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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성소수자를 상상해보셨나요

[쿠팡 일용직 노동, 2년의 경험 ⑧] 노동자에게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21.01.08 07:30수정 2021.01.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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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일을 생각해본다. 나의 경우에는 아웃팅이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아웃팅,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이 강제로 공개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있어 이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잘 숨겨왔다고 믿었던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등이 강제로 공개되는 순간, 드는 생각은 수만가지다. 어떻게 아니라고 잘 둘러대야 하는지, 이 공동체 내에서 떠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등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인처럼 행동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성소수자는 항상 이성애자처럼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동성애자인 나의 경우 대학에 입학할 때 어느 여성을 좋아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정하고자 고민했던 적도 있다. 큰 고난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야 하고, 좋아하는 것을 싫어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성적지향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설사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밝히기까지 많은 시간의 고민이 필요하다. 

일터에서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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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신선물류센터. ⓒ 연합뉴스

 
여기 물류창고에서 일했던 성소수자가 있다. 신체를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에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누가 일하는데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신경 쓸까?

일할 때는 과연 그렇다. 그러나 드문드문 쉬면서 사람들은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고개만 끄덕이는 순간에 직면하고는 한다. 이성애 중심으로 짜이는 또래 남성들의 연애담,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과 적개심이 드러나는 순간을 나는 매번 겪어야 했다.

동성애자에게 특별한 적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편견이 발화할 뿐이다. 

"에이즈는 더러운 질병이다." "동성애자를 이해하지만 내 옆에 없었으면 좋겠다." "동성애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더럽다." 이것은 틀린 명제다. 에이즈는 일반적인 질병 중 하나일 뿐이고, 동성애는 더럽지도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같이 일하는 내가 스스로 게이라고 밝히면 이들이 심한 말을 할 수 있을지 가정해보고는 한다. 이 가정이 실현되는 일은 없다. 나에게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내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없다.

그저 '정말' 심하다고 생각되는 몇 마디를 교정하고 소심하게 반론할 뿐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웃으면서 "혹시"라고 하면, 나는 대화를 곧 중단하고 서둘러 일을 찾아 떠난다. 

사소하지만 차별이 있다

출퇴근할 때마다 수기 명부에 서명한다. 별거 아닌 일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같이 의문이 들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서명을 받는 점 때문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어차피 모두 똑같은 일을 하는데 말이다. 임금도 항상 같았다. 조퇴하거나 연장근무 하지 않는 이상 항상 그랬다. 설사 예외가 있더라도 근무시간을 적는 항목이 따로 있어 거기에 맞게 쓰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성별을 나누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출퇴근 시간마다 여성 노동자들이 서는 줄과 남성 노동자들이 서는 줄이 나누어진다. 대체로 이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줄을 서서 서명할 뿐이다. 그런데 성별 정체성이 여성도 남성도 아니거나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이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후자의 경우 자신이 확정한 성별에 해당하는 줄에 서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색한 사람들의 시선, 외모로 판단해 "여기는 남자 줄"이라고 말하는 관리자들, 주민등록번호를 정정하지 못한 경우 등의 곤란함을 생각해보자.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억지로 다른 줄에 서야 한다는 것, 애초에 자신의 성별과 관련된 줄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 누군가는 "단순히 성별 때문에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매순간 모욕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이들에게 돈을 벌려면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편견 속에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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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쿠팡 신선물류센터 출입구. ⓒ 연합뉴스

 
설사 이를 견뎠다고 해도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 성적지향에 대한 편견들, 차별적인 시선들은 잊을 만 하면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다.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끊임없이 노동 현장을 떠돈다. 넓은 물류창고 현장에는 관리자가 여러 명이 존재한다. 내가 있던 물류창고에서는 외적으로 성별을 분간할 수 없었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슨 성별인지 무슨 상관인가. 무엇보다 내가 함부로 이 사람이 어떤 성별인지 가정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관리자의 성별 정체성은 노동자들의 대화 주제로 오르곤 했다. 사람들은 '여자냐, 남자냐'를 두고 실컷 떠들었다.

누군가 그 관리자가 트랜스젠더가 아니냐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 신호탄이 되어 온갖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당사자인 관리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이야기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으나 이야기는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사람들은 그 주제로 몇 차례 대화했으나, 관리자의 성별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 관리자는 계속 열심히 일했고, 창고는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갔다.

여러 사람과 함께

노동 현장에는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느 날은 고기반찬을 거부하는 사람을 보았다. 국을 떠주는 사람은 익숙한지 그 사람이 오면 신경 써서 반찬을 배분하고는 했다.

그와 친해 보이는 노동자는 "이것도 먹고 좀 그래!" 하면서 고기를 떠주려고 했지만, 이 노동자는 고기를 거부했다. 고기를 먹지 않은 노동자의 존재는 노동 현장에서 이상하다고 여겨진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조회를 담당하는 관리자가 어느 날 두 명의 노동자 앞으로 가더니 종이로 무언가를 적었다. 그들은 알아들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각장애인 당사자였다. 

이들과 일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같이 물건을 나르고 밥을 먹고 웃으면서 퇴근할 뿐이다.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요란했던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뿐이었다.

차별 없는 평등한 일터가 필요하다

물론 일터에서 특정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위한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것은 그 노동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다. 모두 함께 일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정체성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한다면 노동 현장에서 다른 차별도 합리화될 것이다. 결국 그 차별은 누구에게로 향할까. 

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에 일하러 가는 것이지, 차별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노동자도 일터에서 차별받으면 안 된다.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 등 무엇도 노동자를 차별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노동 현장의 차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디에나 있을,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한다. 

나는 출퇴근 명단으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고,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 가득한 이야기가 나오면 비판하는 분위기의 노동 현장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일터에 차별적 요소가 있으면 즉각적인 교육과 시정이 이뤄지는 환경에서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하기를 원한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마이너스가 되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동 현장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출됐지만, 통과는 아직 요원하다. 사람들은 차별금지법을 둘러싸며 누군가는 차별해도 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이것이 앞으로 나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마주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언제쯤 나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노동 현장에 당당히 다닐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노동 #평등 #성소수자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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