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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0만명 막국숫집 사장 "음식에 진심을 담으세요"

[인터뷰] 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저자

등록 2021.01.12 14:10수정 2021.01.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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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의 저자인 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왼쪽)와 남편 유수창 대표. ⓒ 김진석


고기리막국수(옛 고기리장원막국수)는 자타 공인 '대박 식당'이다. 지난해 1년 매출이 30억 원을 넘었다. 한 해 누적 손님은 30만 명이 넘는다. 코로나 여파에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50%가량 늘었다. 하루 평균 매출은 1000만 원, 최고치는 1500만 원에 육박했다. 한 그릇에 8000원짜리 막국수를 팔아 쌓아올린 기록이다.

막국수를 팔아 이 정도의 매출을 올리려면 어느 정도 장사가 잘 돼야 할까? 하루 평균 1000그릇이 팔린다니, 10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1시간에 100그릇이 나간 셈이다. 테이블 회전율(만석이 1회전)로 따지면 하루 30회전이 넘는 날도 있다. 1시간에 3차례 만석을 10시간 동안 지속한 것이다.

고기리막국수는 얄미울 정도로 장사를 잘 하고, 장사가 잘 되는 가게다. 오래 전부터 '고기리 30회전의 비밀'은 음식점 사장님들 사이에서 벤치마킹 1순위다. 유수창·김윤정 부부가 운영하는 고기리막국수. 남편은 음식을 만드는 주방을 책임지고, 아내는 홀과 카운터 등 접객을 책임진다. 시행착오 끝에 각자 잘 하는 영역을 분담한 결과다.

이 가게는 처음부터 잘 된 것도, 갑자기 성공한 것도 아니다. 9년 전, 가진 돈이 별로 없어 후미진 시골동네 볕 좋은 곳에 처음 막국숫집을 차렸을 때는 공 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초창기에는 손님이 없어 남은 메밀 반죽을 집에 가져가 아이들 쿠키를 만들어줬고, 남은 수육으로 끼니를 대신 하기도 했다. "막국수로는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없겠다"며 매일 후회했던 나날이었다.

지금은 하루 1000그릇 이상 팔지만, 하루종일 한 그릇도 못 팔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지금의 성공한 고기리막국수로 거듭난 비결은 무엇일까? 김윤정 대표는 '집중'과 '진심'을 꼽는다. 손님에게 깨달음을 얻은 뒤 막국수에 무섭도록 집중했고,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한 결과라는 것이다.

"사소하고 지루한 것의 반복으로 진심을 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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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는 "메밀을 빻고 반죽해서 국수를 내리는 일은 제일 중요한 작업이다. 반복되는 이 동작이 주방의 일과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 김진석


"요리사는 단순한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매일 양파와 마늘을 까고, 씻은 대파의 물기를 뺍니다. 무채도 썰어두어야 하고요. 소금, 고춧가루 같은 가루류는 죽 늘어놓고 계량하지요. 육수는 몇 시간 동안 불 조절을 하며 끓입니다. 식히고 다시 끓이기를 반복하는 동안 위에 뜨는 기름을 걷어내는 일도 계속 됩니다.

돼지고기 수육은 여러 차례 나누어 삶습니다. 한 번에 다 삶아놓으면 맛이 없습니다. 절대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30분은 뜸을 들여야 속까지 촉촉한 수육이 완성됩니다. 곁들여 나갈 마늘과 고추는 얇게 저며 두고, 메주콩으로 직접 만든 쌈장도 준비합니다.


메밀을 빻고 반죽해서 국수를 내리는 일은 제일 중요한 작업입니다. 반복되는 이 동작이 주방의 일과 대부분을 차지하지요. 종일 면을 뽑고, 삶고, 헹구고, 남은 물기를 꼭 짜서 모양을 냅니다.

중간중간 산처럼 쌓이는 설거지는 기본입니다. 마감을 한 뒤에는 면 삶는 커다란 솥을 구석구석 닦습니다. 또한 반죽 기계의 나사를 다 풀어 분해한 다음 새것처럼 세척합니다. 전날 쓰던 반죽이 롤러에 끼어 있으면 위생과 맛에 미세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손님들이 기계를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갈 법도 합니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매일 이 작업을 해낸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과 싸워야 하는 일이에요. 이 작업까지 마쳐야 주방의 하루가 비로소 끝이 납니다."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235~2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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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막국수,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제육 등 고기리막국수의 음식들. ⓒ 김진석


김 대표가 말한 '진심'은 "사소하고 지루한 것의 반복으로 진심을 담는 일"이다. 9년 동안 매일 반죽 기계의 나사를 다 풀어 분해한 다음 세척하는 일처럼 그가 말한 '진심'은 말이 아닌 구체적인 일상으로 나타난다. 가장 어려운 일은 나태해지려는 자신과의 싸움이란다.

