들의 댓글에 답하는 방식의 부가 설명……)
- 기성언론의 기사를 읽으면서 그 속에 감춰 뒀을 이야기를 유추해 보는 취미가 생긴다.

보내주신 글을 보면서 15년 전에 선배가 적어놓은 글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지만, 묘하게 겹치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혹시 눈치 채셨는지? 어느 단계에 있는 시민기자든 이거 하나는 같았다는 걸. 바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글 욕심이 생긴다', '조금 더 기사다운 기사를 쓰고 싶다', '개인적인 글쓰기에서 공적인 글쓰기로 관심사가 넒어진다', '기성언론의 기자들이 쓰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가 그 증거다.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도전해 보고 싶은 시민기자들의 마음이 여러 번 읽혔다.

그들에게 <오마이뉴스>가 '샌드박스'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그네를 타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푹신한 모래를 깔아둔 아빠의 마음을 담아 만든 곳.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위험 리스크를 줄여주는 지원을 통해 스타트업의 도전을 응원하는 역할'을 했던 드라마 <스타트업> 속 회사 샌드박스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입주사(시민기자)들의 좋은 멘토가 되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2020년이 딱 이틀 남았다. 끝까지 '안전한' 연말 보내시길. 

ps. 2020년 7월부터 매주 연재한 '에디터만 아는 TMI' 마지막 기사입니다.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에디터만 아는 TMI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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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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