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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 마른 생활기록부, 올해는 살 좀 찌우자

비대면 수업이 더 많았던 1년, 특기사항에 쓸 내용이 고민입니다

등록 2021.01.08 08:18수정 2021.01.0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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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기록부를 적는다. 이걸 해야 곧 아이들 통지표도 나눠줄 수 있다. 올해는 연간수업일수가 191일에서 173일로 줄었다. 등교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다 보니 아이들 얼굴 보는 시간이 적었다. 적었던 시간만큼 생기부에 적을 내용이 줄었다. 교과발달상황, 창의적 체험활동 특기사항에 쓸 내용이 많지 않아 고민된다.
 

2020 00초등학교 5학년 6반 생활기록부 생활기록부 표지 ⓒ 조성모

 
그나마 더 적을 내용은 아이들 출결 상황이다. 코로나19 경계·심각이면 '학교장허가교외체험학습'이 20일에서 '가정학습' 포함해서 40일로 늘어난다. 거기에 감기증세면 해당아이도 그렇고 또 주변 아이들 눈도 있고 해서 유증상으로 '가정 내 건강관리 기록지'나 '코로나19 유증상학생 학부모 의견서'를 제출하면 출석인정이 되니 작년보다 몇 갑절은 결석이 많다. 그만큼 학부모님이 내야 하는 서류도, 선생님이 챙겨야 하는 서류도 많다.


지난해 4월 16일 1학기 개학하면서부터 학생평가는 교사가 학생들과 같이 있을 때 봐야한다 해서 수행평가 보는 시간도 한두 시간 꼭 넣었다. 당연히 수업하는 시간이 줄었다. 애들이랑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도 하고 싶은데 당최 뭘 할 시간이 없었다. 애들은 맨날 시험보냐고 성화였다.
 
"우리 날 좀 풀리면 영화도 볼거야."
"와우", "언제 봐요?", "어떤 영화요?", "요즘 극장에서 하는 그 영화 봐요", "제가 영화 좀 가지고 올까요?", "저도 영화 좋아해요", "우리 영화볼 때 라면도 같이 먹어요?"
"선생님이 너희들이랑 같이 보면 좋을 거 같은 영화, 이미 구해놨어."
"이거 시험 끝나고 볼 거예요?", "영화 끊어지면 재미 없으니까, 이따 급식 먹고 오후에 봐요", "사랑해요, 샘~", "잘 생기셨어요."
"하하, 고맙다. 오늘은 안 될 것 같고 다음에 보자고."
"에이, 그럼 꼭 다음에 재미난 거 보기에요."
"그럼, 당연하쥐."

그 당연한 걸 하지 못했다. 음악 수업 때 '오즈의 마법사' OST 감상수업 하면서 영화를 조금 본 거 외에는 지금까지 영화 만들기는커녕 한 편도 못 봤다. 등교수업 때는 동학년과 어느 정도 같이 진도를 맞춰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온라인 수업 컨텐츠를 만들어 업로드 해서 교육 과정을 맞출 수 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교사별 교육과정'을 발판삼아 아이들과 같이 재밌고 유익한 활동을 하며 학생들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을 했는데 아쉽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같은 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의 협력이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조직해서 사회역사와 언플러그드 코딩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실천했다. 경력에 상관없이 서로 가르쳐주고 배울 수 있었다. 오히려 나보다 나이도 많으신 선생님들이 더 열정적이고 끝까지 배워서 익히려는 모습이 신선했다. 배워서 남 주는 그야말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자기 자신이 더 배우게 되는 좋은 모임이다.

영어로는 'Cascading New Knowledge'인데 cascade가 작은 폭포 또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이니까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이란 뜻이다. 물질은 남에게 퍼 주면 줄어들지만 지식은 알려주면 상대방은 배워서 좋고, 가르치는 사람은 오히려 그 앎이 더 단단해지고 튼튼해진다고 한다.

교실에서 보면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을 선생님보다 또래 친구가 설명을 해 주면 더 잘 이해하는 것을 보곤 한다. 배우는 학생보다 가르치는 학생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배움의 형태인 것 같다.


올해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배워서 남 주는 걸 더 많이 보고 싶다. 등교해서 문제 풀이식 수행평가 하는 시간보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학생들의 웃음짓는 얼굴이 고프다.

아이들 손으로 단편영화도 만들어보고 시사회도, 여차하면 영화제에도 출품해 보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 앞에 밥도 못먹어 삐적 말라 허우적대는 생활기록부를 쓸 때 '반찬이 너무 많아서 이걸 다 어떻게 줄이지' 고민하고 싶다.

"생기부야, 내년엔 밥 많이 먹고 건강해라."
#교육 #교실 #학교 #학생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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