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족이 된 오골계 다섯 마리, 이것들 보통이 아니네

거제도 갯가마을의 좌충우돌 양계 일지 ①

등록 2021.01.21 09:16수정 2021.01.2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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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현마을의 전경 닭이 들어 온 날에도 와현바다는 잔잔했다. 수탉 우는 소리가 저 마을까지는 가지 않기를 바랬다. ⓒ 이승열

 
투잡, 이젠 나도 양계업자가 된다


거제도 갯가마을에 살면서 닭을 키우기로 했다. 시설은 완성됐고, 며칠 내로 닭이나 병아리를 넣을 예정이다. 무려 대여섯 마리다.

지인이 닭장을 만들어 줄 때, 나는 나사를 건네주고 아내는 타이를 질끈질끈 맸다.
지인은 "아따, 누야 힘도 좋소"라고 했다.

이젠 계란 파동이 생겨도 걱정 없다. 하나씩 자급자족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일이라고 믿는다. 거기다 먹고 남으면 장날에 내다 팔겠다. 이제 부자 되는 건 시간문제다. 어쩌면 종부세도 낼지 모른다는 상상까지 해본다. 하하.

옆에서 "챙피하게 닭 몇 마리로 그리 샀소"라고 아내가 핀잔을 줘도 내 꿈을 접지는 않는다. 정국이 답답해도 개혁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백수가 아니라 무급보좌관과 양계업자로서 좀 바쁜 사람이다. 혹시 전화를 못 받더라도 이해하시라. 투잡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신난다. "닭이 계란을 낳고, 계란이 부화되면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가 크면 또 큰닭이 되고, 그 큰닭이 또 계란을..."
 

닭장 짓기 정원 한 껸에 지인이 닭장을 짓고 있다. 뼈대는 거제산 대나무를 사용했고옆면은 쇠망으로 둘렀으며 지붕에는 함석을 엊을 예정이다. ⓒ 이승열

백봉 오골계 다섯 마리 입식 수탉 한 마리와 암탉 4마리를 입식했다. 낯선 환경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 이승열

 
드디어 지인이 직접 백봉 오골계 다섯 마리를 박스에 담아서 가져왔다. 박스에 테이프를 야무지게 붙인 모양으로 봐서 순순히 끌려온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닭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생리나 양계에 대해서는 완전 일자무식이다.


부끄럽지만, 붕어를 대야에 담아와서 연못에 풀어주면 입을 뽕긋거리며 유유히
헤엄쳐 다니듯 닭도 그런 줄 알았다. 웬걸... 박스에서 풀어주자마자 문 쪽으로 돌격하는 놈, 철망을 뛰어 두발차기하는 놈, 온 그물을 쑤셔 보며 구멍을 찾는 놈이 있는가 하면, 수탉은 자존심을 세우는지 대가리를 치켜들고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것들은 예사가 아니었다.

첫날의 새벽. 새벽 4시부터 울더니 오전 내도록 울었다. 진돗개 '보리'는 처음 듣는 소리로 꽥꽥거리는 무례한 놈을 향해 '컹컹' 짖어 대고 집 안에 있는 삽살개 먹서견인 '나눔이'도 씩씩거리니 새벽부터 산만하고 어수선하다. 사람 좋은 앞집 이웃이지만 신경이 쓰인다.

첫날이라 낯설어서 우는 건지, 아니면 항상 저리 울어대는 건지 잘 모르지만 맨날 저 짝이 나면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우는 꼴을 보니 확실히 목을 쭉 빼고 울었다.

그나저나 암탉들은 조용한데 도대체 어쩌자고 수탉 한 마리는 저토록 줄기차게
우는지 궁금했다. 뭘, 어떻게 하자는 말일까. 우리가 아직 부당하게 대우해 준 것도 없고, 거처할 주거 환경이 열악하여 기본권을 침해한 적도 없으며, 아직 달갈 하나 뺏어 먹은 적도 없는데 저렇게 목소리를 높일까.

도저히 저 수탉을 이해할 수 없다. 세상 변한 줄도 모르고 수컷이 저토록 안하무인인 동물이 있을까 싶다.

"어이 수탉! 수컷의 시대는 갔어. 뭘 알고 가오를 잡아야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양계의 길은 험난하다. 근데 지금도 줄기차게 울고 있다. 
덧붙이는 글 거제도 갯가에 엎드려 살면서 백봉 오골계 다섯마리를 키우는 은퇴한 백수입니다.
생전 처음 키워보는 닭과 씨름하면서 생긴 이야기가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 작은 웃음이라도 주면 좋겠습니다.
#거제도 #백봉오골계 #와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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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월에 퇴직한 후 백수이나, 아내의 무급보좌관역을 자청하여 껌딱지처럼 붙어 다님. 가끔 밴드나 페이스북에 일상적인 글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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