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만에 집에 오는 아들, '그날'이 떠올랐다

둥지 떠난 아기새를 바라보는 어미새의 마음

등록 2021.01.21 09:47수정 2021.01.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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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만에 아들이 집에 왔다. ⓒ 남은경

 
이틀 후에 아들이 집에 온다.

타 시도 소재 대학교 1학년 재학 중인 아들이 방학 중 특별 과정 수강을 마치고 5주 만에 집에 오는 날이다. 딸 아들 남매인 자녀가 학업을 목적으로 제 갈 길을 찾아 집을 떠난 지 4년이 지났고, 방학이나 때때로 집에 올 때면 엄마인 나는 준비의 시간을 가진다.

20년간 해온 일상적 가정 관리에 지쳐 점점 정갈함을 잃어가고 될 대로 되라며 집안일에 손을 놓는 날이 생기는 지경까지 와 버린 즈음이다. 표 안 나고 명예로울 것 없는 가사에 진저리치는 날들이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 좀 덜 치워도 된다"며, "남들에 비하면 나는 깔끔한 편"이라며 게을러진 자신을 스스로 변호해 본다. 가족들 들으라고 중얼거림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집에 복작복작, 오순도순 지낼 때는 미처 몰랐다. 끝도 없고 쉼도 없던 그 생활에 지금 같은 변화가 생길 줄은...

3년 터울인 두 자녀가 같은 해에 대학교와 고등학교를 타 시도로 진학하면서 남편과 나 둘만이 이 집에 기거하는 때가 온 것이다. 결혼 후 꼭 20년 만에 생긴 변화다. 아이들을 품 안에서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을 미처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큰아이 기숙사에 물건을 들여주고, 작은아이 기숙사로 이동하던 고속도로 위에서 울컥 눈물을 쏟으며 상황이 실감 나게 가슴을 때렸던 것이다.

어미새를 떠나는 아기새들은 미지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떠나보내는 어미새는 만감이 교차되며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또다시 복받치며 치밀어 오르는 무엇이 느껴진다.

외부적 성취를 기대할 수 없는 전업주부로서 가정의 화목과 자녀의 바른 성장에 가장 중점을 두는 생활을 했었다. 아이들이 떠나는 날은 어떤 면에서 엄마의 임무가 한 단락을 마무리 짓는 시기이다. 반면에 새롭게 전개될 앞날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기분은 그로부터 몇 개월 전에도 느꼈었다.

큰아이 수능 시험날 시험장으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멀리 고층건물 위에 떠 오르는 해를 보며 느꼈던 그 감정,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합쳐 12년의 학업기간을 마무리하며 다가올 내일을 기약하는 그 시점에 느꼈던 감정들. 학업적 공부와 인격적 성장을 위해 한 개인에게 주어졌던 그 오롯한 시간들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느껴지는 사념들.

일차로 가시적인 결과가 드러나는 시점이고, 한 아이의 일생에 다시 없을 시간들에 대한 여러 감정들로 수십여 분 심장이 요동쳤었다. 후회, 아쉬움, 안타까움, 미안함, 고마움, 무엇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가슴이 복받쳐 올랐던 그 날 그 감정. 아이 본인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미인 내 가슴은 혼란스러웠었다.

그 시절에서 벌써 이만큼의 시간이 흘러와 있다. 새로운 환경이 되면 새로운 생활 패턴이 생기기 마련인지라 내게도 그러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자녀의 방과 집안 여기저기를 청소하고,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먹거리는 일주일 전부터 구상하게 된다. 당장 집에 있는 재료는 무엇이며, 요즘 맛있는 계절 먹거리는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지난번에 처음 시도해본 굴국이 성공적이었던 것을 떠 올리며 메뉴에 추가하고, 요즘 입맛 없는 내게 상큼함을 주는 신선 채소 샐러드는 꼭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덕분에 오전 시간을 몽땅 주방 싱크대 앞에서 보냈다. 간식으로 사과칩을 만들기 위해 사과를 건조기에 말리고, 겨울 추위를 이기며 자란 시금치 나물 무침이 맛있어서 미리 씻어두고, 밑반찬으로 오징어채 볶음을 준비하고, 불고기거리를 양념에 재우고,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플레인 요거트와 리코타 치즈를 만들어 놓고, 다른 먹거리는 다음날 장을 보며 챙기기로 했다.

나의 부모님이 이러저러한 먹거리를 내게 챙겨 주셨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웃고도 싶고 울고도 싶은 오묘한 감정도 들었다.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요리할 때 한번 기름이 튀는 것만으로도 지저분해지는 레인지 청소부터, 씻은 그릇을 말리는 식기건조대를 닦았다.

또, 이것저것 조금씩 남아있는 반찬통을 정리하고, 거실 장식장 위 먼지를 닦고 식탁 위 널려있는 잡동사니 정리, 자녀방 이불도 다시 정리했다. 책상 위에 성의 없이 올려둔 물건들을 제 자리를 찾아주고, 욕실 청소와 집안 쓸고 닦기로 온종일 쉴 틈이 없다.

솔직히 몸이 편하지 않거나 바쁠 때는 성가시다는 생각이 조금 들 때도 있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워하는 할아버지 집을 들르는 손주들처럼 어느새 이렇게 부모와 자녀가 분리 ㅇ되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때로는 자유를 즐기느라 멀리 있는 자녀를 잠시 잊고 전화 통화를 거르는 날도 종종 있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이 지나고 나면 '아차' 하는 생각에 전화 통화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통화를 할 때는 잘 지내줘서 고맙다 하고, 열심히 해주니 더 고맙다하고, 보고 싶다는 말도 더 잘하게 된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입 밖으로 나오기 힘들던 그 말들이 요즘은 어렵지 않게 나온다. 왜일까 궁금해서 생각해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진 덕인 듯하다. 양육이라는 숙제에 짓눌려 불안함으로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칭찬의 말, 감사의 말이 떠오르지를 않았나 보다. 집중적 양육기가 끝나고 나니 부담감이 줄어들었나 보다.

5주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4년 전 어느 날을 떠올려 보았다. 떠나는 자녀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물 흘리던 감정을 상기하며 내 안의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뜨거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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