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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우울증과 공황발작에는 위로가 필요했다

[조울증이라고요?④] 그녀와 아빠가 '말하는' 방식

등록 2021.01.24 19:56수정 2021.01.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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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숨을 헐떡이고,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 픽사베이

 
발을 구르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곧이어 다급하게 물을 찾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하게 "여기 물, 물" 하며 뛰어가는 엄마의 발소리에 맞춰 나도 거실로 나가 상황을 살폈다.

아빠는 허겁지겁 물을 마신 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알, 쩍쩍 갈라지는 입술, 불규칙하게 오르고 내려가는 배. 공황발작이었다. 아빠는 거실 한복판을 이리저리 불안하게 오가더니 참을 수 없다는 듯 집을 박차고 나갔다. 시간은 새벽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짝이 안 맞는 신발을 신고 나간 아빠는 전봇대를 붙잡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울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아빠를 불렀다.

"아빠 들어가자."

이런 밤을, 아빠의 공황발작을 몇 번이나 겪어왔던 나는 조금은 담담했다. 아빠의 팔을 붙잡았다.

"아빠 추워 어서."

아빠는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눈가를 쓱 문지르더니 여전히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아빠는 휘청이며 걸었다. 나도 그 걸음에 맞춰 같이 휘청였다.

"아빠 숨을 길게 내쉬어 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물을 끓였다. 차를 우려 아빠 손에 쥐여 주고, 그것을 다 비울 때까지 아빠 옆에 앉아 있었다. 집 안은 아빠가 차를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아빠는 내게 빈 컵을 '툭' 건넸다.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기력을 다 소진한 아빠는 탈진하듯 침대 위로 올라갔고 곧 잠이 들었다.

엄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엄마는 찡그리듯 웃었고, 나는 그 말이 너무 무거워 대꾸조차 못 했다.

제어할 수 없는 화는 폭력으로

그날 낮에는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조카 셋이 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아빠의 기운은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벌컥벌컥 화를 냈는데, 그럴 때일수록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했다. 아직 초등학생밖에 안 된 어린 조카들은 할아버지의 기분을 살피는 데 능숙하지 못했다. 뛰지 말아라, 장난치지 말아라, 싸우지 말아라. 온갖 금지령에도 말을 듣지 않고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실수로 문에 커다란 흠집을 내고 말았다. 아빠는 폭발했다.

온갖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화는 제어가 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눈빛과 끔찍한 말로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나는 중간에 나서서 아빠를 말려야 했다. 울고 있는 아이들을 아빠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시급했다. 아빠는 시한폭탄 같았고 그 곁을 조금 스치기만 해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이들을 내 방에 데리고 와서 괜찮다고 꼭 안아줬다. 그 순간 내가 엄청나게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을 조카들이 똑같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릴 때 아빠는 화만 나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떠 엄마와 나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더 화나게 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암묵적인 신호. 사실 나는 눈빛으로 사람을 제압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어떤 눈빛을 띠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눈빛이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영향을 주는지도.

아빠는 나에게 지극한 사랑을 퍼붓는 사람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화가 나면 그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이기도 했다. 부부싸움이 날 때면 아빠는 이것저것 집어 던졌다. 심한 날은 칼을 빼 들고 엄마를 협박하기 일쑤였고, 엄마는 그럴 때마다 내 이름을 불렀다. 아빠가 이성을 찾을 수 있는 주문이라는 듯. 나는 울면서 '아빠, 아빠'하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매달렸고 그제야 아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모든 행동을 멈췄다.

아플 때마다 되뇌는 말 "죽어야지"
 
아빠는 본인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화를 내고 난 날이면 아팠다. 그날 저녁 공황발작이 찾아온 것도 낮에 애들에게 어마어마한 화를 낸 것과 관련이 있었다. 아빠는 자신이 잘못할 일일수록 더 화를 냈고, 더 긴 시간 방 안에 들어가 있었고, 그래서 자기 자신을 우울증으로 병들게 했다.

