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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낙상사고 은폐 의사, 아이 죽었지만 징역 2년?

[의료소송 5년, 끝까지 간다] 분당차병원 사건, 관대한 법원과 공전하는 국회

등록 2021.01.05 11:02수정 2021.01.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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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지막달, 대법원에서 중요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분당차병원에서 2016년 발생한 사건으로, 이른바 신생아 사망 은폐사건이지요.

사건은 2016년 8월 어느 날 분당차병원 분만실에서 발생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신생아를 한 의사가 받아 옮기는 과정에서 넘어진 거죠. 아이는 이 과정에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아이는 소아청소년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몇 시간을 못 버티고 끝내 숨을 거뒀지요.

더욱 충격적인 건 사망 이후에 있었습니다. 분당차병원 의사들은 수술 중에 아이를 떨어뜨린 사실을 감췄죠. 사망진단서엔 '병사'라고 표기됐습니다. 외인사로 적을 경우 부검을 해야 하지만 병사는 부검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죠. 사망진단서를 조작한 겁니다.

사건은 무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알려지지 않았지요. 수술 중에 아이를 떨어뜨린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의료진이 최소 5명은 됐지만 아무도 밖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병원 운영을 총괄한 장아무개 부원장은 이 사건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죠. 조직적인 은폐 의혹이 제기된 이유입니다.
 

대법원 대법정 대법원은 신생아를 바닥에 떨어뜨려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을 은폐한 분당차병원 의사들에게 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대법원 홈페이지

  
아이가 사망했지만 증거를 은폐한 의사, 징역 2년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020년 12월 분당차병원 의료진에 대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의료법 위반과 증거인멸 혐의를 받은 산부인과 주치의 문아무개씨와 소아청소년과 주치의 이아무개씨는 각각 징역 2년과 벌금 300만 원을, 신생아를 떨어뜨린 의사 이아무개씨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지요.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한 장 부원장도 징역 2년형을 받았습니다.

더 황당한 건 피고인들이 재판과정에서 낙상사고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고, 아이의 1.13㎏ 극소 저체중이 문제가 됐다는 취지로 증언했다는 점이죠. 증거까지 조작해 어린 아이를 화장하고 2년 동안 진실을 알리지 않은 의사들이 재판에서까지 반성할 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천벌 받을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이들은 처벌이 부당하다며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왔습니다. 고작 2년형이 무겁다는 주장이었죠.


분당차병원은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병원입니다. 그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부원장과 여러 교수급 의사들이 공모해 갓 태어난 아이를 떨어뜨린 사실을 감추고 여러 자료를 조작했지요. 그럼에도 죗값은 고작 2년, 벌금 300만 원입니다.

730일을 갇혀 지낸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아요. 그런데도 이들은 제 죗값이 무겁다고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왔습니다. 의사들에게 얼마나 법원이 관대한 판결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지요.

여전히 공전(空轉)하는 국회의 CCTV 설치법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은 아직도 국회 첫 문턱, 제1법안심사소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난 정기국회와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했죠. 2016년 동생 대희가 공장식 유령수술로 숨진 '권대희 사건' 이후 모든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년째 해왔지만 바뀐 게 없습니다.

법이 처음 발의된 건 2020년 5월이었죠.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수술실에 CCTV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권대희법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지만 결정적 계기는 분당차병원 신생아 낙상사고였지요. 의사라는 사람들이 아이를 떨어뜨려 죽게 만들고도 그 사실을 부모에게 감추고 몇 년간 지냈으니 더는 의사의 선의에 기대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법안은 20대 국회가 끝나기까지 끝내 통과되지 못했지요.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분들조차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법안이 발의된 지 하루 만에 의원 5명이 발의의사를 철회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죠. 철회한 의원은 김진표·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동섭·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었습니다. 이 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두 분은 또 당선돼서 현직 국회의원이시죠.

어머니께서 제 몸보다 큰 피켓을 들고 국회 앞에서 오래 1인 시위를 하고 나서야 21대 국회에서 다시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을 입법해주었습니다. 김남국, 안규백 의원이 각각 발의하셨죠. 김 의원 안은 병원급 병원부터 법제화하기로 해 사각지대가 크고, 안 의원 안은 처벌규정이 다소 모호하지만 어찌됐든 환자 입장에선 큰 변화가 있을 게 분명한 법안입니다.

하지만 국회에선 아직도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지요. 분당차병원 사건이 징역 2년형으로 마무리된 걸로 충분할까요. 아닙니다. 그날 분만실에 CCTV가 있었다면 결코 그들은 증거를 인멸하지 못했을 겁니다. 근본적으로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지요.

국회가 2020년 말 조사한 여론조사에선 무려 89%가 수술실CCTV 법제화에 찬성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분들이 국회 보건복지위 과반이 훨씬 넘습니다. 대체 무엇이 두려워 법안 통과를 주저하고 계시나요.

제2, 제3의 권대희, 분당차병원 신생아를 막아야 합니다. 오직 그 일념으로 이 글을 씁니다. 국민의 대표이신 국회의원님들, 부디 법안을 통과시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권대희 형 태훈 올림.
#신생아낙상사건 #분당차병원 #수술실CCTV #권대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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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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