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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다닌다고 나아지려나..." 다방 주인이 한탄하는 이유

적막감만 감도는 곳, 경기 최북단 마을 신탄리 마을 기행

등록 2021.01.19 17:50수정 2021.01.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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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신탄리역 경원선 신탄리역. 철도운행이 중단되어 대체운송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 변영숙

 
지난 2020년 10월, 가을의 햇살이 곱게 내려앉은 신탄리역 앞에는 빨간색 대형버스 두 대가 서 있을 뿐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곧 출발할 예정인지 버스 앞문이 열려 있었다. 직행 백마고지역, 연천읍... 노선도를 보니 연천읍과 백마고지를 오가는 버스였다. 슈퍼 앞에 버스 출발을 기다리는 듯한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을 뿐 역 주변은 그야말로 적막감만 감돌았다. 
    
2012년 백마고지역이 개통하기 전까지 경원선 최북단역이었던 신탄리역. 1913년 7월 영업을 개시한 신탄리역은 해방 이후 38선으로 분단되면서 북한에 귀속되어 남쪽의 운행을 멈췄다. 6.25전쟁 이후 신탄리역은 다시 수복되었고 끊어진 철로가 복구되어 1955년부터 경원선 종착역으로 운행이 재개되었다.  

신탄리역 근처에는 지금도 1971년에 세운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글귀와 철도 중단점 안내판이 남아 있다. 비록 실제 철도 중단점은 백마고지역으로 옮겨졌으나  지난 60년 동안 신탄리역은 경원선 철도의 남한 쪽 종착역으로 분단을 상징하는 철도역이었다. 


이용객의 대부분은 인근 부대 군장병들과 고대산 등산객들이었다. 역 주변에는 군복 차림의 앳된 신병들과 휴가병들, 면회 가족들로 북적댔고, 주말이면 인근 고대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주변 상권은 제법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하루 1000명이 넘던 역 이용객은 최근 하루 100명 미만으로 급감한데다 동두천역-연천역 전철화 사업으로 동두천-신탄리역을 운행하던 통근열차의 운행마저 2019년 3월 31일자로 중단되면서 신탄리역과 주변마을에는 쇠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슈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노부부가 철도 대신 운행되는 빨간색 대체운송버스를 타러 버스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노부부와 신탄리역이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신탄리 역사
  

신탄리 역 2012년 백마고지역이 생기기 전까지 경원선 신탄리역은 우리나라 최북단 철도역이었다. 철도 중단점이 세워져 있다. 눈 내린 신탄리역. ⓒ 변영숙

 
신탄리역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역사 내부는 지금도 열차가 운행되는 줄로 착각할 정도로 깨끗했다. 의자와 벽에 걸린 사진들과 시 액자들도 예전 그대로 걸려 있다. 단지 이용객들만 없을 뿐이었다.

텅 빈 역사에 걸린 두루미 사진과 고대산의 풍광이 먼 이국의 땅처럼 생경스러웠다. '돌아서야 할 운명의 변방마을 삼거리에 바람이 분다'로 시작되는 이돈희 시인의 시 '신탄리'가 토해내는 분단의 애통함과 아픔도 타인의 고통으로만 여겨져 순간 죄스러웠다.


신탄리 작은 역사에는 말로만, 머리로만 외쳤던 분단의 아픔이, 한이, 애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부모형제가 있는 '북으로 더 못가고 그렁거리던 통일호 열차가 잡목숲 산을 돌아 남으로' 돌아갈 때 실향의 그리움으로 앓아야 했던 수많은 이산가족들... 그들은 북한의 고향이 그리울 때면 일부러 신탄리역을 찾아 고향땅으로 이어지는 철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까. 고대산에 올라 북녘 하늘을 올려보았을까.

개찰구를 통과해 철로로 나가 보았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철로 위를 통일호 열차가 그르렁대면서 다가오는 것만 같다.

