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 한 장면 속에 있는 거 아니니?"

우리 곁에 너무나 가까이 온 코로나... 김밥 한 줄 때문에 생긴 일

등록 2020.12.31 15:32수정 2020.12.3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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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테이블에 6명 밖에 없는 사람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냈다. 안전 안내 문자였다. 서천군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서천군에서는 한 명의 감염자로 인해 확진자가 발생하는 중이라 민심이 흉흉한 상황이었다. 27일, 하필이면 그 순간, 나와 친구는 서천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서천읍내 중심가 거리 기사에 사용할 사진을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찍었다. ⓒ 오창경


지역에서는 맛집이었고 점심시간이었지만 우리를 포함해 세 테이블뿐이었다. 우리는 김밥을 사가지고 가려고 나왔다가 그 김밥 집이 문을 닫는 바람에 찾아 간 식당이었다. 가볍게 한 끼를 때우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던 생각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공포의 바이러스가 우리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수를 뻗치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숟가락질이 빨라졌다. 안전안내문자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천군청과 중대본 등에서 다시 안전안내문자가 떴다.

확진자들이 발생한 한 마을을 통째로 이동 제한한다는 행정명령 조치가 취해졌다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럴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지금은 코로나의 시기, 그럴 수도 있고 그래야만 했다.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는 예방이 최선이니까.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도 줄줄이 일어나고 있었다. 식당 사장은 감염자가 발생한 동네는 서천 읍내 쪽이라 아직 이곳은 안심해도 된다며 계산을 해줬다. 가뜩이나 연말 특수도 사라졌는데 확진자가 이렇게 발생하면 식당 문을 닫고 쉬어야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부여지만 서천과 인접한 부여의 끝자락이었다. 식당과 마트 등을 서천군 쪽에서도 편의적으로 이용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재빠르게 경계를 넘어 부여 쪽으로 피신을 했다. 부여에서는 16번 확진자 이후 아직까지는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화산이 폭발한 지역을 우리가 방금 벗어난 것 같지 않니? 우리 지금 재난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거 아니니?"
 

서천읍내 입구 연말인데도 한산한 서천 거리 ⓒ 오창경


그동안 봐왔던 다양한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허탈하게 웃었다. 우리는 한 번도 재난을 겪지 않고 살아왔던 세대였다. 재난을 영화로만 본, 책에서만 읽은 세대였다. 실제로 닥친 감염병의 재난을 영화처럼 대처하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수도권과 도시에서 세를 불려가던 전염병이 우리가 사는 시골마을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무증상 감염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까 두려웠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치 안전지대로 피신한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서천의 행정 통제 조치 중에 하나 서천 읍내 풍경 ⓒ 오창경


지역 뉴스를 검색해보니 서천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확진자들이 발생한 마을 입구에는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임시 초소를 마련해놓고 통제를 하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와 나오고자 하는 자들이 정당한 이유를 대며 대립을 하는 상황이 화면에 나왔다.

서천 군수는 고령자들이 많은 마을의 특성상 이동 제한을 할 수밖에 없다며 협조를 부탁한다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서천군은 지난 27일 오후 1시부터 서천읍 화금2리 마을에 일시적으로 이동제한을 내렸다가 28일 오후 6시 30분부로 격리해제 조치되었다). 

안전안내문자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서천군청, 중대본, 충남도청, 부여군청의 비대면, 방역수칙 준수, 거리두기 2단계 연장. 강화 등의 내용이었다. 서천 군청의 문자는 보건소(보건지소, 보건진료소)의 업무 중단과 다시 확진자 4명 발생 등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었다.
 

서천군청 홈페이지 코로나 상황으로 서천군청 홈페이지가 급박하게 도배되어 있다, ⓒ 오창경


최근 서천군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버스 회사의 소장이었다. 그와 접촉한 버스 기사들은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버스에 탔던 승객들이 감염된 줄도 모른 채 마을로 돌아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중이었다. 지금 서천은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방어만 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다.

경계를 평화롭게 넘나들며 서천 쪽에서 이용했던 맛집들과 수산물 시장은 한동안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자발적으로 행정적 제한 조치에 적극 협력하는 방법 밖에 없다.

서천이나 부여의 작은 마을에서 발생하는 전염병은 마을을 봉쇄하고 이동을 제한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로 확산을 막을 수가 있다. 인구도 적고 직업군도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주민 협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2주간의 자가 격리와 방역 지침을 잘 지킨다면 서천에서 발생한 감염병은 물이 흘러가듯이 지나갈 것이다. 올해 부여군에서도 교회 관련 집단 감염이 발생했지만 행정적인 통제에 기민하게 대처해준 군민들 덕분에 무사히 지나갔다.

이 시국에 경기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서천역으로 도착하는 기차표를 끊었다는 전화가 왔다. 시국도 그렇지만 27일 밤부터 서해안 지역에는 폭설이 예고되었고 하늘도 화가 난 것처럼 하루 종일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심리적으로도 더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어디로 온다고? 지금 서천 쪽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야. 열차 안에서도 마스크 잘 쓰고 온다고 해도 안심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대학생이 되었어도 캠퍼스의 낭만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비대면으로 1학년을 보낸 아들은 고향집에도 날을 받아가며 내려와야 하는 시국을 겪고 있다. 우리가 화염병과 최루탄 냄새 속에 학교에 다니며 시국을 논할 때의 시국은 민주주의가 꽃피는 시국이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시국'이라는 용어조차 쓰지 않는 세상에서 살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인간의 능력 밖의 시국 속에 내던져질 줄은 몰랐다.
 

눈 내린 서천 들판의 한가로운 모습 서천군의 코로나 상황이 이 하얀 눈 속에 조용이 묻혀버리기를 기원한다. ⓒ 오창경

 
어느 새 창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다. 눈발이 조금씩 거세지고 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이고 바람이 불어서 공포의 바이러스를 순삭해 버리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서천 군민들도 힘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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