2012년 5월에 문을 연 뒤 6년 동안 7000원이었던 막국수 값은 지난 2018년 딱 한 차례 1000원을 올렸다. 값을 올리려고 할 때마다 먼 곳을 찾아와주는 손님들이 눈에 밟혀, 그 감사한 발걸음에 보답하고자 '동결'로 결론을 낸 것이다. 온전한 한 그릇인 사리 가격을 절반인 4000원만 받는 것도, 아기국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잃어버린 손님의 신발은 주인 책임이라는 태도도, 고기리막국수의 진심을 담는 일이다.

두 달 전쯤 김윤정 대표가 고기리막국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제목은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다산북스). 그는 책 서문에서 "2012년, 제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의 스산했던 밑바닥 경험부터 꺼내놨다. 압구정동에서 잘 나가던 240석 규모의 이자카야를 '말아먹고', 친한 친구에게 빌려준 돈 3000만 원과 맡겼던 고액의 결혼 예물까지 사기당했던 일들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타킹이 찢어지는지도 모른 채 울었던 그때부터 고기리막국수는 시작됐다.

김윤정 대표의 책에는 잘 나가는 대박 식당의 노하우나 성공담이 담겨 있지 않다. 이 책에는 음식을 대하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와 '관계'가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고기리막국수의 잔잔한 일상과 소소한 손님들의 에피소드, 사장 부부와 직원들의 이야기가 모두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고기리막국수의 손님과 일하는 직원들이 함께 써내려간 '팬픽'같은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표가 마지막 '감사의 글'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고마움을 표시한 사람만 77명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난달 말과 이달 초 김윤정 대표와 면대면, 비대면으로 고기리막국수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막국수라는 메뉴를 판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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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의 저자인 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 ⓒ 김진석


-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이 책을 펴내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은?

"식당이나 작은 가게를 하시는 분들은 사실 외로워요. 친한 친구를 만나도 관심사가 다르니까 말이 잘 통하지도 않고요. 외롭다는 얘기는 심심하다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가는 이 방향이 맞는지 누굴 붙잡고 시시콜콜하게 다 물어볼 수 없다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흔히 접하는 베스트셀러에 담긴, 세계적인 기업의 성공스토리나 혁신 벤처기업 이야기는 작은 가게에 적용하기 어렵잖아요.

제 자신이 먼 길을 돌아 지금 이곳에 온 것처럼 '마음이 바로 서야 좋은 태도와 자세가 흘러나오고, 그 태도와 자세가 가게 곳곳에 내려앉아 손님에게 가서 닿는 순간, 결국 울림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울림이 손님을 다시 오게 만들고 입소문을 낼 수 있는 동력이라고 믿거든요. 그래야 (내 가게가) 손님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예요. 성공한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마음을 다하라', '진심을 다하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감이 오지 않거든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께 이 책이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드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만 알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임으로써 나눌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개인이 지닌 이익이나 혜택을 사회에 돌려드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책을 사서 볼 때 늘 감사하거든요. 사실 저희가 혹시 초심을 잃고 흔들릴까봐 항상 옆에 두고 보려고 했던 목적도 있습니다."

- 고기리막국수의 핵심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막 만든 음식을 싸게 팔기는 쉽습니다. 정성을 다한 음식을 비싸게 파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희 국숫집은 막 만들지 않은 음식을 비싸게 팔지 않음으로써 손님에게 좋은 기분을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막국수를 막 만들지 않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손님들이 막, 아무렇게나 편하게 드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지요."
 

- 고기리막국수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무엇인가요.

"막국수라는 메뉴를 판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파스타도 있고, 스테이크도 있는데... 막국수라는 음식이 사람들 머릿속에는 낮은 곳에 있었거든요. 막국숫집을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기리막국수는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존재 이유를 찾았습니다.

남편이 막국수를 좋아합니다. 먹기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직접 만들겠다고 나선 게 지금까지 온 거지요. 남편과는 달리 저는 막국수의 '막'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막말, 막노동처럼 단어 앞에 '막'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속된 말이 되거나 허드렛일이 돼버리니까요. 이렇듯 '막'은 '거친, 품질이 낮은, 닥치는대로 하는, 함부로' 등의 의미로 뒷 단어의 가치를 깎아내립니다.