경기도 최북단 마을, 신탄리 
  

눈내린 신탄리마을 경기도 최북단 마을 신탄리의 설경 ⓒ 변영숙

 
신탄리는 과거 강원도 철원군에 속했던 작은 산촌마을이다. 주민들은 고대산의 임산 자원을 목재나 숯으로 가공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경원선 철도가 부설된 이후 한때 숯가공이 번창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 북한에 귀속되었다가 휴전 이후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평양메밀막국수, 평화슈퍼, 금강식당... 3번 국도변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몇 개 되지 않는 상점과 식당의 이름들이 이곳이 서울보다 북한과 가깝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켰다.

다방 간판이 보였다. 어지간한 곳에서는 거의 다 사라진 다방 간판이 반가워 조심스럽게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매장 안에서도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다행히(?) 안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영업하세요?"
"네, 영업해요. 들어오세요."

  

신탄리 쌍화차 철도 운행이 중단된 경원선 신탄리역 주변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도 역주변에 오래된 다방이 남아 있다. ⓒ 변영숙

 
중년을 넘긴 여자가 마지 못해 의자에서 일어섰다. 오래된 낡은 소파와 집기들... 담배와 온갖 것이 뒤섞인 정체불명의 쾌쾌한 냄새가 찐득하게 묻어났다. 연탄 난로 위에서는 양은 물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다시 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 마음과 달리 나를 주저앉힌 건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부대 근처 허름한 다방이 불러일으킨, 흘러간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저 커피 주세요."
"우린 맥심 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혹시 쌍화차도 있나요?"
"계란 넣어줘요?"
"네, 넣어주세요."


생전 처음 계란 쌍화차를 주문했다. 잠시 후 짝도 맞지 않는 잔받침에 받쳐 나온 쌍화차는 예상과 달리 칠흑 같이 깜깜한 밤하늘에 뜬 노란 보름달처럼 고왔다. 도심의 전통찻집에서 대접만한 잔에 나오는 걸쭉하고 텁텁한 쌍화차와 달리 맑고 향도 진했다. 쌍화차가 맛있다고 하자 약재를 사다가 직접 만든 것이란다. 예전에 근처에 많던 약재상도 다 없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방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30년 됐나?..."
"여기서만요?"
"동두천 쪽에서 하다가 이쪽으로 옮겨왔어요."


"요즘 힘드시죠?"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어요. 사람이 너무 없어요. 사는 게 재미가 하나도 없어…"


옛날에는 정말 장사가 잘 됐었다고 한다. 근방에 부대가 있어 신병들과 제대하는 병사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병사들 그리고 면회 오는 가족들 등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진짜 장사가 잘 되니까 몸은 고되도 진짜 재밌었어요." 

여자의 얼굴이 처음으로 밝아졌다가 금방 다시 어두워졌다.

"동두천에 전철 다니면서부터 사람들이 줄었어요. 이젠 기차도 안 다니니까 아예 사람이 없어요. 코로나까지... 어떤 날은 하루에 한 명도 안 와요."

"다른 거 할 것도 없고 하니까 그냥 문열어 놓고 있는거죠 뭐. 이렇게 문 열어 놓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들 많이 들어와요. 앉아만 있다 가는 사람, 보리차만 마시고 가는 사람… 어떤 사람들은 괜히 와서 욕을 하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별 이상한 사람 많아요."

"기차는 이제 아주 안 다니는 거예요?"
"몰라요. 기차가 다닌다고 뭐 나아지려나…"


여자의 대답은 기차가 다닌다고 별로 나아질 게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녀의 얘기 속에는 신탄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었다. 신탄리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 듯했는데 그녀가 보여준 엔딩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어둠이 일찍 찾아온다는 여자의 말에 작별 인사를 하고 다방을 나섰다.  

철도 건널목을 건너 마을로 들어섰다.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한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입구 마을 안내판에는 39개의 식당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문을 연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양평손두부식당, 고대산산이초, 금수강산, 통일식당, 할머니민박, 고대산민박, 신탄식당, 기차길식당… 가을 단풍이 한창이라 전국의 명산에 등산객이 몰린다는데... 왜 이곳엔 등산객도 보이지 않는 걸까. 

