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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아, 용균아, 동준아, 태규야… 이제야 목 놓아 불러본다"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된 중대재해법 통과… "아쉽다" 토로한 유족들

등록 2021.01.08 21:05수정 2021.01.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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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법이 본회의에 통과된 후 고 김영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제 법이 만들어졌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며 “이 법이 정말 사람을 살리는 법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 유성호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많이 부족하지만 역사적인 날” ⓒ 유성호

 
"이한빛, 김용균, 김동준, 김태규, 김동균, 홍수현, 황유미, 김일두, 세월호 참사 304명 우리 아이들, 스텔라데이지호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29일 동안 단식한 고 이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8일 저녁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통과 이후 국회 정문 시민단식농성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제야 목 놓아 부른다"면서 외친 이름들이다.

이씨가 호명한 이들은 모두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로 사망한 피해자들로, 이씨는 이들을 향해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로 돌아가신 모든 영혼들에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바친다"라고 말했다. 발언 이후 이씨는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씨와 함께 29일의 단식을 포함해 33일 동안 농성을 함께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역시 지친 표정으로 "한 달 동안 참 힘들었다"면서 "길고 어둡고 험난한 시간이었다. 해를 넘겨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국회 밖에서 투쟁한 여러분들 덕이었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이내 "정치인들이 법을 만든다고 약속만 했지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법안이 논의될 때마다 조항이 깎여나가는 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사람이 죽는 걸 막지 못한 정부가 오히려 법안을 망치고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라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힘을 모아 '이 정도 법이라도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너무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힘들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노력한 만큼은 안 되지만 그래도 중대재해법 통과라는 성과를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얼굴은 한 달여의 단식으로 인해 눈에 띄게 검어진 상태였다.

앞서 국회는 이날 오후 5시께 본회의에서 의원 266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64, 반대 44, 기권 58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가결했다.


가결된 법안에는 산업재해나 사고로 노동자가 숨지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명시됐다. 또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나 법인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전체 재해의 32%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50인 미만 사업장 역시 법 적용까지 3년의 유예 기간을 갖게 됐다. 

'아쉽다' 말한 유족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1571명 산재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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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법이 본회의에 통과된 후 고 김영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자, 시민들이 장기간 단식농성으로 지친 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이불을 덮어주고 있다. ⓒ 유성호

  

고 김영균 어머니 김미숙 “중대재해처벌법, 사람 살리는 법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 ⓒ 유성호

 
8일 저녁 국회 정문 단식농성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지난 2019년 4월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도 함께 섰다.

김씨는 "너무 아쉽다"면서 "벌금 하한선이 삭제되고, 일터 괴롭힘과 발주처 처벌도 빠지고, 인과관계 추정도 빠졌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제외되고 유예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마저 차별하는 법이 돼 과연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라고 속내를 밝혔다. 

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사망한 태규씨는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안전화와 안전모, 안전벨트를 지급받지 못했다. 대신 자신의 오래된 운동화를 신고 현장에서 굴러다니는 헬멧을 쓴 채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채 일하다 변을 당했다. 지난 6월에 이뤄진 1심에서 해당 건설사는 700만 원 벌금형을 받았다. 하청업체 현장 소장과 차장에게만 각각 징역 1년과 10월이 선고됐다.

지난 5월에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생활폐기물 처리업체에서 근무하다 파쇄기 점검 중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고 김재순씨의 아버지 김선양씨도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것에 대해 비통하고 개탄스럽다"면서 "산업재해 피해 유가족들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것이 재순씨가 사망한 사업장은 10인 미만 소규모 영세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최근 6년 동안 한번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다. 6년 전인 2014년 재순씨와 마찬가지로 파쇄기에 끼어 60대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이후에도 비용절감을 이유로 안전설비는 갖춰지지 않았다. 당시 사업주가 받은 처벌은 벌금 800만원이 전부였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서 지난 열흘 동안 함께 단식농성을 진행한 양경수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도 자리했다. 

양 위원장은 "산업재해 피해 유가족의 단식이 이 투쟁을 끌고 왔다"면서 "전국 곳곳에서 동조단식과 다양한 투쟁으로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해 오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양 위원장은 "민주당의 기만적 행태로 제정된 법안에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됐다"면서 "이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죽는다면 그것은 온전히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에 발표한 2020년 1월부터 9월 말까지의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해당기간 동안 산재 사망자는 1571명으로 조사됐다. 그 가운데 23.9%인 375명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했다. 61.5%인 966명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였다. 앞서 2019년에는 2020명, 2018년에는 2142명, 2017년에는 1957명이 정부 통계상 산업재해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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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법이 본회의에 통과된 후 고 김영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자, 시민들이 이들을 포옹하며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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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법이 본회의에 통과된 후 고 김영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제 법이 만들어졌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며 “이 법이 정말 사람을 살리는 법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 유성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중대재해법 #김용균 #이한빛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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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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