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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찍고도 홍보 못 하는 부여, 이런 속사정이

궁남지에서 '철인왕후' 촬영했지만 코로나 우려와 예산 문제로 홍보 자제... 지자체의 딜레마

등록 2021.01.14 11:11수정 2021.01.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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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 가을 풍경 국화 축제가 열렸던 궁남지 풍경. ⓒ 오창경

 
내가 사극을 더 열심히 보는 건 사극 세트장이 있는 동네, 부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극이 방송되면 일단 우리 동네 '서동요 세트장'에서 찍은 것인지 유심히 살펴본다. 아는 만큼 관심의 척도도 높아지는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 연예인들을 태운 버스와 방송 촬영 장비를 실은 차량들을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왠지 시대를 앞서가는 포스를 풍기는 차량들이 자주 지나다니면, 시골 마을이 아니라 감성이 가득한 전원주택 마을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늦은 저녁에 세트장 앞을 지나가다가 대낮 같이 밝은 조명을 높이 매달고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존감이 한순간에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기분이 느껴진다.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광경을 시골에서 자주 보고 있다는 특권을 누리는 기분이랄까.

요즘 뜨고 있는 사극 <철인왕후>를 보다가 내가 살고 있는 부여의 대표 관광지인 궁남지에서 주요 장면을 찍은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저런 장면을 찍는 동안 부여 사람인 내가, 나름 부여의 소식통이라고 자부했던 내가, 이 소식을 몰랐단 말인가.

지난 여름, 그 전부터 촬영을 하고 있었다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비밀 유지 서약서라도 쓴 것처럼 소문도 없이 궁남지에서 드라마를 촬영했나보다. 

<철인왕후>에서 발견한 익숙한 그곳 
 

지난주 방송된 철인왕후 장면 궁남지 포룡정에서 촬영된 철인왕후의 주요 장면. 이 장면의 배경인 장소를 촬영협조 장소로 넣기 위해선 지자체의 비용이 필요하다. ⓒ 오창경

 
부여 SNS 서포터즈 단장(김은석)에게 궁남지에서 <철인왕후>를 촬영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촬영을 비공개로 했고 주로 사람들이 없는 새벽에 촬영했단다. 또, 제작사에서 SNS 홍보를 달가워하지 않아서 알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철인왕후>의 궁남지 촬영 소식은, 그래서 몰랐던 거였다. 그때는 워낙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신비주의 마케팅을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 무렵에 우리 동네에서 <철인왕후>라는 드라마 대본을 앞 유리에 붙이고 지나가던 관광버스를 본 적이 있었다. 서동요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줄 알았는데 주요 배경은 궁남지 포룡정이었다. 2006년에 <서동요> 촬영을 할 때는 지역 주민들에게 촬영하는 것을 공개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인지 방송사의 경쟁 때문인지 도통 촬영장을 개방하지 않았다. 
 
<철인왕후>는 신혜선 배우가 호수에 빠지고 오늘날의 최진혁 배우가 수영장에 빠지면서 두 영혼이 바뀌는 스토리였다. 스토리의 전개상 주인공이 호수에 빠지는 장소가 자주 등장한다. 바로 그 호수가 부여 궁남지이고, 그 옆의 정자가 포룡정이다.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연못가, 살짝 연꽃이 보이는 풍경 등 익숙하고 아름다운 배경이 주인공들의 찰떡같은 연기와 잘 어울린다. 
 
<철인왕후>는 정형화된 사극의 공식을 벗어버리고 현대의 B급 감성을 버무린 작품이다. 조선의 왕조를 다루고 있지만, 불편함보다는 깨알 재미에 웃음이 나는 사극이다. 전국의 유림들과 역사학자들의 시각으로는 못마땅하겠지만, '진정성 있는 재현'보다는 소재의 확장성과 다양성이 요즘 사극의 대세다. 이 드라마는 어느 세대들에게도 통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신혜선 배우가 빠져서 영혼 가출 소동이 일어나는 호수인 궁남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는 게 깨알 재미이기도 했다. 극중 철종으로 등장하는 김정현 배우와 신혜선 배우가 티격태격 사랑을 키워가는 곳도 궁남지 안에 섬처럼 떠 있는 정자인 포룡정이다.

<서동요>로 대박쳤던 부여가 조용한 이유  

내가 사극을 즐겨 보는 건 내가 살고 있는 부여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한테 익숙한 장소를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 본다는 것은 뭔가 우쭐한 일이다. 궁남지는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스크린이나 개인 블로그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

백제가 남긴 문화적 환경과 유적 중에 하나인 궁남지는 부여군에서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서 관리를 하는 곳이다. 해마다 연꽃을 심고 가꾸는 데, 공을 들이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더구나 인기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면 관광객 유치는 저절로 되기 때문에 지자체마다 세트장을 짓고 드라마를 유치해, 유명 관광지를 등장시키려고 애를 쓴다. 이미 부여는 2006년 드라마 <서동요>를 찍으면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철인왕후>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당연히 촬영협조 '부여 궁남지', '서동요 세트장' 이런 짤막한 한 줄 설명이 나올 줄 알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철인왕후>의 시청율도 상승하고 있었지만 관련 문구는 나오지 않았다. 왜 그럴까? 궁금해서 부여군청 문화관광과 강순자 팀장에게 문의를 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부여 궁남지 촬영협조 문구를 한 줄을 넣으려면 우리가 드라마 제작사에 비용을 지불해야 해요. 예산도 그렇지만 지금 코로나 시기라서 그걸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성흥산 사랑나무도 적극 홍보를 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코로나 시기라서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저희가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거든요."

코로나 딜레마였다. 우리 지자체가 그런 딜레마를 안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드라마 제작사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외였다. 부여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 그 장소가 백제시대부터 유서 깊은 궁의 남쪽에 있는 궁남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시청자들은 그 배경이 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수 있다. 

이를 알리기 위해서 지자체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개인적으론 뒷맛이 씁쓸한 거래 같다. 어쩌면 코로나 딜레마가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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