나는 아빠가 고집하는 방식에 지쳐갔다. 낮에는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고 저녁엔 눈물을 흘리며 약해지는 것도 혼란스러웠다. 점점 아빠에 대한 감정은 분노와 원망, 죄책감과 연민으로 혼합되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감정들이 섞인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마음껏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힘껏 사랑할 수도 없게 만드니까.

자기 몸 상태, 마음 상태를 욕이 아닌 정갈한 '말'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아빠는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신호로 언제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금 내 몸이 어떤지 다들 알기나 해? 어디 나가서 콱 죽어 버리든지 해야지. 그래야 나 귀한지 알지. 이놈의 세상 살아서 뭐 해 지겨워. 지겨워."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중얼하면서 어기적어기적 집 안을 걸어 다닌다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리듬감 있고 반복적인 한숨을 쉬고 또 쉬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말했지만 아무것도 말한 게 없다. 말을 할수록 아무것도 제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실망하고 절망했다. 육체적 고통에 대한 자신의 호소가 이어지면서 가족들과 그동안 함께 구축해왔던 공감과 존중, 사랑과 정 등 온갖 끈끈한 '공동의 감정'이 무너졌다. 그들과 자신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책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중에서)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은 완벽하게 이런 모습이었다. 설명되지 못하는 고통에 공감할 수 없었고, 아빠가 주문처럼 외우고 쏟아내는 말과 공황발작에 내성이 생겨 버렸다. 우리 가족은 교감할 수 없는 공동체로 함께 또 따로 존재했고, 그랬기에 나는 내가 조울증이라는 것을 '말하는' 대신 침묵했다. 어쩌면 아빠와 나는 서로에게 자기 상태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할 언어가 없다는 점에서 비슷한 사람일지 몰랐다.

내게 필요한 위로, 아빠에게 필요한 위로
 

내게 필요한 위로, 아빠에게 필요한 위로 ⓒ 픽사베이

 
내가 한참 우울기로 힘들어 방 안에서만 콕 박혀 지내던 시기엔 모든 걸 내팽개치며 살았다. 아빠가 밤에 발을 구르며 물을 찾아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다. 그럼 엄마가 나 대신 차를 끓였고 아빠는 안 마신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아빠의 상황, 그리고 내 상황을. 내 호흡도 함께 가빠지기 시작했다. 숨이 자꾸만 턱 끝에서 걸려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숨을 길게 내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빠는 내 눈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초점을 잃은 눈빛과 푹 꺼져버린 눈자위. 아빠는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뭔가를 직감했고, 말도 안 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것을 걱정했다. 마음이 아파본 사람은 마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걸까. 어느 날 아빠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아프면 아빠한테 꼭 얘기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알겠어?!" 다정함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말투였는데, 그 말투와 어울리지 않는 한 마디 때문에 목이 꽉 막혀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자기 화에 타들어 가는 와중에, 우울함에 잠식되어가는 와중에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는 자신의 고통을 몇 년간 얘기하면서, 그 아픔을 공감받지 못했을 때의 단절감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내 침묵의 의미가 아빠에게만큼은 정확하게 가닿은 것이다. 어쩌면 아빠도 힘들면 혼자 앓지 말고 자신에게 기대라고 얘기해줄 존재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날 받은 전화가 내게 꼭 필요한 위로였음을 나는 오랜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매주 일요일이면 아빠는 지방으로 내려간다. 일주일에 한 번 하룻밤 집에서 자고 다시 일터로 나가는 생활을 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숙소에서 먹을 간식을 이것저것 챙겨 묵직해진 가방을 둘러메며, 낮고 구슬프게 "다녀오마" 한다. 그럼 나는 집 앞까지 따라 나가 아빠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는다. 자꾸만 뒤돌아보며 들어가라고 손짓하는 아빠를 따라 나도 어서 가라고 손짓한다. 우리는 그렇게 꽤 오래 서로에게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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