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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레깅스 불법촬영 무죄' 뒤엎은 이유는?

유죄 취지 파기환송... "하나의 기준을 마련한 판결"

등록 2021.01.06 11:31수정 2021.01.0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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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모습. (자료 사진) ⓒ 사진제공 대법원

   
"자신의 의사에 의해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 하더라도, 이를 본인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촬영할 경우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수 있다."

대법원이 이른바 '레깅스 몰카' 사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항소심(2심) 판단을 뒤엎었다.

6일 대법원(주심 대법관 김선수)은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서 2심을 심리했던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 판단 대부분을 비판하며 "모습이 (불법으로) 촬영되는 경우 고정성과 연속성 등에 의해 (중략) 인격권을 더욱 중대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사진에 비해 동영상이 촬영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레깅스 몰카 사건이란?] 사건 자체보다 2심 판결이 더 논란

레깅스 몰카 사건이란 2018년 5월 한 남성이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약 8초간 몰래 촬영하다 적발된 건이다. 피고인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으로 기소된 바 있다. 

이 사건은 2심의 판결문 자체로 상당한 논란이 된 바 있다. 먼저 2심이 피해자가 불법촬영된 사진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판결문에 게재했던 일이다. 이를 두고 무단으로 찍힌 사진이 공적 기록에 그대로 남겨졌다면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판결문에 적힌 판단 근거 또한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앞서 1심은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이를 파기하고 무죄를 내렸다. 아래와 같은 판단 근거 때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서 있는 피해자의 뒤에서 피해자를 몰래 촬영한 것이기는 하나, 피고인은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사람의 시야에서 통상적으로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다.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중략)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

2심의 판단을 두고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불법촬영을 당했다는 피해사실, 혹은 드러난 범행사실보다 피해자가 노출된 정도를 더 중요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심은 피해자가 경찰조사 당시 "기분이 더럽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생각을 했다"는 진술을 두고도 해당 진술이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나타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본인의사에 반해 촬영할 경우 성적 수치심 유발된다"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결을 모두 비판했다. 먼저 대법원은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거나, 피해자가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사정은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의 모습이 타인의 성적 욕망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불법촬영의 피해 사실도 명시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생활의 편의를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해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 하더라도, 이를 본인 의사에 반해 함부로 촬영할 경우 피해자 입장에서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법원은 특정인의 신체가 불법 촬영될 경우, 고정성과 연속성, 확대 등 변형가능성, 전파가능성 등에 의해 인격권이 더욱 중대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명시했다.

또한 대법원은 2심이 '통상적으로 비춰지는 부분을 촬영했다'고 본 부분도 모두 배척했다. 이 사건 동영상에는 (중략) 대체로 피해자의 하반신 위주로 촬영이 이뤄졌을 뿐더러, 촬영 대상·결과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피고인의 행위가 불법 촬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성적수치심 의미 확장... "다양한 층위의 피해감정"

2심이 성적수치심의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피해자의 경찰조사 진술은 대법원에 와서야 증거로 인정됐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기분이 더럽다'고 말한 부분을 들어 "인격적 존재로서의 분노와 수치심의 표현"이라며 "성적수치심이 유발됐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된다"고 명시했다.

이어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적 피해를 당했을 때 반드시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라며 "성적 수치심이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을 비롯한 다양한 층위의 피해감정을 포섭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해석은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수치심을 보다 확장해서 해석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성적수치심을 부끄러운 감정에 한정하는 '피해자다움'이 아닌, 피해자가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피해 감정을 고려해 판결에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부분은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보호법익으로서의 성적 자유에 대한 의미를 보다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해당 범죄의 보호법익에 있어 '성적 자유'의 의미를 '소극적으로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은 자유를 의미한다'고 명시했다.

대법원은 지난 2020년 판결에서 강간, 추행 기타 성폭력 관련 범죄의 보호법익으로 '성적 자기결정권' 또는 '성적 자유'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만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한 발 더 나아가 카메라등이용촬영죄에서의 보호법익 또한 처음으로 구체화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밖에도 대법원은 "촬영 대상, 촬영의 맥락과 결과물을 고려해, 그와 같이 촬영을 했거나 촬영을 당했을 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로도 카메라등이용촬영죄가 성립한다"는 설명도 판결에 덧붙였다.

이날 판결과 관련해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대법원이 최근에도 성인지감수성을 강조하고, 피해자 중심으로 사고하는 추세라고 봤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전향적이고 적절한 판결을 내린 것 같다"라며 "반면 앞선 2심 판결은 여성의 옷에 주목하며 그 뒤를 몰래 촬영한 행동이 범죄가 아니라고 봤는데, 상당히 문제가 있는 판결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장 변호사는 "이번에 대법원이 파기환송으로 내세운 기준들은 추후 하급심 판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는 실무에서 거의 법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이번 판결이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준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레깅스 #불법촬영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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