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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또 게임, 가족과 한번 해봤는데요

연말 홈파티에서 확인한 가족애... 서로를 알고자 노력하고 이해해야 진짜 가족

등록 2021.01.02 14:32수정 2021.01.03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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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1년의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이고, 우리 가족은 2020년에 이어 여전히 집콕 중이다. 오랜 집콕 생활로 지친 가족들은 자주 부딪치기 마련인가 보다. 예민해져서 별 것 아닌 일에도 언성을 높이거나 다짜고짜 짜증을 내는 일이 이전보다 늘었으니 말이다.


온 가족이 좁은 공간에서 24시간 밀착해서 지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함께 부대끼기는 게 힘든 일이 분명한데, 요즘엔 이상하게도 가족 중 누군가가 오랜 시간 집을 비울라치면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든다. 싸우면서 정든다고 아무래도 작년 내내 지지고 볶은 미운 정이 흠뻑 들어 그런가 싶다. 
 

가족이 함께 즐겁게 보내기 위해 뭔가 계획을 세워본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 Pixabay

 
그렇게 미운 정 담뿍 든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우리 가족만의 세리머니로 추억의 마니또 게임을 하기로 했다. 마니또 게임은 여러 명이 각자 한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을 위해 정한 날까지 시시때때로 도와주고 마지막엔 선물을 주는 게임이다. 새해 첫날 아침에 떡국을 같이 먹은 적은 많지만, 일 년의 마지막 날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가족이 함께 뭔가 계획을 세워본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일주일 전 즈음, 남편이 모임 없이 지나는 연말이 허전했는지 "나도 선물 받고 싶다"며 지나가듯 한 마디를 꺼낸 게 발단이 되었다. 마침 가족들끼리라도 한 해의 마지막을 풍성하게 보내고 싶었던 나와 딸은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의기투합해 가족 마니또 게임을 제안했던 것이다.

남편과 아들은 시큰둥했지만, 나와 딸은 가족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서둘러 만들어 한 명씩 뽑게 했다. 선물을 줄 누군가의 이름을 돌아가며 뽑고, 선물하는 금액의 범위도 정했다. 아이들이 커서 선물을 살 만큼의 용돈이 있고, 스스로 준비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으니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이 벌써 어른이 다 된 것 같았다. 쪽지만 뽑았는데도 벌써 뿌듯했다. 

드디어 2020년의 마지막 31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케이크와 와인까지 곁들인 저녁식사를 맛있게 마쳤다. 성인이 되고 생전 처음으로 술을 마셔보는 아들의 신체 반응과 기분을 온 가족이 깔깔대며 실시간으로 인터뷰하면서 즐기던 즈음 드디어 마니또 선물을 개봉하기로 했다. 누가 누구의 선물을 준비했고, 어떤 선물인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각자 집 안 어디엔가 숨겨놓았던 선물 가방들을 가져오는 걸 보며 다들 한껏 들뜬 기분이 되었다. 
 

선물 가방들을 보며 다들 한껏 들뜬 기분이 되었다. ⓒ Pixabay

 
나의 마니또는 하필 남편이었다. 평생 남의 선물을 직접 사 본 적이 별로 없는 남편은 선물을 잘 못 고른다. 사정을 아는 가족들은 제발 자기가 아빠의 마니또가 아니기를 바랐는데, 결국 나로 당첨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신나 하며 마음껏 나에게 축하를 보냈다.

남편의 선물은 다이어리였다. 포장지까지 손수 쌌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실 다이어리는 남편 본인이 좋아하는 선물 아이템 중 하나일 뿐이다.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물건이다. 늘 그런 식이다.


프리지어를 좋아하는 내게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미를 준다. 치즈케이크를 좋아하는 내게 자기가 좋아하는 초코 케이크를 준다. 도대체 나를 위한 선물인지 본인이 즐길 선물인지 알 수가 없다. "에잇, 김샜다!"며 와인잔을 비우고, 도대체 "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은 언제쯤이나 받을 수 있는 거냐고 다그칠 수밖에.

