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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일하다가 죽기 딱 좋은 나라'인 이유

[오태양의 미래정치칼럼] '김용균 없는 중대재해법' 처리과정을 지켜보며

등록 2021.01.09 17:17수정 2021.01.2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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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안을 처음으로 대표 발의한 고 노회찬 의원의 입법 시도로부터 1366일 만의 일이다. 그런데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어 씁쓸하다. 법안의 원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후퇴한 반쪽 법안이기도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누더기 법' 논란이 또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입법 과정이란 것이 각계의 이해관계를 수렴하고 쟁점 사항을 조정하여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나, 막강한 입법 권한을 거머쥔 의회 다수당 민주당의 입법 퇴행을 마주하니 더욱더 그러하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1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던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8일 저녁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단식농성을 해산하며 울고 있다. ⓒ공동취재사진2021.01.08 ⓒ 오마이뉴스

 
['중대재해법' 관련 기사]
내쫓겨난 유족들... '누더기' 중대재해법, 법사위 통과 http://omn.kr/1rb2b 
강은미도 울고, 유가족도 울고... '불청객' 된 중대재해법 http://omn.kr/1rbb3 

입법의 성격과 내용은 정당의 정체성을 투영한다. 중대재해법은 '기업 책임과 처벌을 통한 재해 예방과 시민안전'을 목표로 하였으나,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기업의 책임 회피와 재해 예방의 사각지대'를 오히려 만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재해기업보호법'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논란 많은 이 법, '기업보호법'이냐는 오명까지 

민주당이 '노동 안전과 생명 존중' 보다 친 기업 정서, 선거용 입법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을 비켜서기 어렵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국정 철학은 온데간데없이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기업 우선주의, '선거가 먼저다'라는 정략적 판단이 온통 지배하는 듯하다.

비단 '중대재해법'만 그러했던가. 아니다. 민주당의 '누더기 법'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2018년 겨울에는 일명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슈가 뜨거웠다. 그러나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제기된 '법의 보호 대상 확대와 원청 책임의 강화'라는 입법 취지가 무색하게 정부·여당 안은 한참을 후퇴했다. '기업경쟁력'을 앞세운 재계의 반발과 요구가 대폭 수용되었다. 오죽했으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 했을까. 결과적으론, 2019년 시행령 마련 이후에도 중대 산업재해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운데, 마이크)가 지난해 12월28일 광화문광장 ‘국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대한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우성2018.12.28 ⓒ 오마이뉴스

 
2019년 겨울은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둘러싼 선거법 개정안이 정치개혁 이슈로 전면화되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제외한 원내 정당들이 가까스로 합의하여 마련되었던 '선거제도 개혁안'은 끝끝내 민주당의 몽니와 말 바꾸기로 후퇴를 거듭하더니 결국 '누더기 법'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헌정사상 초유의 위성 정당이 만들어지고, 양당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무늬만 개혁 선거법', '소수정당 없는 선거법' 개정이 낳은 역설이었다.

민주당은 그럴 때면 늘 '발목 잡는 야당 탓'을 하거나 '의석수가 부족한 탓'을 해 왔다.  21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의회 절반을 훌쩍 넘는 입법 권한을 만들어 주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런데 소용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할 때나 '중대재해법'을 제정할 때나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는 여전히 읍소해야 하고, 한겨울 농성장에 누워야 하고, 울고 또 울어야 한다. 민주당은 과반 의석 이전과 이후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산업재해 유가족과 노동계가 그토록 반대한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조항'은 야당이 아닌 정부와 여당에서 뜬금없이 장착하였으니 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중대재해법' 처리 과정만 보더라도 상임위와 법사소위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좋은 취지'가 살려지는 것이 아니라, 각 정부 부처의 이해관계와 재계 입김이 작용하여 '짜깁기' 가 되어갔다. 민생과는 동떨어진 '공수처법' 개정에는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속전속결, 일사천리로 임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본격적인 첫 입법 과정을 지켜보며 걱정이 앞선다. 결국 의회를 압도하는 거대정당이 다수 의석을 점한다고 개혁 입법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교훈이다.

무엇보다 안전한 노동권을 지켜내고, 기업과 정부에게 산업 및 시민 재해의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는 정치 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입법 독주와 개혁법안 퇴행을 막을 수 있는 견제와 균형 장치로서 제3의 원내 교섭 정당의 존재도 중요할 것이다.
   
40명 죽어도 벌금 2천만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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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단식에도... 눈물 쏟은 김용균 어머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된 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 ⓒ 공동취재사진

 
2008년, 40명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화재에 대한 경영책임자에게 법원이 내린 벌금은 2천만 원, 노동자 생명은 50만 원에 불과하다. 고 김용균 씨의 사망 이후에도 매년 2천여 건이 넘는 산재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OECD 산재 사망 1위 국가이며 평균 5배 이상 높다.

'중대재해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였고,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3년간 유예하였다. 2020년 한 해 중대재해의 85%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였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마저도 1905일 뒤에야 시행된다.

세계은행(WB)은 한국을 6년 연속 '기업하기 좋은 나라' 세계 5위권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기 딱 좋은 나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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