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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예술가의 고백 "살아있으니, 별처럼 살고 싶어요"

[서평] 작가 소리 <좋아하는 마음만큼 재능도 주셨어야죠>

등록 2021.01.18 15:46수정 2021.01.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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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리' (본명 김아영) ⓒ 김아영


'정말 솔직하네, 마음속에 꽁꽁 숨겨 두어야 할 것까지 죄다 까발려 위험해 보일 정도야. 누가 더 솔직한지 만을 평가 기준으로 하는 문학 공모전이 있다면 노벨상도 거뜬할 것 같아.'
 
작가 '소리'가 지난해 12월 세상에 던진 책 <좋아하는 마음만큼 재능도 주셨어야죠>(잼있다Company)를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다닌 생각이다.
 
'소리'는 예명이다. 실제 이름은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 '그가 그립다'를 만든 작곡가 김아영(49세)이다. 18일 오후 전화를 걸어 예명을 만든 이유를 묻자 그는 "다르게 살고 싶어서"라며 "제일 잘 하는 게 소리를 잘 듣는 것"이어서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솔직하게 쓰려면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라고 지나가는 듯 묻자 "맞아요. 제가 너무 밉고, 울화병이 쌓여서 낙서하듯이 저를 조롱하려고 썼는데, 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쓰면서, 제 밑바닥도 보게 됐고, 그러면서 치유가 되기도 했고요"라고 진지하게 답했다.

이 책은 스스로 변두리 예술가라고 자칭하는 작곡가이자 뮤지컬 기획자인 그가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 예술활동을 하며 겪은 일을 고백하듯이 털어놓은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변두리 예술가의 고백'이란 부제부터 심상치 않았다. '고백'이란 게, 차마 말하기 힘들어 맘속에 꽁꽁 숨겨 놓은 것을 드러내는 일인지라, 세상에 대고 떠들만한 게 아닌데. 세상사람 다 읽을 수 있는 책에서 도대체 무엇을 고백한다는 것일까.
 
"영 : 넌 말이다. 경쟁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요. 그냥 게으르고 태만한 관심종자(관심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일뿐. 1등은 개뿔, 그냥 노력은 안하고 졸라 관심만 받고 싶은 거지.
공 : 나 내성적이라 관심 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래서 무대 공포증도.
영 : (말 가로막으며) 그렇지 쉽게 인정하기 어렵겠지. 그럼, 쉽지 않지. 제일 꼴 보기 싫은 종자들이 관종이라고 맨날 입에 달고 다녔는데 그거 인정하기가 쉽겠냐? 왜? 아빠가 김 선생이란 이름으로 넌 아무 노력도 없이 관심을 받았거든. 그런 게 너무 익숙하지, 쉽게 말해 관심에 길들여진거야. 그런데 1등을 못하니 관심도 못 받고, 그러니 심사가 꼬이지." - 책 속에서
 
이런 식이다. 정말 솔직하지 않은가? 영과 공 모두 작가 자신이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작가 안에 있는 두 자아가 대화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희곡 에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실제 시나리오처럼 책 들머리에 무대 모습도 묘사돼 있다.
 
"깜깜한 무대 중앙에 비스듬하게 전신 거울이 있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공'의 공간과 '영'의 공간이 나뉜다." - 책 속에서
 
"남들한테 없는 거, 제법 그럴듯하게 잘하는 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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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는 마음만큼 재능도 주셨어야죠>(소리) ⓒ 잼있다Company

 
영은 은밀한 곳에 숨겨진 작가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자아다. 공은, 자기 합리화 등으로 은밀한 부분을 감추고 있는 자아다. 그런 공을 영은 사납게 야단치며 은밀한 부분을 끄집어 내 낱낱이 보여준다. 때로는 "남들한테 없는 거, 제법 그럴듯하게 잘하는 거 있잖아"라며 다독여 주기도 한다.
 
공과 영의 대화를 통해서 보여주려 하는 것은 대중에게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예술 활동을 하는 '변두리 예술가'의 비애다. 뭇사람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도 있고, 경제적 어려움도 있으며,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있다. 그런데도 예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 또한 진솔하면서도 걸쭉하다.
 
"영 : 느껴지는 게 있으면 표현해야 하는 게 딴따라의 숙명이야...딴따라가 딴따라 짓을 멈추는 건 처먹으면서 똥은 참겠다는 거랑 똑같아, 그럼 어떻게 돼? 입으로 똥을 싸겠지." - 책 속에서

이렇듯 예술가의 넋두리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우울한 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시니컬한 독자 시선을 마주했을 수도 있다. 책 말미에 이 대목이 없었다면 어쩌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공 : 누가 성공하고 싶대? 그냥 상식선에서라도 (뮤지컬) 배우들 대우해 줄 수 있고, 고생하는 스태프들 임금 정당하게 줄 수 있는 환경에서 공연 한번 해 보겠다는 게 그렇게 욕심인가?"- 책 속에서

공과 영의 대화는 이정도 에서 멈춘다. 무대에서 내려온 작가 '소리'의 다짐이 나오며 책 <좋아하는 마음만큼 재능도 주셨어야죠>의 막을 내린다.
 
"전 제가 살아온 인생이 자랑스럽거나 뿌듯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좋아질 거란 기대도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저 자신을 시궁창에 빠뜨리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벌 볼일 없는 변두리 예술가지만, 그래도 살아있으니, 그리고 이런 저를 별이라 생각해 주는 저의 우주가 있으니, 그 우주에서 저도 그들과 어울려 별처럼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정도에서 폭력적이고 무자비했던 저에 대한 학대를 멈추기로 했습니다." - 책 속에서

좋아하는 마음만큼 재능도 주셨어야죠 - 변두리 예술가의 고백

소리 (지은이),
잼잇다컴퍼니,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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