기차가 끊긴 다음부터는 등산객들도 잘 안 온다는 다방 여자의 말이 생각났다. 경원선의 또 다른 역인 신망리역에서 만났던 할아버지의 말도 떠올랐다. "여긴 사람 살 데가 못 돼." 신망리역, 초성리역 등 경원선의 다른 인근 지역의 형편도 신탄리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60년간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접경지역 주민들의 삶이 너무 애잔했다. 2021년 완공 예정인 동두천-연천역 전철화로 이들 마을들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고대산 자연휴양림과 역고드름

가을에 이어 12월 다시 신탄리를 찾았다. 눈 내린 신탄리는 가을보다 더 적막했다. 하루를 고대산 자연휴양림에서 묵고 이튿날 고대산 초입까지 올라가 보았다.
  

고대산 자연 휴양림 고대산 중턱에 조성된 고대산 휴양림 ⓒ 변영숙

 
높이 832m 고대산 중턱에 조성된 고대산 휴양림은 캠핑촌, 글램핑존 및 숲속의 집과 수련원 등을 갖춘 대규모 자연휴양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시설만 운영되고 있어서인지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일몰이 시작되자 고대산 맞은편 연봉이 붉은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산 밑에서 볼 때는 순식간에 산봉우리 뒤로 꼴딱 넘어가던 해가 여기서는 아주 천천히 봉우리 뒤편으로 스미듯 가라앉았다. 붉은색을 띠던 하늘은 주황색, 보라색, 진청색으로 한껏 요신을 떨다가 깜깜해졌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삭풍인가. 고대산에서 부는 바람이 거셌다.
  

고대산 자연 휴양림 고대산 자연휴양림에서 바라본 일몰 ⓒ 변영숙

 
경기 신서면과 강원 철원군에 걸쳐 있는 고대산은 등산로 초입부터 암반과 돌투성이었고 나무들도 못생겼다. 해가 들지 않는 겨울산은 음산했다. 고대산을 밟은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날이 좋으면 정상에서 철원평야와 6.25 격전지인 백마고지, 금학산, 지장봉, 향로봉이 보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휴양림에서 6km쯤 떨어진 곳에 겨울철 명소로 알려진 '연천 역고드름 터널'이 있다. 겨울이 되면 이 터널에는 바닥에서 위로 역고드름이 열리는 신기한 풍경이 연출된다.
  

연천의 역고드름터널 연천 신서면 신탄리 마을에 겨울이면 북한의 무기저장고로 사용되던 경원선 폐터널에 역고드름이 열린다. ⓒ 변영숙

 
고대산휴양림에서3번국도를 따라 10여 분 정도 달리면 역고드름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가 일러주는대로 다리를 건너 차탄천을 따라 논두렁 길을 10여 분 정도 달리면 역고드름 터널이 나온다.

100m 남짓한 터널 안에는 이제 막 고드름이 달리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벌써 할아버지 수염처럼 길게 자라난 고드름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천장에도 막 자라기 시작한 고드름이 박쥐같이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도 얼음기둥이 솟아났는데, 터널 안쪽까지 새싹이 자라듯 얼음 기둥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고드름들은 날씨에 따라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아주 독특한 모양으로 자란다. 용암처럼 흘러내리다 펑퍼짐하게 얼어붙기도 하고 불기둥처럼 높이 치솟기도 한다. 그저 고드름일 뿐인데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수백 개의 굵고 높은 얼음 기둥이 솟아나 터널을 가득 채운다고 한다.

역고드름은 지면에 고인 물분자가 삼투압 현상을 일으켜 지하의 물분자를 솟아오르게 하고 그것이 얼어붙으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니 자연의 신비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구경원선 교량 신서면 차탄천에는 구경원선 교량이 그대로 세워져 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와 강원도가 나뉘어진다. 금강산길의 시작 지점이기도 하다. ⓒ 변영숙

 
원래 이 터널은 일제강점기에 구경원선 구간이었으나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버려졌다. 해방 이후에는 북한의 탄약창고로 사용되었다. 6.25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균열이 생긴 터널에 비나 눈이 침투하면서 이런 신기한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란다. 마을 사람이 우연히 발견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터널 앞 차탄천에는 구경원선 교량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건너면 바로 강원도 땅이다. 평화누리길 1코스 금강산길이 여기서 시작된다. 신탄리에, 신탄리 사람들에게 따스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신탄리역 #신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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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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