'막국수'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메밀 속살만으로 만든 냉면과 구별 지어 '막국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의 유래는 분분하지만, 메밀의 겉껍질까지 함께 '막' 갈아서 만들었다는 재료의 특성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갓 내려서 금방 빻아 막국수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 안에 감춰둔 선입견을 털어내게 해준 건 남편이었습니다. 온종일 음식을 만들다가 밤이 돼 손님이 다 가고 나면 아침에 빳빳했던 남편의 조리복은 물기에 젖어 무거워집니다. 남편의 막국수는 맛도 모양도 거칠거나 조악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막국수를 막 만드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남편을 보면 막국수라는 이름과 달리 잘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느껴집니다.

그 전에는 다른 사람이 내려주는 정의가 중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막국수를 숨기고, 막국수 파는 저를 숨겼습니다. 우리의 막국수를 막 만들지 않은 막국수로 재정의하고 나자, 놀랍게도 우리만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중요한 건 다른 집과의 경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희가 정의 내린 대로 만드는 게 더 가치있고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초창기엔 장사가 안돼 떡국도 끓이고, 문어도 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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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의 저자인 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와 남편 유수창 대표가 옛 고기리막국수 가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진석


- 초창기 어려움을 겪을 때는 '왜 막국숫집을 차렸을까' 후회하지 않았나요.

"많이 후회했죠. 막국수로는 이 어려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매일 후회했어요. 어떻게든 나라도 애들을 먹여 살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빵 만드는 방법을 배워 메밀 반죽으로 쿠키를 굽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손님이 별로 없어서 만들어놓은 메밀 반죽이 많이 남았었거든요." 

- 지금의 고기리막국수를 보면 실패의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시행착오와 실패가 쌓여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일텐데요.

"막국숫집을 처음 열었을 때는 (손님이 없어 불안하다보니까) 떡국도 끓였고, 문어도 삶았습니다. 떡국은 안 팔았지만, 문어는 팔기도 했습니다. 막국수를 내리다가 문어를 자르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초창기에 찾아오는 손님은 부모님과 부모님 친구분들이었어요.

한겨울이었던 어느 날, 차가운 물막국수를 드시러 온 손님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80가지도 넘는 메뉴를 냈던 이자카야의 쓰라린 실패도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굳게 마음 먹었습니다. 우리는 막국숫집이라고. 그 이후로 막국수에만 집중했습니다. 차츰 (막국수) 품질이 좋아졌고, 손님들도 그 마음을 알아주셨어요.

조금씩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했습니다. 진심을 다하다 보니 매출보다는 막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허기만 채우려고 식당을 찾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한다는 건 배고픔을 채우는 이상의 의미잖아요."

- 고기리막국수를 가장 많이 찾아온 단골 손님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오셨나요.

"70차례 넘게 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손님이 아니라 그냥 본인 집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오시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직원들하고 인사하고 저희는 막국수 내어드리고. 퇴근하고 집에 오는 가족 밥상 차리듯이요. <식객>의 허영만 선생님은 어느 날 하루에 두 번 오신 적도 있습니다. 점심 때 막국수를 드시고 집에 가셨다가 저녁에 또 오셨지요."

- 지난해 자영업하는 분들은 다들 힘들었습니다. 고기리막국수도 코로나로 인한 영향을 받았을텐데요.

"새집으로 이사 오고 한 달 만에 코로나가 발생해 심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당연히 영향을 받았지만 그래도 손님들이 고맙게도 찾아와주십니다. '이 가게는 위생과 안전에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둘 거고,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고민해줄 거'라는 오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헤쳐나가는 길은 결국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식당이든 제품이든 평소에 신뢰를 쌓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알게 모르게 스며든 작은 노력과 태도가 손님들과 탄탄한 신뢰 관계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해왔던 위생수칙을 더 강화하면서 공용 젓가락통 대신 일회용 젓가락, 일회용 행주로 바꿨습니다. 덕분에 손님들은 믿을 수 있는 식당, 원래 잘 알던 곳, 이미 친숙한 느낌인 저희 국숫집을 계속 찾아와 주셨습니다. 테이블 수를 줄이는 대신 손님의 안전을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책 에필로그에 실명 인물만 77명 등장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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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가 펴낸 책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 다산북스


- 책 에필로그 '감사의 말'에 보면 이 책의 흐름을 잡아준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작가님께 감사한다고 했는데, 사연이 궁금합니다.  

