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 낳았습니다, 그래서 어떻냐면요

경력 단절에, 아이 교육까지...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낳길 잘했네요

등록 2021.01.21 14:43수정 2021.01.2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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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첫째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하던 날. 친정엄마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는 엉엉 울면서 "엄마는 어떻게 이 고통을 다섯 번이나 감당했어?"라고 했더니, 엄마 왈, 셋쯤이나 낳고 그런 소리를 하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예고였을까. 결혼 후, 나는 9년 동안 세 아이를 낳아 뜻하지 않게 애국자가 되었다.


나는 결혼 전 서울에 있는 벤처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결혼하면서 남편의 직장이 있는 대전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퇴사 후, 2년 동안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전업주부가 되었고, 그렇다면 얼른 둘째를 낳아 키우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은 것 같다. 7년 만에 둘째가 태어났다. 어렵게 생긴 둘째아이였기 때문에 기뻐하며 육아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돌쯤 됐을 때 셋째가 임신되었다. 셋째는 계획으로 낳는 게 아니라던 주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렇게 태어난 셋째아이는 꼬물꼬물 너무 예뻤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셋째까지 태어나고 나니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남편은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견기업에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방이라 집값이 비싸지 않고 생활 물가도 높지 않아 전업주부인 나는 아이들 육아와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셋째아이의 출산으로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경제적 부담과 앞으로의 미래가 그렇게 걱정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서울에 사는 친구는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나는 아이 셋의 육아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맞벌이를 할지, 육아와 교육을 내가 감당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형제 중 누구도 가까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의지할 곳도 없었다. 그 당시,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며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이 제일 부러웠다.

물론 그분들도 많이 힘든 시기였겠지만, 시간은 결국 지나간다는 생각이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려는 많은 엄마들에게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경력단절녀'의 강력한 부르짖음이다. 나는 이미 경력이 단절된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뒤로하고 일을 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었다.


그때 내린 결정은 '살림은 알뜰하게 하면서 엄마표 교육을 실천하자'였다. 아직 너무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큰아이에게 엄마표 교육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하루하루, 일주일 단위의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는 이끄는 대로 잘해주었고 더 큰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이참에 나도 함께 공부하겠다고 대학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그 무렵, 큰아이의 마음에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이 엄마와의 관계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육아와 자녀교육에 있어 사춘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책에서 수도 없이 읽었다. 다른 무엇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큰아이의 사춘기가 중3 때 찾아왔다. 청소년 교육을 공부하던 나의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무기력에 빠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보려 했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이후 나는 큰아이에 대한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했다. 말을 듣지 않는 큰아이에 대한 미움부터 해야 할 많은 공부, 미래에 대한 기대도.

그러면서 한 끼만이라도 먹어주기를, 잠을 자주기를, 예전에 건강했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이 시기에 나는 아이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긴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좀 추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큰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며 나는 사랑을 전하는 데 있어 서툰 엄마로 그렇게 한고비를 넘겼다.

현재 대학에 진학한 큰아이는 어린 동생들에게 잔소리가 심하다.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할 잔소리를 본인이 다한다. 동생들의 모습을 통해 어린 시절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일까.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아이의 뇌가 성장해서 스스로 성숙해질 때까지 자유롭게 놔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다투기도 하지만 세 아이가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셋 낳길 잘했네'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나는 재취업을 하려고 준비 중에 있고 남편은 20년 동안 다닌 직장을 올해 퇴사할 예정이다. 2월에는 서울로 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둘째와 셋째 아이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각오가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이다. 
#가족 #육아스트레스 #자녀 #사춘기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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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엄마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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