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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교실에서 치러진 이상한 졸업식

졸업과 새학년 준비... 아쉬움과 떨림 속 서로를 애틋하게 기억하는 마음 간직했으면

등록 2021.01.12 17:36수정 2021.01.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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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 12일 오늘은 졸업식이다. 그러나 학교 안에는 한 명의 아이들도 없다. 담임선생님들은 빈 교실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며 졸업식을 했다. 교장선생님 말씀도 빛나는 졸업장도, 각종 상장도 그리고 내빈분들의 축하 말씀도 미리 녹화해서 모두 온라인으로 틀어주었다.

졸업식 때마다 찾아오던 꽃샘추위는 올해도 어김없이 왔지만, 출근길을 막던 꽃다발 장수들도, 아이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동원된 가족의 모습도 올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 자랑스러운 얼굴로 "선생님, 우리 사진 찍어요"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어느 때보다 차려입고 뿌듯한 표정으로 웃던 담임선생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내가 알던 졸업식 모습은 사라지고 그저 그렇게 하나의 통과 의식으로 졸업식이 있었을 뿐이었다. 분명 졸업식은 졸업식인데 졸업식이라고 할 수 없는 코로나19가 불러온 이상한 졸업식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교무실로 들어서는데 선생님 몇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 3학년 교실 가보셨어요?"
"네. 담임선생님이 졸업식 진행하고 있던데요."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에 마음이… 제가 처음 3학년 담임일 때가 생각났어요. 아이들이 졸업하는 건데, 제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아이들 앞에서 마지막 말을 하는데 울고 말았잖아요."
"선생님마다 그런 모습 하나 가슴에 품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게 교사하는 힘이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올해 ○○ 선생님은 아이들 첫 졸업시키는 건데 이렇게 보내서 안 됐어요. 2학년 때부터 각종 문제를 일으켜 ○○ 선생님을 힘들게 한 아이들이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이렇게 보내니..."
"올해 코로나19로 아이들이나 선생님이나 많은 걸 잃었지만, 오늘 졸업식 모습이 제일 마음 아프네요."


자연스레 각자 졸업식 추억을 이야기하며 행복해했지만, 올해 이상한 졸업식에 대한 씁쓸한 마음은 어쩌지 못했다. 그때 작년에 오신 선생님이 유독 어두운 얼굴로 있었다.


"선생님, 뭐 고민 있어요? 왜 얼굴이..."
"저 올해 2학년 담임을 해야 하는데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선생님, 걱정 마세요. 선생님은 잘할 거예요. 무엇보다 선생님은 아이들 좋아하잖아요. 보면 겁 없이 달려드는 선생님보다는 선생님처럼 겁을 먹고 신중하게 대하는 분들이 아이들 존중하면서 잘하던데요."
"모르겠어요. 밤에 나쁜 꿈도 꿔요."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사립이다 보니 새 학년도 담임 및 업무 배정을 1월 초에 발표한다. 그래서 지금 학교는 지난 교육 활동 정리와 올해 교육 활동 준비가 동시에 이루어져 정신이 없다. 한쪽에서는 이상한 졸업식에 대한 감상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새 학기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진행돼 어수선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졸업식에 대한 감상도, 신학기 준비에 대한 떨림도 아련해졌다. 졸업식이 와도, 새 학년이 돼서 새 아이들을 맞이해도 매년 반복되는 행사고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찌든(?) 교사인 나도 올해만큼은 초임 교사의 걱정이 다르게 다가왔다. 

자연스레 "40여 명이 넘게 모인 교실에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하나?" "어디를 쳐다봐야 하나?" "내가 아이들을 나쁘게 만들지는 않을까?" 등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걱정하던 내 첫 모습을 떠올렸다.
  
그 당시 나의 하루는 힘들고, 그만큼 신나는 모험 같은 날이었다. 모험을 계속하며 익숙해질 즈음 맞이한 아이들 졸업은 그 자체로 나의 자랑이고 보람이었다. 졸업식 날 아이들에게 마지막 말을 하기 위해 아이들을 보는 순간, 아이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순간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아이들도 따라 울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웃음이 난다.

새 학기 담임을 잘할까 걱정하는 선생님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고 싶어 부끄럽지만, 초임 시절 내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적어 놓은 글을 선생님에게 보냈다.
  
               초심(初心)

하얀 눈
무서워
슬며시
고개 숙이던 시절

한 줌 바람에
흩어지는 소리마저 담으려는
마음 두려워
먼 하늘 쳐다보던 시절

차마
차마
바로 보지 못하고
떨리던 가슴으로
흔들리던 시절

또 하루가 멀어져 간다 읊조리다...
아련한 그 떨림 속
기억

 
그동안의 방역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 같았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속도가 조금씩 주춤해지는 것 같아 다행이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자랑스러운 마음과 선생님의 자부심과 아쉬움 그리고 자녀를 졸업을 보는 부모님의 대견한 마음은 다시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졸업식 #새학기 준비 #기억 #코로나19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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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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