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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도 아니고, 오렌지도 아닌데... 요것 참 맛있네

[인터뷰] 부여에서 신기술로 레드향 재배하는 농부 윤석한님

등록 2021.01.05 13:48수정 2021.01.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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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배부른 레드향 레드향 수확 ⓒ 오창경

 
바깥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새해에 내리는 서설이었다. 창문에 기대어 서서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다가 문득 옆 마을 농가에서 레드향을 수확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생각이 났다. 언제부턴가 황금향, 레드향, 한라봉... 이런 오렌지와 귤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과일들이 우리 곁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농업 기술의 발달은 이국적인 향기를 품은 과일들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오렌지의 향기가 날릴 것 같은 레드향 농원에는 어쩐지 낭만적인 풍경이 쫙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가 아닌 내륙의 한 가운데, 그것도 내가 사는 옆 마을에서 먼 외국의 과일인 것 같은 레드향이 익어가고 있다는 소문의 향기를 따라 나섰다.

하우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소리가 먼저 반겼다. 1000평의 연동 하우스 안에는 귤보다는 크고 색깔도 진한 레드향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레드향 일반적으로 납작한 레드향과 달리 배가 불룩한 레드향 ⓒ 오창경

 
보는 것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선명한 주홍빛 색감은 농염했고 나무는 튼실해 보였다. 밖은 하얀 겨울인데 하우스 안에는 계절을 실감할 수 없는 싱그러운 열매와 초록색 잎들이 찬란했다. 부여군 양화면 송정리의 윤석한(68세) 님의 농장이었다. 

"원래는 방울토마토를 재배 했었지요. 방울토마토는 인건비가 많이 드는 작물이에요. 사람들을 관리하기 힘들어 고령화되는 농업 환경과는 맞지 않는 작물이라 과감하게 바꾸게 된 거죠."

부여는 전국 방울토마토 생산량의 8%를 차지하는 곳이다. 그런 여건 속에서 농업계의 블루 오션을 찾아 레드향이라는 작물로 전환을 시도했고 올해 처음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중이다. 1000평의 연동 하우스에서 아내와 단 둘의 인력만으로 레드향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있다고 한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의 회남의 귤나무가 회수를 건너 회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생태학적으로는 토양과 기후에 따라 열매의 질이 달라진다는 뜻이 되겠지만 인문학적으로는 환경적 요인이 결과를 다르게 한다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접목한 레드향 나무 뿌리쪽은 탱자나무. 가운데는 한라봉, 위쪽은 레드향으로 접목해 신품종 레드향을 탄생시켰다. ⓒ 오창경

 
하지만 이제는 농업 기술의 발달로 회북에서도 탱자가 아닌 귤이 자생하게 되었다. 레드향은 탱자나무에 황금향을 접목해서 키운 다음에 베어내고 다시 레드향을 접목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레드향은 열과가 적고 당도가 훨씬 높다고 한다.


부여에는 레드향을 재배하는 농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독학으로 공부하고 실험하며 만들어낸 나무였다. 황금향의 장점과 레드향의 단점을 보완해서 탄생한 레드향 계의 신품종이었다. 윤석한 농부의 레드향은 일반적으로 납작한 모양의 레드향에 비해서 한라봉처럼 배가 불룩하고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다고 해서 신 레드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기술은 윤석한 님의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에서 비롯되었다. 탱자나무를 레드향 나무로 만드는 21세기 신기술 농법이 귤화위지라는 옛말을 무색하게 한 현장이었다. '레드향을 재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레드향은 열과가 많은 편이에요. 수분이 부족하면 껍질이 갈라지고 터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수분 관리가 가장 중요해요."

온도 유지가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답을 예상했었는데 의외였다. 혹한의 겨울이 길지 않고 난방 장치들의 성능이 좋아서 이제는 내륙에서 이런 과일들을 재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 하우스 안의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관리하면 된다고 했다.
 

레드향 먹음직스런 레드향 ⓒ 오창경

 
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맛부터 보라고 건네 준 레드향은 입 안에 넣자마자 달콤하고 상큼한 과즙이 톡톡 쏘는 맛으로 반겨주었다. 귤보다는 씹는 맛이 월등했고 시지 않은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레드향 맛에 들리기 시작하면 귤은 먹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렌지보다 껍질도 얇고 쉽게 벗겨져서 과육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은 편이었다. 귤의 단점을 보완한 겨울 과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 레드향은 귀농하는 젊은 친구들이나, 초보 농부들에게 추천하기에 전망이 있는 작목인가요?"
"워낙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품목은 아니지요. 우린 농사로 잔뼈가 굵었고 방울토마토 재배를 하면서 쌓은 하우스 농법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전환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할 일이 없으면 농사나 짓지 뭐 하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고 했다. 농업도 이제는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는 세상이라 부모가 농촌에 기반을 잡고 있거나 초기 자본 투자와 실력을 갖춰야 농촌에서 자리 잡기가 쉬울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귀농을 준비하거나 품목 전환을 고심하는 농부들에게는 쉽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 명절 선물로 인기가 있을 텐데 너무 일찍 출하하는 것 같은데요.
"설이 아직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 보관할 저온창고가 부족해서 올해는 그냥 출하할 수밖에 없네요. 올해 저온창고를 마련해서 내년 설에는 명절 선물 세트도 판매해야죠."

방울토마토 농사를 지으며 쌓은 농법의 노하우로 내륙에서 레드향 농사에 도전한 윤석한 농부의 도전이 신축년 새해에는 빛을 발하기를 기원한다.
#레드향 #신기술 농법 #부여 레드향 #내륙 재배 레드향 #레드향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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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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