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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칼처럼 몸에 꽂힌다"... 벼랑 끝 홈리스

[코로나 + 한파... 노숙인들 어쩌나] 인권위에 진정서 낸 두 노숙인을 만나다

등록 2021.01.18 07:06수정 2021.01.1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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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리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거리홈리스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 유성호


밥 먹을 곳은 줄었고, 몸 녹일 곳은 사라졌다. 코로나와 기록적인 한파가 겹친 시기, 거리 홈리스가 처한 현실이다.

"이건 뭐 그냥 죽으라는 거죠. 한 이틀 전인가 두 명이 죽었어요. 추워서 죽었는지 코로나 때문인지 배고파서 죽었는지 이유는 모르죠. 그런데 예전보다 사람들이 많이 죽어요. 들리는 이야기들이 그래요. 얼마 전에는 서울역 파출소 앞에서 한 명 죽었다고 하고... 거리에 있던 사람이 난간에서 죽었다고 하고. 이 추운 날 밥은 못 먹고 갈 곳은 없고... 그러다 죽는 거 아니겠어요. 그냥 버려진 사람들이죠, 우리는."

12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강준금(가명·50대)씨가 말했다. 거리 생활한 지 5년 된 강씨는 오전 4시경 일어난다. 그의 잠자리는 서울역 지하 중앙통로다. 간단히 손을 비벼 얼굴을 데운 그는 '아침 배식을 받으러 가야지' 생각하다 멈칫했다. 코로나 이후 홈리스에게 밥을 제공했던 민간 급식시설 대부분이 감염을 염려해 배식을 줄이거나 중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강씨가 밥을 먹는 건 운이 좋을 때고,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그는 "2020년 죽지 않고 산 게 대단하다"라면서 "하루에 겨우 한 끼 먹는 게 보통이고 두 끼 먹기도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밥 먹는 건 운수 좋은 날

서울 중구 서소문 공원에서 노숙하는 오훈구(가명·60대)씨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는 거리를 '전쟁터'라고 칭했다. 밥 먹을 곳이 줄어든 이후, 빵 한 조각을 훔쳐먹느라 싸우는 사람들을 많아졌다는 것이다.

오씨는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갈수록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면서 "아침을 주는 곳이 확 줄어서 사람들이 한 곳에 몰린다, 새벽 4시에 가서 줄을 서도 내 앞에서 배급이 끊길 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아침을 포기했다"라고 덧붙였다.

강씨와 오씨의 말처럼 지난 2020년 11월 이후 코로나 3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며 민간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노숙인복지법에 따라 설치·운영되는 서울 내 민간 급식시설 2곳은 평소 일주일에 각각 200명·1천 명 노숙인에게 급식을 지원했지만, 코로나19와 추위로 식수를 대폭 줄였다.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무료급식을 했던 시설은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2020년 12월 초 운영을 중단했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홈리스 급식지원기관은 출입을 엄격히 하기 시작했다.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장인 '따스한채움터'는 지난 2020년 9월 14일부터 홈리스에게 무선인식카드(RFID) 형식의 '회원증'을 발행했다. 그동안 수기로 출입 명부를 작성하던 홈리스는 서울시의 노숙인 데이터를 통해 노숙 이력을 확인한 후에 받을 수 있는 '회원증'을 지녀야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서울에서 밥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점점 외곽으로 향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무료급식사업을 하는 사회복지시설 '안나의 집'은 이용자의 32.7%가 서울에서 왔다는 결과를 지난 2020년 9월 내놓기도 했다.

기록적 한파인데... 쉼터가 없다
   

코로나와 기록적인 한파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거리홈리스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 유성호

   

코로나와 기록적인 한파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거리홈리스가 종이 상자로 만든 거처가 눈에 젖자 걱정하고 있다. ⓒ 유성호

 

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리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거리홈리스가 자신의 가방과 소지품이 눈에 젖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 유성호

 

코로나19와 한파 ‘이중고’ 호소하는 거리홈리스 ⓒ 유성호

 
거리 홈리스를 위협하는 건 줄어든 급식뿐만이 아니다. 추위에 간신히 몸을 녹일 수 있는 쉼터도 줄어 들었다. 코로나 때문이다. 지난주 한파에 폭설이 겹치면서 서울의 아침 체감온도는 최저 영하 25도 정도까지 떨어졌다.

