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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나이브하거나 소신이 낡았거나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실망스러운 전직 대통령 사면론

등록 2021.01.07 19:17수정 2021.01.0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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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6일 오후 서울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2021년 새해 첫날 던진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의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 5일 방송된 JTBC 신년 토론에서 서울 강남구에 거주한다는 '사면 반대' 시민이 전화로 전한 일성은 매서웠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내놓은 여러 해석만큼이나 이 여성 '촛불시민'의 짧은 주장엔 많은 화두가 함축돼 있었다.

"도대체 누가 사면을 하라 했는지 참 궁금하고, 아직도 두 분은 죄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치보복이니 또는 억울하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무슨 사면 이야기를 하는지,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사면을 말씀하시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통합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2017년 추운 겨울날 하루도 빼지 않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지금 사면 말씀을 하시면 굉장히 허탈합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고위층이나 권력층에게는 좀 더 엄격한 도덕과 윤리가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시민의 요구, 사면의 명분과 정당성, 국민 통합이란 정치적 수사의 의미, 한국사회 기득권의 부실한 도덕과 윤리 의식, 촛불 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의 방향성까지. 이 대표의 사면론이 지닌 무게가 이 정도였다. 거대 여야 모두 설왕설래를 거듭 중이다. 민주당은 내부 반발과 진화가 오갔고, 국민의힘은 당혹스러움과 정치적 계산이 교차했다.

이 대표와 함께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JTBC 토론에선 말을 아꼈지만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이낙연 발 사면론에 대한 찬반이 한창이던 지난 3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넷플릭스 다큐 <위기의 민주주의>를 소개한 이 지사는 "기득권 카르텔을 개혁하는 것이 곧 민생"이라며 글 말미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언급했다.

"촛불은 비단 박근혜 탄핵만을 위해 켜지지 않았습니다. 불의한 정치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 강고한 기득권의 벽을 모두 무너뜨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검찰개혁, 사법개혁은 물론 재벌, 언론, 금융, 관료 권력을 개혁하는 것으로 지체 없이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선주자 이낙연이 우선인가


이 대표는 사면론으로 후폭풍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을 넘겼다. 공을 받은 청와대뿐만 아니라 두 전직 대통령 측과 여야 모두 각자 셈법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다. 사면론 자체가 거대한 블랙홀로 진화해 나가는 중이다.

특히 여권이나 여권 지지자들의 당혹스러움은 배가됐을 터. 여론 흐름도 마찬가지였다. 찬반이 경합을 나타낸 5일 <오마이뉴스> 여론조사나 전 주에 비해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은 하락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한 리얼미터의 6일 자 1월 1주 차 정기조사 결과가 그랬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시기나 정당성, 또 절차 모두에서, 누구보다 이 대표가 국민 다수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던진 화두였을 터. 분명히 따져야 할 것은 이러한 이 대표의 느닷없는 사면론이 여당 당대표와 대선주자 중 어느 쪽 정체성에 더 기울어진 계산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최근 몇 달간 대선주자 이낙연의 지지율은 답보거나 하락세였다. 이 대표는 국민통합을 근거로 내세웠지만, 사면론이 지지율 하락의 타개책이거나 중도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대선주자 이낙연의 초조함이 시대 정신을 외면한 악수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원안에 충실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리도 아니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나 의료‧방역 체계 개선도, 부동산 개혁안도 아니었다. 민생도, 개혁도 없었다. 이 대표의 언론 인터뷰로부터 촉발됐다고는 하지만 남은 것은 사면론 하나였고, 확인한 것은 국민통합이 아닌 팽팽한 찬반이요, 세대 간, 진영 간 이견이었다.

대선주자로선 화두를 던지는 데 성공했을지 모를 일이다. 혹자는 이러한 사면론이 당장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보궐선거에서 중도층을 잡는데 유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행여 이 대표가 개인적으로 그런 포석을 가졌을 수는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집권 이래 최저 지지율로 최대 위기를 맞은 민주당이 대선급이라 평가받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론 정도로, 미완의 국민통합론으로 반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지난 총선 결과가 어디 그런 정치공학과 셈법의 결과였나.

민생도, 개혁도 아닌 때 이른 전직 대통령의 사면 논의가 집토끼의 반발을 딛고 산토끼를 잡아올 수 있을 거라 여겼다면 다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대표가 너무 나이브하거나 국민통합이란 낡은 가치가 원래 소신이었거나.

그런 점에서 논란이 일자 이 대표가 대통령의 의중을 걸고넘어진 것은 깔끔하지도, 정당하거나 정의롭지도 못했다. 결국 지지율 하락과 반전 요소가 불투명하다는 대선주자로서의 초조함이 정치인 이낙연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초조함이 개혁에 대한 열망을 망각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면, 애초 거대 여당 당 대표로서 지녀야 할 비전이나 개혁 의지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이번 사면론 파문에서 이 대표가 자인한 꼴이 아닌가.    

국민통합이란 낡은 가치

"176석이라는 의석을 가지고도 제대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다면 누가 다음 대선에서 우리에게 또 표를 주고 싶겠는가. 176석에 주어진 시간은 4년이 아니라 바로 지금 2년이다. 이러한 책무를 우리가 수행하기 위해 당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지난해 8월 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앞둔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의 경쟁자였던 박주민 의원은 이런 일성을 토해냈다. 이게 불과 5개월 전이다. 이 대표가 사면론에 불을 지핀 이후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박 의원의 당시 연설이 회자된 이유를 이 대표 스스로가 곱씹을 때다. 과거 경쟁자였거나 현재 경쟁자인 박 의원과 이 지사의 일성을 소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고.

단도직입적으로, 범여권에 180석을 몰아준 민의가, 촛불시민의 요구가 과연 사면론과 부합하는가 말이다. 국민이 그리고 여권 지지자들이 거대 여당 당 대표에게 묻고 있다. 코로나19 양극화로 서민들이 고통받는 지금 본인 지지율을 먼저 걱정할 때인가 라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정권 유지 차원의 레토릭으로 강조하던, 역사적으로 그 실체를, 허구성을 의심받아온 국민통합이란 낡은 가치가 본인 소신이 맞느냐고.

개혁에 매진하고 코로나19 위기를 해결해 민생을 도모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아 안아야 할 시점에 사면론을 들고 나온 대선주자 이낙연의 정치공학이 국민을 통합으로 이끄는 동시에 여당의 보궐선거 승리의 단초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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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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