딸의 마니또는 아들이었다. 아들은 미처 포장을 못해서, 급한 김에 남편의 싸고 남은 포장지로 선물을 둘둘 말아 미적미적 딸에게 건넸다. 딸은 포장을 안 했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 약간 풀 죽어 보였는데, 핑크색 천으로 만든 필통을 확인하고 나서 대뜸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필통이 뭐야? 내가 필통 살 때마다 '너는 필통밖에 살 게 없냐?'며 구박한 사람이 누군데?"

아들은 연신 미안해하며, 그 날 오후에 대형서점 팬시문구 코너를 돌고 돌았지만 딱히 적당한 게 없더라는 변명을 했다. 그래도 아들은 부족한 성의를 채우려고 따로 도넛과 아이스크림까지 챙겨 왔으니 그나마 딸에게 위안이 되었다. 

다행히 내가 준비한 선물, 전자기기 터치가 가능한 장갑은 아들이 마음에 들어했다. 날씨가 추웠던 며칠 전 같이 동네 일로 실외 촬영을 함께 나갔다가 손 시려하던 걸 보고 힌트를 얻었던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밖에서 촬영할 일이 많을 테니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아들이 기뻐하며 당장 장갑을 끼고 핸드폰에 터치해 보는데, 웬걸 기대만큼 시원하게 화면이 잘 안 넘어간다. 답답한 마음에 장갑 끝까지 손가락을 밀어 넣어서 터치해 보라고 박박 우겨대는 날 보며 딸과 남편이 박장대소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볼 때 알아봤어야 되는 건데... 보기에는 멀쩡한데 꼭 2% 아쉬운, 나를 닮은 선물을 했다. 

마지막으로 딸의 큼지막한 짙은 남색 종이가방에 든 선물은 남편 것이었다. 아주 흡족해하며 포장을 뜯어보던 남편은 들어있던 무선 충전 마우스패드를 보고 급실망했다. 패드를 콘센트에 꼽고 위에 핸드폰을 놓으면 무선으로 충전이 되는 나름 신기술을 이용한 패드였다.

평소 신기술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을 딱 맞춘 선물이면서도 마침 집에 마우스패드도 없던 차라 환영할 법도 한데, 남편의 반응이 영 좋지가 않았다. 종이가방이 너무 럭셔리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별 게 아니었다는 둥, 양복 한 벌은 든 줄 알았다는 둥 혼잣말이 끊이질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다이어리를 내 선물이라고 준 건 그새 다 잊어버렸나 보다. 
 

서로를 알고자 노력하고 이해해 나갈 때 진짜 가족이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새겨보고 싶다. ⓒ Unsplash

 
다들 선물을 펼치기만 하면 실망과 푸념이 대폭발이니 이럴 거면 내년에는 아예 각자 원하는 물건을 미리 밝히는 게 좋겠다는 의견과 그렇게 하면 선물 받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정성이 없어 선물의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며 설왕설래가 쉬이 끝나질 않았다. 

오랜만에 선물을 핑계 삼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악의 없이 장난스럽게 마음껏 토해내서 그런 걸까? 마음이 다들 후련해 보였다. 분명 실컷 먹었는데도 너무 웃고 떠들어서 소화가 금방 되었는지 다시 허기를 느꼈으니 말이다. 

긴 긴 집콕 생활 끝에 가족들이 이제야 마음을 맞춰가고 이해하며 서로를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다. 각자의 약점은 그대로 수긍하며 이해하되, 내가 바라는 점은 명확히 전할 수 있게 되면서 말이다. 같은 공간에서 밥 먹고 잠 잔다고 가족이 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고자 노력하고 이해해 나갈 때 진짜 가족이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새겨보고 싶다. 

오랜 기간의 집콕 생활이 힘든 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좋은 점을 남기는 것 같다. 자주 부딪친 끝에 결국 더 편안해지고 깊어진 가족애가 그것이다. 코로나 중에 해를 넘기고 새 해를 맞으며 나름 가족애를 재발견 해 보는 기쁜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본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가족애 #홈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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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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