"며칠 동안 계속 추웠잖아요. 그때마다 '다음 날 눈 뜰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잤어요. 목숨이 질겨서 산 거지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아침에 일어나는데 어지럽더라고요. 그대로 쓰러질 뻔했지 뭐. 다리가 떨려 잠깐 주저앉았다가 일어났어요. 아직도 머리가 띵해요."

서울 중구 서소문공원에서 침낭 하나로 버틴 오씨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지난 주(6~8일) 강씨와 오씨 중 따뜻한 잠자리를 찾은 사람은 없었다. 오씨는 서소문공원에서 강씨는 서울역 지하에서 간신히 눈을 피했다. 강씨는 "바람이 살을 파고든다는 게 뭔지 아느냐"라면서 "눈이 내리는데 그게 온몸을 칼처럼 쑤시는 거 같다, 그냥 몸 곳곳이 다 아프다"라고 설명했다.

쉼터 등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거리 홈리스의 숙박을 제한했다. 인원 제한이 없던 곳에 입장 정원이 생기기도 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지원시설인 희망지원센터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2020년 12월 한 홈리스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뒤 낮 시간에 선착순 15명만 출입을 허용했다. 취침 가능 인원도 49명에서 35명으로 줄였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브릿지종합센터는 수용 인원(64명)의 절반만 받고 있다. 서울역 지하보도에 있는 '응급 대피소'도 방역을 이유로 수용 인원을 기존 120명에서 60명으로 줄였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일부 홈리스 생활시설에서는 코로나 방역조치를 이유로 출퇴근하는 홈리스에게 퇴소를 종용하거나 신규입소를 금지하기도 한다. 영등포구에서 운영하는 홈리스 대피시설인 응급구호방도 화장실과 샤워실이 얼어 씻지도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위를 피해 거리 홈리스가 많이 찾는 서울역 3층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의자를 치웠다.

"희망지원센터가 아니라도 민간에서 운영하는 쉼터가 있었거든요. 보통 12월부터 한 3~4개월은 이 쉼터를 이용하며 추위를 피했는데, 지금은 그걸 못 하죠. 코로나로 문 연 곳도 많지 않아요. 결국 하루 잘 곳도 없고 그런 상황이에요."

오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강씨도 "제도가 너무하다"라고 하소연했다. "너무 추워서 임시주거비 지원을 신청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지금 신청이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라는 강씨는 "임시주거가 가장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 겨울"이라고 설명했다.

하다하다... 인권위에 진정서를 내다

그들이 말한 임시주거비는 '서울시 노숙인 임시주거비 지원사업'이다. 서울시는 노숙인복지법에 따라 '노숙인 등'에게 한시적으로 염가거처(고시원·여인숙 등 저렴한 비적정 주거공간)의 주거비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홈리스행동은 "서울시가 회계연도에 맞춘다며 12월에 (임시주거비 지원) 사업을 종료해 1월까지 홈리스의 임시주거 지원에 공백이 발생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1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7일 두 명의 거리 홈리스가 임시주거가 필요해 지원사업을 알아봤는데, 1월 말까지 회계 때문에 지원이 어렵다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홈리스가 가장 추위를 피해 머물곳이 필요한 12월, 1월에 서울시가 이들을 거리에 방치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강씨와 오씨는 '홈리스를 살려달라'고 외쳤다. 홈리스행동이 이들을 지원했다. 강씨와 오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홈리스의 사례를 모아 11일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진정서에는 인권위가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서울시에 ▲ 노숙인을 위한 임시거소 또는 임시주거비를 지원하고 ▲ 긴급복지지원사업의 기간 제한 요건(최초 노숙일로부터 6개월 미만)을 폐지하고 ▲ 최저주거기준을 개정하도록 제도 개선을 권고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더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냥 죽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개밥 같은 거 먹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도 되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아내와 이혼하고 염전에서 노예처럼 일도 해봤고, 음식 배달도 해봤고, 살려고 다 해봤어요. 돌고 돌아 거리로 왔습니다. 거리에서 산다고 우리가 죽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오씨가 말했다.  

코로나와 기록적인 한파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 처마 밑에서 거리홈리스들이 눈을 피해 모여 있다. ⓒ 유성호

 

코로나와 기록적인 한파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철 입구 처마 밑에서 거리홈리스가 침낭을 덮고 간신히 몸을 녹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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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리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거리홈리스들이 종이 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다. ⓒ 유성호

#홈리스 #코로나 #노숙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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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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