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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출산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70년대생 엄마가 2000년대생 딸에게] 너의 삶을 당당히 주체적으로 살아

등록 2021.01.24 12:00수정 2021.0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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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에게.

딸, 오늘도 안녕? 2년 전쯤 후원하는 마음으로 3년짜리 시사잡지를 결제했을 때, 중학생인 네가 오다가다 몇 페이지라도 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 과연 중2가 되면서는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읽더구나. 그러면서 생각의 폭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친구들을 만들지 않고 유튜브로 필요한 정보를 얻는 10대인 네가 혹시 편협한 사고에 빠지지는 않을까. 어릴 적 엄마를 많이 닮은 네가 엄마처럼 나무에만 집중하느라 숲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엄마는 네가 너와 너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 

요즘 너는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접했는지, 출근 준비로 바쁜 엄마와의 아침 식탁 머리에서 여성 문제를 다룬 이슈에 대해 침을 튀기며 얘기를 하곤 했지. 충분히 이야기를 듣기에도, 정리되지 않은 엄마의 생각을 전달하기에도 출근 시간은 너무 빠듯한 시간이지. 그래서 엄마가 요즘 읽은 책을 보며 든 고민이나 생각을 얘기하려고 해. 너의 생각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질문이 생긴 두 권의 책을 읽었어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 - 내 삶을 취사선택하는 딩크 라이프. 도란 지음. ⓒ 지콜론북

 
엄마가 최근 읽은 첫 책은, 도란 작가님의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란 책이야. 딩크(DINK) 이야기를 다룬 책이란다. 딩크(Double Income No Kids)는 '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뜻하는 말이란다. 도란 작가님은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선택하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야"라고 말씀하신다는구나.

엄마는 이 말에 깜짝 놀랐어. 출산이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엄마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거든. 엄마는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어. 그래서 몇 명을 낳을지만 고민했지, 낳을지 말지는 고민의 대상인 적이 없었지. 왜 엄마는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두 번째 책은 게르드 브란튼 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이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엄마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 이 책은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이갈리아라는 가상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란다. 남성과 여성을 칭하는 새 용어부터 정립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성 역할을 완벽하게 바꾸어 전개되기 때문에 읽다가 깜빡 딴 생각을 하면 내용에 대한 이해가 산으로 가게 되는 책이야.

읽으면서 그래, 나는 움(wom,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지칭하는 새 용어)이야. 이갈리아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라는 의식을 끊임없이 환기해 주어야 올바로 이해가 되는. 왜 엄마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정신줄을 잡아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지은이). ⓒ 황금가지

 
두 책을 읽고 엄마가 가졌던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어. 왜 한 번도 출산 여부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는지, 성역할이 뒤바뀐 사회를 들여다보며 왜 엄마는 헷갈렸던 것인지. 그래서 엄마가 가진 질문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단다.

첫 번째 이유는, 주체적인 여성의 삶에 대한 엄마 스스로의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어. 물론 엄마는 네 나이 때부터 장래의 꿈이 뚜렷했고 나름 그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기 때문에 엄마가 원하는 일을 하며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는 생각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지, '여성으로서의 나'에 관한 것은 아니었거든. 엄마가 여성으로서의 나를 본격적으로 자각했던 시기는 결혼을 하고 너를 낳으면서 시작되었으니, 너무 늦은 거지.

두 번째 이유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교육의 결과 때문이 아닌가 해. 엄마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라왔지만,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들의 가정을 보며 은연중에 남성 위주의 가정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나봐. 엄마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여성으로서 주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누가 알려준 기억이 없어.

물론 '여자의 삶'에 대해서는 엄마의 엄마를 보며 막연하게 그려보기는 했었지만. 외할머니도 그런 가르침을 받아보신 적이 없으셨을 테니 엄마에게 말해주시기 어려웠을 거야. 외할머니는 혼자 힘으로 나름의 위치에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세 자녀를 길러내신 훌륭한 분이시란다. 하지만 어렸을 때 한 번씩 자식들 문제로 속이 상하실 때는, "남편 복 없는 X이, 자식 복은 있겠냐"라고 박복한 팔자 탓을 하셨으니, 은연중에 가정에는 남자가 가장이어야 한다는 사고가 주입되었는지 모르겠어.

외할머니께서 꼭 한 번, 여자인 내게 선택권이 있음을 알려주신 적이 있긴 해.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그랬거든. "떡잎이 누렇거든 아이 생기기 전에 돌아오라"고. 떡잎이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야. 지금 네 아빠 말하는 거지. 그 떡잎, 아직까지 엄마가 잘 키워주고 있으니 칭찬은 엄마가 받을게. ^^
 
세 번째 이유는 두 번째 이유와의 연결선상에서 있어. 그것은 자라오면서 주입된 여성으로서의 성역할 때문인 것 같아. 엄마 어렸을 때, 주변 어른들이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하셨거든. 큰딸에게 누가 밑천을 주겠니. 큰딸은 장성하면 집안 살림을 위해 일찍부터 가정 경제를 돕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라는 뜻이었던 거지.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 때 하마터면 엄마가 꿈꾸던 삶의 방향과 다른 길로 갈 뻔했어. 엄마가 살림 밑천의 역할을 던져버리고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맞섰으니, 홀로 세 자식을 키워야 했던 외할머니가 힘드셨긴 하셨을 거야.
 
여자는 살림 밑천으로서의 딸, 남편을 성실히 외조하는 아내, 자식들을 잘 건사해 훌륭히 키워내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얻었던 것일까?

고민을 결정하는 기준은 너의 행복이길
 

엄마는 네가 고민하는 결정의 제일 첫 조건이 너의 '행복'이길 응원할게. ⓒ Pixabay

 
딸, 네가 보기에 엄마가 그런 역할들을 완벽히 잘 해낼 사람으로 보이니? 당연히 아니지. 그래도 엄마는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했어. 그래서 너무 힘겨웠던 시기도 있었고. 엄마가 힘드니 엄마를 둘러싼 세계가 힘들 수밖에 없었겠지.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라난 아빠도 처음엔 잘 몰랐을 거야. 그래도 산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엄마와 아빠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배우며 실천해 가고 있단다.

덕분에 주말엔 아빠가 요리 담당이잖니. 이젠 아빠가 엄마보다 더 요리를 잘해서 너희들이 아빠 요리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 약간 샘나긴 하지만, 그런 샘은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참아줄 수 있단다.

전생에 원수 지간이었던 사람들이 부부로 다시 만나진다던데, 부모와 자식은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큰딸이었던 엄마에게 온 큰딸인 너는 분명히 전생의 큰 인연이었을 거야. 그래서 엄마는 더욱 너의 삶에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어.

엄마는 네가 너의 삶을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여자'니까, '딸'이니까라는 생각에 너를 얽매이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결혼도, 출산도, 온전히 너와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며 결정할 수 있길 바라. 엄마는 네가 고민하는 결정의 제일 첫 조건이 너의 '행복'이길 응원할게. 엄마도 늦게라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니까.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황금가지, 1996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 - 내 삶을 취사선택하는 딩크 라이프

도란 (지은이),
지콜론북,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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