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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성폭행, 검찰 넘어간지 1년 지났지만... 답이 없다

피의자가 오히려 SNS 통해 피해자 협박... 검찰, '소재파악 불분명' 소리만

등록 2021.01.21 12:24수정 2021.02.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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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2월 23일, 피의자는 피해자 페이스북에 '조심하라'고 협박 메시지를 남겼다. ⓒ 서유진 변호사 제공

 
"니 하루하루 조심히 다녀라...(중략) 어차피 신고 당한거 니 죽이고 또 당한다."

그의 협박은 끈질겼다. 지난해 12월 23일, 피의자 김우준(가명)은 최미은(가명)씨의 페이스북에 '조심하라'고 협박 메시지를 남겼다. 이런 메시지는 처음이 아니었다. 같은 해 4월 "역으로 고소당할 준비하고 있어"라고 했고, 11월에는 최씨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니X 얼굴 다 알고 있으니까 숨어 살아 XXX아"라고 댓글을 남겼다.

2019년 7월, 26세의 김씨는 당시 17세인 최씨를 성폭행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8개월이 지났지만 검찰은 "피의자 김씨의 소재파악이 어렵다"라는 이유로 아직 피의자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 최씨를 대리하고 있는 서유진 변호사(나눔과 이음)는 "검찰의 수사가 길어지는 동안 피해자 최씨는 김씨에게 지속적으로 협박성 메시지를 받아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성폭행 피의자의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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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는 지난 2020년 11월, 피해자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니X 얼굴 다 알고 있으니까 숨어 살아 XXX아'라고 댓글을 남겼다. ⓒ 서유진 변호사 제공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최미은씨의 경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최씨는 2019년 7월 집 근처 놀이터에서 친구를 통해 김씨를 처음 만났다. 김씨는 "집에서 쫓겨났다"라며 최씨에게 "나를 두고 집에 가면 너의 집 앞에서 네가 나올때까지 기다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룻밤만 우리 집에 같이 가달라"라고 했다.

"(집에 같이 가달라는 게) 되게 이상하잖아요. 저랑 친구는 다 싫다고 했어요. 그래서 김씨에게 '혼자 모텔가서 자라'라고 하니 '혼자 자기 무섭다'라고 하는 거예요. '찜질방 가서 자라'고 하니 그것도 싫다고 하고요. 이대로 두면, 진짜 집까지 쫓아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김씨 집에 가기) 싫다고 했는데, 친구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라고 해서 그 말을 믿고 같이 (김씨) 집에 갔어요."

김씨는 최씨를 안심시키려는 듯 "너 안 거드릴 거다, 관심도 없다"라고 말했다. 최씨의 친구마저 재차 '걱정하지 말라'며 김씨와 함께 집으로 가라고 했다. 최씨는 '설마 이상한 짓을 하겠어'라는 생각에 결국 택시를 타고 그의 집에 갔다.

집에 도착하자 김씨가 돌변했다. 최씨의 팔을 잡고 어깨를 누르며 성폭행했다. 최씨가 "그만하라"고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최씨가 집에서 나가려 하자 김씨는 '누가 묻더라도 우리는 절대 아무 일 없었던 것'이라고 강조하며 최씨의 대답을 강요했다. 그의 집에서 나가고 싶었던 최씨는 '알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최씨는 그가 다니는 대안학교 선생님·목사님에게 지난밤 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대안학교 선생님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를 방문해 조사를 받았다. 성폭행이 발생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2019년 12월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 지금까지 뭐했나

최씨는 성폭행 피해를 용기 내 고백했고 조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이후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앞서 경찰은 2019년 12월 김씨에게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배당됐다.

거기까지였다. 검찰은 13개월째  최씨가 겪은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지 않았다. 이유는 '피의자 소재 불분명'이었다.

이 사건을 맡은 담당 검사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피의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라며 "해당 사건을 아예 진행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에 여러 차례 (피의자) 소재파악을 문의했지만, 경찰이 답이 없었다"라며 "피의자가 다른 사건도 엮여 있어 경찰과 체포영장 발부를 논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은 "검찰로부터 연락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최씨의 사건을 담당한 서울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은 열심히 수사해서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그 다음은 검찰의 영역"이라며 "체포영장도 필요하면 검찰이 진행하는 거지 경찰과 논의할 게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말하는 '피의자 소재 불분명'은 핑계일 뿐, 검찰이 해당 사건을 미뤄두고 있다고 봤다. 검찰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경찰에 (피의자) 소재수사를 지휘했을때, 경찰이 답이 없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1년 이상 끌 사건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검사실이 배당받은 많은 사건 중에서 (최씨 사건이)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형사재판 경험이 있는 배민신 변호사는 "검사가 공소제기여부를 결정할 때 평균적으로 3개월 여 걸린다, 검찰의 명백한 업무태만"이라고 꼬집었다. 형사소송법 제257조(고소등에 의한 사건의 처리)에 따르면 '검사가 고소 또는 고발에 의해 범죄를 수사할 때 고소 또는 고발을 수리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여 공소제기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다만, 이는 훈시규정으로 강제성은 없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담당 검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하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최씨는 탄원서에서 "성폭행은 피의자 집에서 이루어졌고, 피의자 집은 저희 집 근방"이라며 "피의자와는 사건 이후로 마주친 적은 없지만 (피의자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불안하다"라고 두려움을 호소했다. 그의 법률대리인인 서유진 변호사는 "피해자가 탄원서를 보낸지 한 달이 넘었지만, 검찰이 이렇다할 답을 주거나 수사를 진행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는 (사)들꽃청소년세상의 김지혜 활동가는 "최씨 사건 뿐 아니라 단체가 지원해 미성년자 성폭행 신고를 해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보호자가 없거나 취약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에게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차별없이 신속한 수사와 재판, 피해자 보호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성년자 #성폭행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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