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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건 글씨, 하얀 건 종이"라는 투자자도 '공격투자형' 됐다

1조6000억원 피해 '라임펀드' 판매사 KB증권, 원금 최대 70% 돌려줘야

등록 2020.12.31 11:40수정 2020.12.3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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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회원들이 지난 10월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모펀드 피해 방지를 위한 금융감독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1조6000억원의 피해를 남긴 이른바 '라임펀드'를 판매한 금융회사 중 한 곳인 KB증권이 원금의 60~70%를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금융감독당국의 결정이 나왔다. 

31일 금융감독원은 전날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서 KB증권의 라임펀드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기본배상비율은 60%, 3명의 투자자별 배상비율은 60~70%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관련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제재 등을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되고 객관적으로 손해를 추정할 수 있으며, 판매사가 사후정산 방식에 동의한 경우 추정손해액을 기준으로 분쟁조정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손해 확정 때까지 기다릴 경우 분쟁이 4~5년가량 장기화할 수 있어 판매사의 동의를 통해 미상환액 일부를 우선 배상하고, 이후 정산하도록 했다는 얘기다. 통상 펀드상품에 대한 손해배상 절차는 펀드의 환매 또는 청산으로 손해가 확정된 이후 이뤄진다. 

"초고위험 상품을 안전한 펀드로 설명"

금감원은 "사후정산 방식에 가장 먼저 동의한 KB증권에 대해 우선 분쟁조정을 진행했다"며 "지난 2019년 1~3월 중 판매된 라임AI스타1.5Y(580억원, 119계좌)에 대해 42건의 분쟁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건의 피해사례가 분조위에 올랐고, 모두 KB증권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 

앞서 라임자산운용사가 운용하던 173개 펀드(1조6700억원)의 환매 연기로 인해 개인 4035명, 법인 581사 등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었다. 지난 21일까지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은 모두 673건이다. 

분조위는 KB증권이 라임펀드를 판매하면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봤다. 투자자의 펀드 가입이 결정된 뒤 투자자 성향을 사실과 다르게 기재했고, 초고위험 상품을 안전한 펀드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KB증권은 전액손실을 초래한 총수익스와프(TRS)의 위험성도 설명하지 않았다"며 "분조위는 특히 회사가 TRS 제공사이자 펀드 판매사로서 상품의 출시·판매과정에서 투자자 보호 노력을 소홀히 해 고액·다수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책임도 크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내부 우려도 무시
 

금융감독원 ⓒ 금융감독원

TRS는 투자금의 일정 배수를 빌려 운용 규모를 확대하는 계약을 말하는데, 차입 비율이 커질수록 수익률 뿐 아니라 손실률도 확대되는 특징이 있다. KB증권이 TRS 한도가 모두 소진됐음에도 해당 펀드에 대해서만 별도로 한도를 부여하고, TRS 레버리지비율도 예외적으로 확대해 결국 전액 손실이 초래됐다는 것이 금감원 쪽 설명이다. 

또 분조위는 회사가 해당 펀드에 대해 메가히트 상품으로 매월 1~2회 출시하기로 하고, 2019년 주요목표달성 전략에 포함하는 등 적극적으로 판매를 추진한 것으로 확인했다. 더불어 내부 상품전략위원회에서 TRS의 위험성이 충분히 설명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투자자에게 교부된 요약제안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기재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와 함께 회사는 투자대상의 일부인 사모사채가 주로 무등급인 것을 알았음에도 A등급에 투자되는 것으로 기재된 제안서를 그대로 활용했다.

이에 따라 KB증권의 기본배상비율은 60%로 결정됐는데, 이 가운데 영업점 판매직원의 배상비율은 30%, 본점 차원의 투자자 보호 소홀 책임 등과 관련한 배상비율은 30%로 인정됐다. 이는 앞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기본배상비율인 55%보다 높은 수준이다. 

금감원은 "투자자별로 판매사의 책임가중사유와 투자자의 자기책임사유를 가감 조정해 최종 배상비율을 산정했다"고 밝혔다. 

월소득 170만원이 400만원으로 꾸며졌다

이번 분조위를 통해 투자원금의 70%를 돌려 받을 수 있게 된 피해자는 금융투자상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60대 주부 A씨와 투자를 꺼렸던 고령 은퇴자 B씨다. 

금감원은 "은행 직원의 권유로 복합점포를 방문한 A씨는 판매자에게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라는 것 밖에 모르니 알아서 해달라'고 했다"며 "하지만 판매자는 초고위험상품을 권유하면서 전액손실을 초래한 TRS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해당 투자자의 투자자 성향은 '공격투자형'으로 허위 등록됐다. 회사가 A씨의 월소득이 약 170만원임에도 400만원 초과로 기재하고, 경력‧학력을 감안할 때 금융지식 수준이 높지 않음에도 파생상품 등 대부분 금융상품을 이해한다고 적은 결과였다. 

또 위험이 큰 것 같아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B씨에게 KB증권은 '설명자료에 기재된 리스크는 형식적으로 쓰여진다'며 무리하게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 성향 확인 절차는 없었고, 계약서류 작성 뒤 전산처리 과정에서 적극투자형이라 가입되지 않자 공격투자형으로 변경됐다는 것이 금감원 쪽 설명이다. 

더불어 분조위는 TRS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투자자 성향 확인 절차도 밟지 못한 C씨에 대해서도 원금의 60%를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금감원은 "피해자와 KB증권이 조정안 접수 후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수락하는 경우 조정이 성립되고, 이는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다"며 "나머지 조정대상에 대해서는 분조위 배상기준에 따라 자율조정 등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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