"언젠가 우연히 글쓰기 책을 선물 받았는데, 제가 갖고 있던 고종석, 유시민, 이외수, 강준만, 강원국, 우치다 다쓰루 등의 작가가 펴낸 글쓰기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김봉현의 글쓰기 랩>입니다.

저는 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라서 크게 생각을 안 했는데, 서문을 보고 놀랐어요. 어디에서도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이 없다는 걸 서문에 밝혔거든요. 그 대신, 글을 쓰고 또 쓰면서 글쓰기에 관한 모든 것을 직접 깨우쳤다고 했죠. 그게 자랑은 아니지만, 창피한 일도 아니라고 했어요. 

기성의 모든 것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생겨난 힙합이라는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글쓰기의 문법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게 제겐 너무 놀라웠어요. 서문에서 이어진 다음 글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이유'였고, 이 대목이 제 가슴에 와닿았어요.

'사람의 내면은 입으로 뱉으면 말이 되고 활자로 치면 글이 된다. 자기 내면을 글로 잘 정돈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소통과 교감을 훌륭하게 한다는 뜻일 것이다... 더 나아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곧 나의 삶을 잘 살고 싶다는 마음과 같다고 말한다면 비약일까. 비약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라고 믿는다.'

제가 책을 쓰고 싶은 이유는 고기리막국수를 가꿔온 우리의 생각, 철학 결국 내면을 잘 정돈해서 세상과 교류하고 싶었던 거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지요. 그래서 이 분을 무조건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봉현 작가님께 '글은 공감만으로 그치는 것보다는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 프롤로그는 실패담으로 시작하고, 에필로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어떤 심정으로 썼습니까.

"출판사에서 너무 개인적인 이름들을 많이 열거한 에필로그라고 우려했어요. 그런데 저와 남편은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고, 꼭 넣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출판사가 기꺼이 허락해주신 덕분에 가장 많은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 에필로그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제 책의 에필로그를 읽다가 잠이 듭니다. 그때 그 분이 아니었다면. 그때 그 분을 못 만났더라면... 이렇게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고기리막국수는 사람들 총합의 결과물이에요. 저희가 실력이 뛰어나서 잘했다면 처음부터 안 망하고 잘했겠죠. 이 고마운 분들에게 어떻게 보답할까? 매일 머리를 쥐어짜내도 결론은 하나입니다. 오로지 막국수.

프롤로그는 가장 마지막에 썼어요. 프롤로그를 쓰면서, 같은 업종에 있는 동료들 생각이 나서 정말 힘들었어요.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심을 다하는 많은 사장님들이 계십니다. 가끔은 진심을 다하다 보면 이게 될까? 진심을 다하니까 손해 보는 것 같고, 옆집은 진심을 다하지 않는데 잘 되는 것 같고... 이런 흔들림이 올 때 제가 앞서 걸어본 사람으로서 진심의 힘이 위기일수록 더 빛을 발한다는 걸 꼭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제가 덜 힘들어서 늘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 지난 9년 동안 고기리막국수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키워드 10개를 꼽는다면?

"반복, 맛, 직원, 손님, (사람들과) 나누기, 더하기보다는 빼기(선택과 집중), 진심, 존재 이유, 신뢰와 믿음."

김윤정 대표는 처음 국숫집을 열었을 때 손님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였다고 고백한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인 강원국 작가는 '추천의 글'을 통해 "아마도 사람들은 막국수를 먹으러 이 집에 오는 게 아닐지 모릅니다. 이 집 주인장의 마음을 느끼러 오는 게 아닐까요?"라고 되물었다.

김 대표의 하루 일과는 막국수 생각으로 시작해 막국수 생각으로 끝난다. 사실상 공동 저자라 할 수 있는 남편 유수창 대표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지난해 말 다큐멘터리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을 다시 보면서, 일본의 스시 장인 오노 지로의 이 말을 곱씹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야. 내가 선택한 것을 좋아하도록 해야 한다. 내 앞에 주어진 것을 좋아하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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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의 저자인 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가 이한기 <오마이뉴스>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진석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 한 번 오면 단골이 되는 고기리막국수의 비결

김윤정 (지은이),
다산북스, 2020


#고기리막국수 #막국수 #고기리 #진심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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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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