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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후보자님, "감찰 사유 충분하다"는 말 기억해 주십시오

[의료소송 5년, 끝까지 간다]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드리는 편지

등록 2020.12.31 17:40수정 2020.12.3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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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임으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을 내정했다. 박 의원은 '검찰개혁'에 소신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당시 악수하는 추미애 대표(오른쪽)와 박범계 최고위원. 2020.12.30 ⓒ 연합뉴스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님께.

30일 의원님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임으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습니다. 문자 메시지를 통해 축하 인사를 드릴지 잠시 고민하다 접고, 대신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비서진으로 의원님을 모셨던 때가 어느덧 5년이 지나 어색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죠. 

동생을 잃었을 때 해주신 따뜻한 말

의원님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여름이었습니다. 취업과 유학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더 넓은 세상 경험을 쌓고자 국회에 지원했죠. 그리고 2016년, 짧은 근무 기간을 뒤로 하고 국회를 떠나 취업하였습니다. 그해 가을, 건강하던 동생 대희가 공장식 동시수술과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죠. 하늘이 무너진 듯했던 슬픔 속에 주위에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동생 친구들 위주로 정신없이 장례를 치렀습니다. 국회에 있을 때 친하던 비서가 조문을 왔었는데 그게 의원님 귀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의원님께서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을 겪었구나, 직접 조문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마음 추스르고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며 연락주셨죠.

이후 병원을 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했던 우리 가족을 검찰은 더 힘들게 했습니다. 무력함과 억울함에 거의 매일을 술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식을 들으셨는지 의원님이 제가 살던 신촌까지 찾아와 술을 사주셨죠. 따뜻한 말만 하진 않으셨습니다. '방황 적당히 하고 얼른 정신 차려서 열심히 살라'라고 하셨죠.

제가 겪은 검찰의 문제를 의원님께 말씀드리진 않았습니다. 검사의 잘못을 확신했지만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의원님의 성향을 잘 아는 터라, 행여 수사 중인 사안에 영향을 미칠 우려와 친분으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이 싫어서였죠.


지난 6월 PD수첩 '검사와 의사친구' 편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성재호 검사는 수사 중인 사건을 변호하는 병원 측 변호사와 만났고, 저희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검사와 서울대 의대와 사법연수원을 함께 나온 바로 그 변호사였죠. 방송 중 이를 문제 삼는 PD수첩에 변호사는 '그럼 친구도 못 만나냐'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요. 순간 동생 사건을 의원님께 의논은커녕, 진행 경과도 알려주는 걸 조심스러워 했던 제가 고지식해 보였죠. 

잘못해도 처벌받지 않는 검사

그 후 검사는 간호조무사가 혼자 수술실에서 응급환자를 지혈한 것을 두고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경찰에서 6곳의 감정을 통해 의료법 위반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와 보건복지부도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유권해석을 내렸음에도 이를 무시했습니다. 

검찰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고 항고했지만 자세한 설명 없이 '검토 결과 불기소 판단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단 한문장으로 항고를 기각했습니다. 오직 법원만이 재정신청 인용을 통해 이를 바로잡아주었죠.

재정신청이 인용됐지만 성 검사는 그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습니다. 검사징계법 제2조에서는 '검사가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하였을 때' 징계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사 출신 이민석 변호사는 PD수첩에서 권대희 사건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전문가 의견이 있음에도 (성재호 검사가) 이를 배척했고, 최소한의 직무를 게을리 한 것이다. 이 정도에는 (징계가) 해당된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중징계를 못한다면 경징계, 최소한 견책이라도 줘야지만 나중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라고도 했죠. 

PD수첩에서 판사 출신의 신중권 변호사는 "성 검사의 행동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시스템적상 이 괴물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라며 "내가 하고싶은 대로 했는데도 아무런 처벌을 안 받는데 누가 안 하겠나"라고 했습니다.

올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떠올랐죠. 김진애, 김남국 의원이 이 문제를 질타하고 나서야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인용확률 0.3%에 불과한) 법원의 재정신청도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수사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감찰 사유는 충분하다고 본다"고 답을 내놨습니다.

"감찰 사유 충분하다"는 사건,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추 장관님의 말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도 어떤 소식도 없습니다. 그동안 몇몇 기자분들이 법무부에 여러 차례 질의를 해주셨지요. 감찰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매번 '현재 재판 진행 중인 사안으로,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고, 감찰 진행 여부나 진행 경과 등에 대하여는 답변 드리기 어려움을 양해 바랍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12월 15일, PD수첩 연말 특집 편이 방영된 직후 방송에 언급된 성재호 검사의 이름이 포탈사이트에 오르내렸다 ⓒ 권태훈


그 사이 성재호 검사는 한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떴습니다. MBC PD수첩에서 연말특집으로 지난 15일 다시 권대희 사건을 다룬 영향이죠. 2020년 한해 동안 PD수첩이 다룬 권력 비리 사건들의 현재 진행상황과 변화 여부를 추적하는 방송이었습니다.

6월 방송에서도 논란이 컸던 성 검사의 불기소 처분은 이번에도 시청자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PD수첩 보도에서도 대검찰청은 성 검사의 감찰 여부조차 알려줄 수 없다고 말을 흐렸지요.

박범계 법무부 장관님, 저는 전임 추미애 장관님이 국감에서 한 "감찰 사유는 충분하다"는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건에 대해 전임 장관의 발언이라고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정치적 사건이 아닌 민생을 우선하는 검찰, 법무행정을 만들어주십시오.

2015년 저에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검찰 개혁과 권력기관 개혁, 꼭 완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 권대희 형, 권태훈 올림
#박범계 #법무부장관 #후보자 #권대희사건 #성재호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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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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