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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모든 시험에 헌법소원을 내야 합니까

[주장] 국시원, 헌법재판소 결정 존중해 확진자의 응시권 보장해야

등록 2021.01.14 14:57수정 2021.01.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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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한 변호사시험 응시생이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시험장 앞에서 책을 보고 있다. 법무부는 코로나19 확진자도 이날부터 진행되는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게 방침을 변경했다. ⓒ 연합뉴스

 
'아뿔싸. 믿고 기다릴 일이 아니었구나.'

15일 시행 예정인 한의사·치과의사 자격시험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배제' 얘기다. 지난달 29일 나는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5일부터 시행되는 변호사시험에 대한 확진자 응시 금지 공고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과 함께 일단 그 효력을 멈추라는 가처분을 제기했다.

변호사시험이 확진자 응시 금지와 미흡한 방역대책 등의 문제를 품은 채 강행되면 그 자체로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이른바 '해열제 응시자'들로 응시생들과 국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수험생들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례적으로 6일 만에 가처분을 일부인용했다. 물론 법무부가 그 결정 취지를 위배한 것은 큰 문제였다. 우리의 가처분 신청 취지가 그랬듯 헌재의 인용 취지도 '시험을 미루고 확진자가 응시하며 생길 문제 등에 관해 정밀한 방역대책들을 마련한 뒤 시험을 시행할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그 결정 이후 몇 시간 만에 '확진자도 응시 가능'이란 공지 문자만 보내고 정밀한 대책 없이 시험을 그저 강행한 탓에 이번 변호사시험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시험장마다 법전 사용 지침을 달리하며 형평성 논란이 발생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와 별개로 헌재의 위 가처분 일부인용이 '코로나 시국의 수많은 시험에 있어 확진자 등에 관한 기준을 세운 것'임을 새길 필요가 있다. 지난 5일 정세균 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며 "각종 국가시험을 주관하는 부처에서도 이번 헌재 결정의 취지를 감안해 앞으로 예정된 시험의 방역관리 대책을 미리미리 검토해달라"고 주문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적어도 앞으로의 국가 수준의 시험에서만큼은 확진자의 응시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각 분야에서 마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다만 나로서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궁극적인 대안임을 알면서도 당장 13일부터 시행될 교원임용시험이 불안했다. 전직 교사로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된 나로서는, 변호사시험에 관한 헌법소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로스쿨생들만큼 임용시험 준비생들도 마음에 밟혔다. 특히 지난 11월 공립 초중등 교사 임용 1차시험 직전에 67명의 응시생이 확진자가 되어 시험장에 들어서지도 못한 일을 생각하면 변호사시험에 관한 헌재의 결정이 예비교사들에게 상처가 될까 걱정됐다. 


그래서 급한대로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2차 시험 응시자 중 청구인들을 모아 다른 변호사와 함께 임용 2차 시험 공고에서 확진자의 응시가 금지된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과 가처분을 공익소송으로 진행하는 한편, 교육부와 정부에 빠른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추진했다. 다행히 교육부의 응답은 매우 빨랐다. 바로 이틀 뒤 교육부는 확진자의 응시를 허용한다는 긴급발표를 했고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직접 임용시험이 치러질 시험장들을 찾아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국시원은 정밀한 방역대책에 대해 입장 밝혀야

목전의 임용시험이 해결됐으니 이제는 정말 정부의 대책만 믿으면 되겠다 싶었다. 공무원시험에 관해선 이미 정부가 해결책을 발표했고 의료인 자격시험은 15일부터지만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이 "의사시험에 헌재 결정을 적용하겠다"고 했으니 더이상 코로나 탓에 시험 볼 기회를 박탈당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이런. 오늘 지인에게 들은 얘기는 놀라웠다. 국시원이 언급한 위 시험은 '의사 2차 시험'을 말할 뿐 나머지 한의사, 간호사 등의 시험에서 확진자의 응시권에 관한 국시원의 공식발표는 없었다는 거다.

의료계 기사들을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국시원이 확진자의 응시권도 보장한다고 한 것은 25일의 '의사 2차 시험'에 관한 것일 뿐이었다. 15일의 한의사, 치과의사 시험, 22일의 간호사, 약사 시험, 30일의 보조공학사 시험 등 20여 직종의 보건의료인 자격시험에서 확진자의 응시권을 보장한다는 재공고는 국시원 홈페이지에서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한 의료전문매체의 기사에 따르면 현재 해당 시험 응시자 중 확진자가 2명이며 이들에 대해서는 응시 수수료 100% 환불 외에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단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2명은 '코로나 시국의 응시권 기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음에도 '나의 책임이 결코 아닌 전 세계적 감염병 확산'으로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직업 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받게 되는 것이다.

임용시험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우리 대리인단은 "우리가 일일이 모든 시험에 헌법소원 등 법적 구제를 도모해야 하느냐"고 물으며 "정부는 당장 모든 시험에 관해 확진자 등의 응시권을 보장하고 방역대책을 마련하여 재공고하라"고 주장했다.

이후 임용시험의 해결을 지켜보며 우리는 안도했고 이제 모든 시험에서 문제는 해결되리라 믿었다. 그런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국시원을, 정부를 믿고만 있을 게 아니라 임용시험에 이어 예비 한의사, 예비 간호사 등을 청구인으로 한 헌법소원 등도 해야 했던 걸까.

헌법재판소는 단지 변호사시험에 관해서만 확진자의 응시권 박탈이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나아가 해열제 응시 등으로 코로나 위기가 고조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국시원은 확진자의 응시권 보장과 관련한 정밀한 방역대책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지난 11월 응시권을 박탈당한 67명의 임용시험 확진자인 응시생들은 현재 대대적인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국시원이 이대로 수많은 예비의료인의 권리를 박탈한다면 국시원도 비슷한 소송의 피고가 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한의사시험 #간호사시험 #국시원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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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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