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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일본군을 봉오동으로 유인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 / 20회] 최운산 형제들은 봉오동에 연합부대 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쉴새없이 국내진공작전을 펴는 것은 물

등록 2021.01.26 17:13수정 2021.01.2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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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구가들의 노력으로 연해주와 서간도의 독립운동은 많이 발굴되고 알려졌지만, 2020년 봉오동ㆍ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보내고도 두 대첩에 크게 기여한 최운산 장군 형제들의 역할은 여전히 묻혀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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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적지, 산봉우리가 초모정자산으로 그 아래 왼편이 봉오동 중동 마을이고 오른편이 봉오동 상동 마을이다. 봉오동 전적지, 산봉우리가 초모정자산으로 그 아래 왼편이 봉오동 중동 마을이고 오른편이 봉오동 상동 마을이다. ⓒ 박도

 
3ㆍ1혁명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일제는 통분한 애국청년들이 만주로 건너가 무장독립운동 단체에 합류하고, 러시아를 통해 무기를 들여와 무장을 하면서 곳곳에 밀정을 풀어 탐색하였다. 그리고 마적을 매수하여 독립군 학살에 동원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최운산 형제들은 그동안 준비해온 대로 봉오동에 연합부대 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쉴새없이 국내진공작전을 펴는 것은 물론 봉오동으로 유인전략을 전개하였다. 

동년(1920년) 6월 4일 홍범도ㆍ최명록(최진동) 예하의 1부대는 은성 대안(對案) 삼둔자에서 도강, 상탄동의 일군 1개 소대를 섬멸한 후 귀환하였고, 이를 추격해온 안천(安川) 소좌의 제19사단 병력 300명은 6일에 삼둔자 봉오동에서 120명의 희생을 당했다. 그 외 부상자가 200여 명이었고 독립군에게 소총 600여 정과 기관총 3문을 노획당하였다. 봉오동의 패전으로 정예를 과시하던 일본군은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주석 1)

이것은 '봉오동대첩'의 예고편이다. 봉오동으로 일본군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술이었다. 독립군은 그동안 간난고초를 겪으면서 러시아제ㆍ체코제ㆍ미제ㆍ독일제ㆍ일제의 각종 무기를 구입하여 상당한 수준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군(일본군) 참모부가 1920년 5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조사한 간도ㆍ훈춘지방 독립군의 군비현황은 다음과 같다. (주석 2)
 

간도ㆍ훈춘지방 독립군의 군비 현황 간도ㆍ훈춘지방 독립군의 군비 현황 ⓒ 김삼웅

 
                         
독립군은 각종 신식무기로 무장을 하면서 용기백배하였다. 그동안 나라 잃은 망국노로서 당한 설움과 학대를 돌려 줄 날을 기다렸다. 봉오동에서 민족의 한을 풀고자 하였다. 

함경북도 나남에 사단본부를 두고 있던 일본군 제19사단은 일본군이 '삼둔자전투'에서 패전한 데에 크게 분개해서 안천(安川) 소좌가 지휘하는 월경추격대를 편성하여 두만강을 건너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는 독립군 근거지인 간도의 화룡현 봉오동까지 들어가서 독립군을 '섬멸'하고 오도록 하였다. (주석 3)


치열한 준비와 치밀한 전략이 마침내 주요한 순간이 되었다. 최운산 형제들이 봉오동으로 이주하여 둔병으로부터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그동안 재산을 털어 육성한 독립군과 연합부대가 정예 일본군 제19사단의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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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적기념비 봉오동 전적기념비 ⓒ 박도

 
대한북로독군부와 신민단의 독립군 연합부대가 봉오동 일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일본군 제19사단의 안천(安川) 추격대대가 봉오동 골짜기 입구까지 찾아 들어온 것이다.
 
대한북로독군부 부장 최진동과 사령부장 홍범도는 일본군 1개 대대가 독립군 소부대를 추격하여 봉오동에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이를 섬멸하기로 결정하고, 봉오동 주민을 대피시킨 후에 제1중대장 이천오는 중대원을 인솔하고 봉오동 윗마을 서북단에, 제2중대장 강상모는 동산에, 제3중대장 강시범은 북산에, 제4중대장 조권식은 서북남단에 매복하여 일본군을 기다리게 하고, 사령부장 홍범도 자신은 2개 중대를 이끌고 서산북단에 매복하였다.  

이흥수의 대한신민단 독립군은 일본군이 진입해 들어오는 남단에 매복하였다. (주석 4)


주석
1> 오세창, 앞의 책, 148쪽.
2> 간도ㆍ훈춘의 항일독립운동상황보고의 건, 『조특보(朝特報)』, 제32호, 대정 9년 6월 16일.
3> 「전보」, 제166호, 1920년 6월 15일, 『현대사자료』27, 608쪽, 신용하, 앞의 책, 203쪽.
4> 「봉오동전황약도」, 『현대사자료』27, 639쪽, 신용하, 앞의 책, 20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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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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